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 되신 예수님 – 마태복음 11:1-15

마 10장에서 천국 복음을 보다 널리 전파하기 위해 12제자를 택하시고 제자 훈련을 하신 제자 훈련 현장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을 통해 우리가 교훈을 얻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현장이 바퀴이게 됨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11장 1절을 보니 전도를 내보내시기 전에 실시하신 제자 훈련 과정을 다 마치시고 그들을 전도 현장에 내보내시어 그들이 배운 대로 자기들끼리 실천해 보도록 하게 하시고, 주님은 주님대로 혼자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기 위하여 그 동안 머무르시며 제자 훈련을 하셨던 가버나움의 한 곳을 떠나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내용은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예수님이 하고 계신 사역에 대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은 과연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는 “오리라 하신 바로 그 분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낸 사실과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기록된 것으로서 이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 주님께서 답변을 주심으로 예수님은 바로 이스라엘이 대대로 사모하며 기다려 오고 있는 그 메시아일 뿐 아니라 모든 인류의 메시아이심을 확실하게 깨우쳐 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자기의 질문을 보내고 예수님으로부터 답을 얻으므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회복한 세례 요한과 같이 우리도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세례 요한의 질문(1-3)

[2] 예수님의 답변(4-6)

[3] 세례 요한에 대한 주님의 증거(7-14)

[4] 귀 있는 자(15) 입니다.

 

[1] 세례 요한의 질문에 대한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였습니다. 이 세례 요한의 질문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요? 또 이 질문을 한 세례 요한은 어떤 인물이었던가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났었고 예수님의 친척이며,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던 자이며,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에 성령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고, 그가 바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심을 알았으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선포했으며, 자기는 쇠해야 하겠고 예수님은 흥해야 한다고 선포했던 사람인 것입니다. 즉 그는 예수님이 바로 선지서에 ‘오시기로 한 메시아’ 이심을 분명히 알았고, 자기는 주님이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광야의 소리라고 고백하고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선포한 하나님 앞에 충실한 선지자 였던 것입니다.

 

그는 헤롯 왕이 동생 빌립의 아내를 취한 사실을 죄로 단정하고 헤롯 왕을 책망한 일로 헤롯 왕의 분노를 사 감옥에 갇혔던 것입니다. 바로 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이 오시기로 한 메시아인지 아니면 진짜 메시아는 따로 오실 것인지”를 물어 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믿음에 회의가 생긴 것이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정치적, 물질적 회복이 이뤄지고 그 이상 질병과 환난과 고통이 있지 아니하고 심지어는 사망도 그 이상 존재치 않게 될 것으로 믿어 왔고, 요한이 선포한 대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 함같이 불의 세례 즉 악한 자를 심판하는 일이 즉시 병행되어 억울한 자의 피를 온전히 갚아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자선을 베푸는 사랑만 나타내 보이시고 악을 처벌하는 심판은 전연 실현되지 않고 있으므로, 세례 요한만 해도 일반 유대인들이 갖는 비슷한 메시아 관을 가졌다고 보아질 때 메시아 되신 주님께서 주의 길을 평탄케 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자기를 석방시킬 아무런 노력도 보이지 아니함으로 자기가 메시아로 알고 믿고, 또 선포해 온 그분이 메시아이심이 분명한지? 확인하러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의 메시지에서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열매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하여 그의 메시아 관은 “사랑” 보다는 “심판”에 더 비중을 둔 것같이 느껴지며 그것도 즉시 이뤄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질문은 잘못 인식하고 있는 메시아 관과 또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확실한 것인지? 철저히 자기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확고한 신앙 관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2] 세례 요한의 이 질문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답변하셨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내가 선지서에서 말한 바로 그 메시아라고 말로 설득시키려 하시지 않았고, 행동으로 능력으로 직접 실행하신 것들이 바로 자신을 증거 하는 것들이니 보고들은 것을 그대로 보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대로(사 29:18,19; 35:5,6; 42:7; 62:1)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육체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겠지만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눈이 뜨는 것과, 영적으로 귀가 열리고 영적으로 앉은뱅이가 일어서며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남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이 눈여겨보지 않는 힘없는 가난한 자에게 기쁜 구원의 소식이 전파됨을 강조함으로 예수님께서는 영적 구원의 메시아이심을 강력히 내세우신 듯합니다. 주님의 메시아 되심은 예언서가 이미 예언한 대로 주님께서 행하심으로 그의 행동이 메시아 되심을 증거 하게 된 것입니다.

 

[3]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이후에 모인 무리에게 세례 요한에 대해 증거 하시게 됩니다.

