연약함을 담당하신 주님 – 마태복음 8:14-17

마태복음 8장 첫 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주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사역이 기록되어 있는데, 주님께서 능력을 행하시어 이적적인 병 고침을 하신 이유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야이시고,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이신 것을 나타내시는 것이라고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는데,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도 주님께서 메시야이시며, 섬기러 오신 분이심을 우리들에게 확신시켜 주게 됩니다.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섬기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로 보고 바로 알아 이웃들에게 주님을 바로 소개하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주님 (14-15)

[2]무리들의 병을 고치신 주님 (16)

[3]예언을 이루신 주님 (17)

 

[1]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주님(14-15)

우리 교회의 실천 목표가 무엇이라 주보에 나와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아는 교회”, “예수님을 바로 전하는 교회”이지요. 좋은 신앙이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성경 말씀을 대할 때마다 그 말씀에서 주님을 뭐라고 소개하고 있으며, 그 주님께서 나를 위해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에 초점을 맞추어 나간다면 정말 좋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14절 15절에서는 주님께서 어떤 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까? 열병을 앓고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모습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기록이 마가복음 1장, 누가 복음 4장에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배경을 살펴본다면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또 병자들을 고치신 후 쉬시기 위해 베드로의 집에 돌아오신 때입니다. 주님은 집이 없으시고 베드로는 집이 있어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집에 머무시면서 사역을 하신 것으로도 보여 집니다. 베드로는 결혼하여 부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한 성경 기록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장모가 나타난 것을 보니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결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또 성직자의 결혼을 금하고 있는 카톨릭의 제도는 성경적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회당에서 일을 마치시고, 이미 피곤한 몸이신 데도 그를 필요로 하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도와주시고 계신 섬기러 오신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열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고, 베드로 장모의 손을 만지시므로 열병이 떠났다고 했습니다. 손을 만지심으로 그의 사랑을 그의 정을 나타내 보이셨고, 그의 능력은 열병을 퇴치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회당에서 큰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형편이므로 사사로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에 무관심해도 흠이 되지 않을 수 있겠으나, 무명의 여인, 평범한 여자에게 눈을 돌리시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신 주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에게는 큰 무리가 중요한 만큼, 역시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을 또한 중요하게 보신 것입니다. 어떤 명성을 내기 위해, 남의 눈을 의식하고 큰 집회만 돌아다니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그는 조용하게 일하신 것입니다. 작은 자는 무시할 수도 있고, 큰 자를 섬기게 되는 우리 인간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1천명 모이는 집회의 강사로 간 것과, 10명이 모이는 집회의 강사로 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우리와 전연 다를 마음을 갖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2-3 사람이 모이는 곳에 함께 계시겠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시며, 아이들이 몰려오는 것을 금하지 말도록 말씀하신 주님이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에 충성한 자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너에게 큰 것을 맡기시겠다”고 하신 주님이십니다. 큰 것만 관심 갖고, 적은 것에 무관심한 우리에게 책망하신 것 같습니다. 주님은 그가 병든 자이든, 불구자이든, 어린아이든, 가난한 자이든, 못난 자이든, 검은자이든, 다수이든, 소수이든 그런 외적 상태와 상관없이 그를 찾는 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도와주신 분이심을 발견하게 되어 지극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본문을 통해 또 관심 있게 눈여겨볼 것은 열병에서 치료받은 베드로의 장모가 일어나서 본인이 예수님을 수종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집은 자기 딸도 있어서 주님을 본인이 섬기지 않아도 흠이 되지 않겠는데도, 자기가 나이가 많건, 적건, 누가 주님 도울 사람이 있던, 없던, 자기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주님 위해 하신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섬기셨는데, 이 여인도 또한 섬김을 베푸는 것 같습니다. 섬기는 자가 기쁘고, 복된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무리들의 병을 고치신 주님(16)

주님께서는 어떤 개인의 사적인 일에만 골몰하여 큰 무리들은 등한시하신 것도 아니고, 개인이든, 단체이든 기회 주어지는 대로 일하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16절에 보니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란 기록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몇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많이” 라는 단어입니다. 많은 병든 자들이 즉 다수의 병자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도 동정과 사랑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는 단어는 “말씀으로” 란 단어입니다. 귀신들을 무엇으로 쫓아내셨다고요? 말씀으로, 말씀은 바로 능력입니다. 어떤 신체적인 기운으로 낫게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어는 “다 고치셨다”는 단어입니다. 누구는 예쁘니까 고쳐주고, 누구는 미우니 안 고쳐 준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찾아온 모든 병자들을 다 고쳐주신 사실입니다. ‘다 고쳐주었다’는 단어를 대할 때 감사와 안심되는 생각이 마음에 있지 않습니까? ‘다 고쳐 주셨다’는 단어는 모두를 하나하나 사랑한다는 말로서 ‘다’라는 단어 안에는 못난 나도 부족한 우리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자들이 된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3]예언을 이루신 주님(17)

