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르는 자가 치룰 값 – 마태복음 8:18-22

요사이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지요? 모든 세계에서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은 누가 금메달, 또 은메달을 따느냐에 쏠려 있음을 보게 됩니다. 금메달을 따면 나라에서도 연금을 주게 되며, 금메달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많이 바꿔주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이 메달도 운이 따라야 얻게 되는 것같이 보여지나, 복권 당첨같이 운만 좋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값을 치러야만 하는, 한마디로 쉽게 표현한다면 죽을 고생을 했던 결과로 얻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번쩍거리는 영광스런 금메달의 외형만 볼 것이 아니라, 금메달 속에 숨겨져 있는 많은 숨은 사실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주님을 따르는 자가 치룰 값입니다” 크리스천, 성도, 주의 제자란 금메달을 목에 걸려면 얼마만한 값을 지불해야 하느냐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시작해 보겠습니다.

 

[1]군중들이 치룰 값(18)

[2]한 서기관이 치룰 값(19-20)

[3]한 제자가 치룰 값(21-22)입니다.

 

[1]군중들이 치룰 값(18)

18절에 보니 무리들이 주님을 에워쌈을 보시고 한적한 곳으로 가도록 제자들에게 지시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무리들이 너무 많이 몰려온 모양이며, 주님께서도 일하신 후 이제 좀 쉬시기 위해서, 또는 소수 제자들을 양육하시려 무리들을 피하여 한적한 곳을 찾으신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인기가 대단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으로 예수님께서 인기 끌만한 무엇을 하셨습니까?

먼저 권세있는 말씀, 설교를 하셨지요? 이 설교를 우리는 무슨 설교라고 말하지요? 산상 설교이지요. 또 무슨 인기 있는 일을 행하셨나요? 많은 병든 자들을 동정하시고, 모두 즉시 낫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소문을 들은 주변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막 몰려왔던 것입니다. 산상 설교도 병 고침도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하고, 그를 믿어 영생을 얻게 하려한 것이었으나, 군중들은 오직 육적인 필요를 채우려 몰려왔음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요6:26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지적하심 같이 표적을 보고 주님은 메시야로 믿기 때문이 아니라,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덩어리로 5천명을 먹이신 이적에 따라 얻어먹고, 병 고치고 하는 것을 보고 따라 다닌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이미 주를 따르는 자들이 치러야할 값, 또 값을 치루고 난 자들이 누릴 복에 대해 소개한바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써 내야하는 제자 Application에 첫 조항으로 조건을 주신 것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거든” 뭐입니까?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입니다.

세상살이는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가질 것을 다 가질 수 있는데, 주님을 따르는 길은 다 갖고 따르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다 버리고 따르라고 하므로 분명한 사실은 제자의 길, 크리스천의 길은 세상 길과 전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고 싶어서 그 비법을 주님에게 알려고 왔지요? 분명히 주님께서 영생의 비법을 갖고 계심을 믿고 왔지만 주님께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느니라 그리고 나서 나를 좇으라”하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비법을 듣고도 근심하며 가니 라고 마19:16-22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란 무엇인가? 크리스천이 무엇인지 풀어보라고 시험 문제를 받는다면 뭐라고 적겠어요.

많은 값을 치러야 얻는 것 정답입니까? 자기란 존재는 죽고,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이름은 버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택할 때 얻는 것입니다.

자기 옷을 벗고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얻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버릇 버리고 주님의 눈, 주님의 생각, 주님의 버릇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운전하신 차에 올라타는 것이라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십니까? 아멘.

문제는 교회에 몰려오는 많은 무리, 아니 우리들 자신이 자기 제안, 자기 고집, 자기 교만, 자기 경험, 자기 지식, 자기 나쁜 습관, 자기의 옛 모습 다 그대로 지니고 제자란 Title만 얻고자 하는데 현대 기독교와 주님이 바라시는 기독교와 큰 오차가 생긴 것입니다. 값을 치루지 않고 금메달을 받겠다고 하는데 큰 오해가 생긴 것이란 것입니다.

 

[2]한 서기관이 치룰 값(19-20)

서기관이란 유대교에서 성경 문서를 복사하고 가르치는 지도층의 계급을 말하며, 주님께서 “화 있을진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저주를 하셨던 그런 무리를 말하며, 또한 서기관들도 예수님을 퍽 못마땅하게 여겼던 상대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한 서기관이 주님께 찾아와 주님의 충실한 일등 제자가 되겠다고 지원을 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됩니다.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여우도 굴이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실제로 주님께서는 일하신 후 좀 쉬실 싱글이나, 원베드룸 아파트도 가진 것이 없다고 우리 교회 교인 중 나는 너무 가난하다고 스스로 불쌍히 생각하고 있는 자에게 지금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보다 다 부자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주님 가신 곳에는 꼭 따라 가겠습니다”란 고백은 나사렛으로 가시면 그곳까지 따라가고, 갈릴리로 가시면 또 그곳도 따라가는 동행자란 의미로는 아니 되고, 그 이상 무엇을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의 가신 길이란 발로 걸으신 그 길을 따라다닌 의미보다 주님이 행하시고 보이신 모범을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도 따르고, 겸손도 따르고, 고난도 따르고, 십자가 지심도 따르고,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함을 서기관에게 일러주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로서 오로지 하늘나라를 위해 사심같이 그의 제자들도 그들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주님을 메시야로 모시고, 주님이 상속자이심 같이 우리도 하늘나라의 상속자로서의 절대적인 소망을 갖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3]한 제자가 치룰 값(21-22)