무어라고 증거 하셨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진짜 메시아인지 확인해 달라”고 한 세례 요한을 사람들에게 칭찬하심을 보게 됩니다. 군중들이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을 무능한 선지자 혹은 그 외모가 초라하고 가난한 선지자로 얕잡아 보는 마음을 읽으셨는지 그들의 잘못된 판단을 책망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고 책망하시며 광야에 갔으면 당연히 초췌한 모습을 한 선지자를 보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아야지 선지자가 초라한 모습이라고 얕잡아 보느냐? 너희들이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려면 왕궁에 갔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책망을 하십니다. 또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다른 선지자 보다 나은 자라고 위상을 높이시게 됩니다. 왜 그가 다른 선지자들보다 나은 자라 하셨을 까요? 다른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멀리 바라보며 예언을 했을 뿐이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서 살았고 만나 보았으며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의 길을 닦는 일까지 맡아 했으니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볼 때 다른 선지자들보다 나은 자라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여자가 나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쇠해야 하겠다”고 겸손해 하였던 세례 요한을 세상에서 제일 큰 자라고 높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천국에서는 극히 적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 하십니다. 무슨 말일까요? 이 말은 세례 요한이 다른 선지자들보다 나은 자란 그 원리로 이해한다면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구원 얻은 자들은 예수님 안에 살고 또 예수님이 그들 속에 사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닦았던 세례 요한 보다도 나은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행복한 자라 한다면 우리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자가 되었으니 더욱 행복한 자라는 말씀으로 풀 수 있겠습니다. 말라기서 3:1; 4:1,5에 보면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했는데 바로 그 엘리야가 바로 이 세례 요한을 두고 한 예언이라고 증거 하십니다. 이 말은 눅 1:17 과 같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선지자의 일을 감당할 자란 뜻에서 예언된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로서는 마지막이요 그 다음은 메시아께서 오시므로 세례 요한은 메시아를 세상에 직접 소개한 영광스런 선지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4]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군중들께 이렇게 소개하시고 “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3:16에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복이 있다”하였는데 주님의 말씀하심을 믿고 받아 드리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말씀으로 “믿어라”는 말씀을 강조하신 것으로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는 자는 복이 있어서 구원 얻어 영원히 살 것이고 반대로 믿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없는 자로 영원히 죽게 되리란 말씀을 강조하신 것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우리는 바른 메시아 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주님을 내 입장에서 이해해서는 아니되고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떤 메시아 관을 가졌던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구원을 이루시는 메시아이심같이 우리 각자가 바라는 주님은 어떤 분이든 상관없이 주님은 영적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이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사시는 주님은 내 육의 일들을 자상하게 간섭하시고 보살펴 주시지만 주님의 초점은 내 육의 생활이 아니라 내 영적 삶에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현실의 삶도 보살피시나 현재의 육신의 삶보다는 현재의 내 영적 생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계시며 그런 이유로 내가 혹시 라도 영적 생활에 게을리 했을 때 내 속에 계신 성령은 근심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혹시 라도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메시아 관이 잘못 되어 있지나 않은지? 세례 요한과 같이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욕심을 부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나를 언제나 도와주시는 메시아이기를 바라고 그런 메시아를 섬기고 있다면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신 지 아니면 내가 예수님을 잘못 알고 믿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 주님께 묻고 주님으로부터 답을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이 진짜 메시아인지 질문한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며 믿음이 없다고 비난을 받을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믿고 있는 바를 주님을 통해, 성경을 통해 점검하고 지나가는 일은 칭찬을 받아야 하는 행동이었다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정성을 드려 섬기는 주님을 보는 눈이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죽고 살고를 갈라놓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자체가 세상으로는 지고, 세상에서는 죽고,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시어 세상에는 미련을 두지 않으셨는데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영적인 삶보다도 세상 적인 삶에 더 초점을 맞추고 주님으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자 애쓴다면 주님을 잘못 본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서는 푸대접받으셨으나 하늘에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힘을 받는 큰 대접을 받으심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는 만족스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산다 할지라도 주님 오실 때 다시 살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를 믿게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례 요한도 이 세상에서는 갇히고 목 베임을 당했지만 주님 오실 때에 주님께서 원수도 갚아 주시고 그가 받아야 할 모든 영광을 안겨 주실 것입니다. 현재의 삶은 우리에게 불공평과, 폭력과 고통과 눈물이 있게 마련이나 주님이 예비하신 곳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병도 없고, 가난도 없고 전쟁이나 강도 사건이 전연 없는 평화의 세계,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이 대통령을 하시는 온전한 나라에서 살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구원의 뜻인 것입니다. 그 나라를 소망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이기고 견디고 눈물을 닦으며 하루 하루 승리하며 살아 나간다면 겨울 다음에 봄이 오듯 주님이 통치하시는 평화의 날이 우리에게 오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도 빛을 볼 날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 그곳을 소망하며 그 소망을 위해 주님을 정성을 다해 믿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세례 요한은 다른 선지자보다 나은 자요, 우리는 세례 요한 보다 나은 자임을 믿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날마다 함께 사는 믿음의 생활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고 감사한 삶인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아니 모세도 엘리야도 주님을 멀리서 믿음으로 바라보았을 뿐이지 우리와 같이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은혜의 시대에서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아 주시고 미래 천국의 모형인 교회 공동체에서 살게 하신 삶이 엄청난 축복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 주신 하나님과, 우리의 미래의 삶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시려고 하늘에 오르신 예수님과, 지금 우리를 보살피시고 간섭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감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