이사야서 53:4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이란 말씀이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은 짊어지셨도다”란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우리에게 나타나실 메시야, 즉 구세주는 우리의 모든 고통을 대신하시고, 우리의 약점을 다 아시며, 책임져 주신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병자들을 모두 고쳐 주신 것을 보니 이사야서에서 예언한 사실이 바로 이때 이뤄졌으니, 이 나사렛 예수가 바로 오시기도 하신 메시야이심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험악한 세대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지하고 사십니까? 요사이 지진, 홍수, 폭설, 화재, 한파 등이 몰아닥치는 미국사회에서 어떻게 안정되고, 평안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신 주님만을 믿고, 평안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죄입니다. 사실상 인간이 숨을 쉬고 있다는 자체가 공기의 오염을 받아들이게 되듯, 인간이 살아 있는 자체가 갖가지의 죄를 쉽게 먹고 마시게 되고 있기 때문에 그 죄 때문에 평생 고통스러워야 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게 될 터이지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살인죄나, 간음죄 같은 아니 강도 같은 욕심을 부렸던, 크고, 작은 죄를 말끔히 씻어 주심으로 정결하고, 평안한 마음 갖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할 뿐입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흰눈과 같이 되리라” 우리의 죄가 있지만 없는 것 같이 사면해 주신다니 죄인이 얼굴 들고, 밝은 얼굴로 살 수 있으며, 이 세상 끝나면 새 하늘, 새 땅을 마련해 두신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터이니, 이 사실 바로 깨닫는다면 힘이 생기고, 찬송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이 또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담당해 주실 죄 말고, 또 우리의 약점이 또 무엇이 있습니까? 가난, 질병, 가슴아리 등 모든 인간은 남이 알고 모르는 많은 고통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약점, 내가 필요한 것, 내가 당하고 있는 고통을 완전히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그의 자녀의 약점과 고통을 분명히 자상하게 알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예언대로 우리의 연약한 약점을 담당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약점을 담당해 주신다는 말씀은 믿는 자에게는 약점을 담당해 주시고 이 말씀을 불신하는 자와는 상관이 없게 됩니다.

약한 것이 물질입니까? 건강입니까? 억울한 일입니까? 화병입니까? 자녀문제, 부모문제입니까? 이것을 담당해 주실 변호사가 있습니까? 풀어줄 해결사가 있습니까? 심리학자도 철학자도 이것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들을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이런 것을 모두 담당하신다고 약속하신 주님뿐입니다. 우리의 변호사, 돈 한 푼 받지 않고, 변호해주시고, 필요한 것 공급해 주시고, 얽힌 것 풀어주시고, 주님께 감사하며 다 맡기실 수 있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주님은 어떤 분이심을 발견하게 되며, 우리 각자와 어떤 연관을 같고 일하시는 분이십니까?

 

그 분은 개인 개인도 사랑하시고, 가족 단위로도 사랑하시며, 또한 많은 무리 속에서도 한사람, 한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온 인류의 모든 연약한 것을 다 책임져 주시는 분임을 알게 됩니다.

베드로의 장모에 손을 대시고, 병을 낫게 하신 주님이 지금 우리 각자의 아픈 곳, 상처 받은 곳, 부족하고 연약한 모든 부위에 손을 대시기 원하십니다. 많은 군중들의 병을 모두 고쳐 주신 주님께, 우리의 어떤 소원도 들어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연약한 모든 것을 일일이 들추어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내 맡기시고 주님께서 푸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능력이 없는 우리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스스로 해결해 보자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맡기시고, 둘째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적절한 때에 답을 주실 것입니다.

 

요1서 5:14-15에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것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였는데, 첫째는 그의 뜻대로 구하고, 둘째는 우리가 구하는 것은 틀림없이 들으시는 줄 알고 또 우리가 구한 것은 이미 얻은 줄로 알고, 이미 받은 기쁨으로 병을 고침 받은 베드로의 장모같이 받은 감사로 주님과 이웃 위해 봉사로 응답하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