제자 중에 하나라고 했으니, 주님 앞에서 제자로서 Application을 이미 제출한 사람 같습니다. 이 제자가 주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하니 주님께서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셨음을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한 귀한 제자입니다. 위대하신 주님의 제자가 되어 그가 가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제자 노릇하고 싶은 강력한 마음의 결단을 가진 것 이 사실입니다. 다만 자기 아버지라 지금 돌아가셨으니 장례를 치룬 후에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 장례를 치룬 후 주님을 따르겠다는 변명은 또 너무 타당할 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는 꼭 그리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팽개치고 예수 따라다녔지만 사회에서 교계에서 오히려 지탄을 받아야할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죽은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얼마든지 장사지낼 수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고, 살아있는 너는, 중대한 사명을 받은 너 제자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급한 일을 하라는 충고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부모에 불효해도 된다는 의미로 오해하지 않고, 주님의 우선 순위의 진리로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지시하신 것입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에는 아버지 장사지내는 것이 emergency이고 바쁘겠지만 주님의 일이 최우선 순위요, 가장 급한 emergency이니 우선 순위대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전폭적으로 따르고자 하는데, 그러기 위해 내가 정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타당한 이유로 들리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싶은데 노부모님들이 곧 돌아가실 터이니, 그 분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믿겠다. 사업을 성취하고, 졸업하고, 결혼하고, 내년도부터. 그러나 주님은 어떤 그럴듯한 변명도 허용을 안 하십니다.

무엇을 바라실까요? 어떤 변명과 이유를 막론하고 즉시입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맨 먼저, 그 다음 내 부모, 내 사업으로, 제자의 길은 우선 순위 때문에 치루어야 할 큰 값을 치러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마10:37)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이 무엇이며, 우리 실ㄹ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로서 값을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존재로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고, 갖은 핍박과 고난과 아픔과 모욕과 가난과 어려움의 값을 치루셨고, 마지막 십자가까지 지시는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가 부요한 자로되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가 자유로운 하나님의 존재 이셨는데도 많은 제한을 받으신 것은 우리로 하늘나라의 상속자로서 자유로운 자가 되도록 하게 하기 위해 종의 모습이 되셨던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 백성 위해 그가 값을 치루신 모범을 따라 우리도 성도로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값을 치루지 않고는 결코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없다는 분명한 선을 본문에서 주님께서 긋고 계십니다.

 

치루어야 할 첫째 값은 주님을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실 구세주로, 나는 종 노예요, 주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존재로서 처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본인이 과학자로서, 학자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자도 믿어야 하는 값을 치뤄야 합니다. 천문학자요, 우주학자라도 주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이 앉아 계심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완전히 믿고 받아드리는 첫 번째 값을 치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치루어야 할 값은 주님을 믿는 일, 교회 섬기는 일, 천국 가는 일을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값, 아픔을 치뤄야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 사업, 내 취미, 내 재산, 내 가족, 내 친구, 내 직장일 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감히 버릴 수 있을 때 주님을 택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재물과 영생 둘 다 소유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이미 지적 받았습니다. 세상을 버리고 주님을 택하는 위대한 선택자들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주님을 위해 버려야할 것, 뒤로 미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일을 우선으로 할 때, 무엇이 차선으로 밀려났습니까? 눈물을 머금고 내린 용기 있는 자에게 하늘나라의 큰상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심지어 이 세상에서도 보상을 받고, 천국에서도 보상을 받게 됨을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믿음을 위해 세상을 뒤로하는 미련을 버리는 용기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치루어야 할 값은 지금 치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픔을 지금 감당하라는 교훈입니다. 선을 절대 뒤로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영영 기회를 빼앗을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상 포기도 현재, 형제 사랑도 오늘, 회개도 오늘, 화목도 오늘, 모든 것을 즉시 지금 치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께서 하라하시면, 가라하시면, “예” 하고 지금 하고, 지금 갈 수 있는 그런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바라십니까? 무엇을 다짐하십니까? 세상 생각, 세상 소망, 세상 다짐 다 헛것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이 가신 곳에는 어디든지 따르게겠다”는 다짐과 실천 있어서 하늘나라에서 성도가 받을 금메달을 목에 걸고, 현재 당하는 어려움, 눈물 다 잊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