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 마태복음 15:1-20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도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이 될까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려고 그렇게 표현했는지 모르지만 L.A 에 계시는 한 목사님이 자신의 과거를 간증하는 설교 태잎을 제가 들어보니까 자기가 목사가 되기 전에 성가대 지휘자였었는데 그때는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음악이 좋아서 그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가대 지휘자라면 세례도 받았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경우를 전제한다면 교회 안에도 불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지요? 또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이적이나 또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는, 즉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으로서 간주하는 신학자나 그런 목사가 있다고 한다면 역시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주님께서 교회 안에 있는 불신자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철저히 잘 믿는 자이고 누구보다 법을 잘 지키는 자들이라고 자부하는 종교 지도층에 있는 자들을 두고 ‘소경’ 또는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소경’은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자들은 다 뽑힐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교회 내에 있는 불신자들의 결과를 예고해 주시고 계십니다. 교회 내에도 불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신앙을 점검하여 내게도 그런 불신의 요소가 있다면 이를 추방하고 철저한 신자가 다 되어 주님의 마음에 만족 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과 이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제자들(1-2)

[2]예수님의 답변(3-9)

[3]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10-11, 15-20)

[4]소경의 종말(12-14) 입니다.

 

[1]장로들의 유전을 범한 제자들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 즉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일과 바다 위로 걸으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모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심지어 병자들이 몰려와 예수님의 옷가만 만져도 다 나음을 받게 되었으니 온 세상이 떠들썩해진 것입니다. 종교계의 기득권을 가지고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유지하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바리새인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공격을 여러 번 받아 오긴 했지만 이번에는 예루살렘의 산해드린 종교 회의로부터 예수님의 행적을 조사해 보려고 조사단이 파견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일하시고 계신 그 실정을 알아보기 위한 조사단이라기 보다는 예수님의 기를 꺽기 위해 예수님으로부터 트집 잡을 만한 것이 있나를 조사하는 함정 조사단이 파견된 것입니다.

이 조사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라면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며 또한 철저히 지키는 자들의 대명사인데 그 중에서 더욱 권세 있는 대표단을 보냈으리라고 봅니다. 조사단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활동을 면밀히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죄목을 찾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이 사실로 공격을 해 온 것입니다. 2절에 기록된 대로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들을 때에는 전연 잘못이 아닌 것 같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의 신앙 근거가 성경이기 때문이나, 자기들이 지켜 오고 있는 종교 규칙에는 음식을 먹을 때에 마땅히 손을 씻고 먹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이 규칙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록된 문서인 모세 오경 말고 모세를 통해 말로 전해진 율법이 있다고 믿어 왔기 때문에 말로만 전해진 어떤 규칙 즉 전통을 아주 무게 있게 받아 드렸던 풍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자세하지 않으므로 복잡한 현실 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상세한 규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하나님 앞에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정결하게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수천 수만의 규칙을 만들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을 행위법 또는 행동 세칙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 율법을 장로의 유전 또는 사람의 유전, 또는 조상들의 유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후대에 이런 구전 율법을 모아 문서화한 것이 탈무드라는 것입니다.

이 구전 율법 즉 장로들의 유전은 너무 자세하고 비약적인 나머지 성경의 내용과 대립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성경보다 유전이 존중되었다고 합니다.

즉 사람의 법이 하나님의 법 위에 있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이 장로들의 유전 중 사람의 몸을 정결케 하는 항목이 있고 그 항목 가운데는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던 것입니다. 손을 씻는 것은 먼지가 많은 팔레스틴의 풍토로 보나 또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그들의 습관으로 보아 위생적인 차원에서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나 이것이 위생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종교적인 차원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에는 손을 씻되 얼마만큼의 물로 씻어야 하는 것까지 정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만일 한 사람이 한 그릇의 물로 한쪽 손에 붓는다면 그의 손은 정결하다. 한 그릇의 물로 두 손에 붓는 다면 불결하나 1/4의 물을 더 붓는다면 정결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러 올 때 얼마의 물로 손을 씻고 오셨습니까?

 

[2]두 번째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손을 씻지 않은 일로 예수님께 공격을 해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라고 주님께서 역 공격을 하시게 됩니다. 장로들의 유전이란 마땅히 율법을 더 잘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이어야 하는데 어떤 규칙은 하나님의 법을 거슬리는 내용마저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중 ‘부모 공경’에 관한 유전의 모순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부모 공경에 대한 하나님의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인데 장로들의 유전은 “부모님께 드려야 할 몫이라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한다면 부모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을 하셨으므로 그 명령을 더 잘 지키도록 장로들의 유전이 보충해 주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유전은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도록 부모 공경의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으므로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법을 폐하느냐고 주님께서 역 공격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예물이란 의미로 ‘고르반’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맹세를 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취소하지 않았던 법을 악용하여 부모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것을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했다고 하여 일부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본인이 착복할 수 있는 악법을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악법은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법에 정면 도전하여 공경하지 못하게 한 것이므로 주님께서 하나님의 법을 도전하는 악법인 장로들의 유전을 내세워 공격해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공격을 퍼부은 것입니다. 유전으로 예수님을 잡으려 했는데 그 유전으로 자기네들이 잡힌 꼴이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시어 종교의 부패성을 들어내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한다 하고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존경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해야 할 터인데 사람들이 만든 교훈이나 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니 그들의 예배는 헛된 예배가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외식한다는 말의 본뜻은 연극 배우란 말입니다. 외식하는 자란 겉으로만 번질 하고 속은 그렇지 못한 위선자를 말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라 하신 말과 같은 뜻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허울을 쓰고 실제로는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는 그 당시 종교의 실상을 들어내신 것입니다. 율법을 연구하고 율법을 해석한다고 하면서도 남에게만 율법을 지키게 하고 또 율법을 지키지 않은 자들을 비난하면서도 자기들 스스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은 종교 지도자들의 부패상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화 있을 찐저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3]세 번째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믿고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만지면 그 음식은 부정한 것이고 그 음식을 먹은 사람도 부정한 사람이 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즉 더러운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놓고 ‘듣고 깨달으라’하신 것입니다. 무엇을 듣고 깨달아야 하나요?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장로의 유전에 정면 도전하는 말씀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제자들만 해도 율법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 드렸고 또한 전통적인 장로들의 유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긍정적으로 받아 드려 지켜 왔던 차라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음식이나 또한 어떤 음식도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없다는 주님의 선포를 듣고 빨리 이해가 되지 아니했기 때문에 제자들 중 제일 성질이 급하고 열정적인 베드로가 방금 말씀하신 그 비유를 설명해 주시도록 부탁을 드리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동안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일을 통해서, 또 산상설교나 천국 비유를 통해 많은 새 교훈을 가르치셨는데도 이 교훈을 알아듣지 못한 사실을 아시고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란 알아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교육받은 제자들인데도 모른단 말이냐는 뜻일 것이며, ‘아직까지’란 말은 시기적으로 이제는 알만도 할 때가 됐다는 뜻이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좀 서운하시지만 그 뜻을 풀어 주십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뱃속을 거쳐서 뒤로 다 빠져나가 없어져 버린다는 사실을 모르냐는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결코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고, 미워하고 시기하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며, 음탕한 생각이나 육적 간음이 사람을 더럽게 하며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질이나 거짓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며 훼방을 놓는 짓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과 입을 씻을 줄도 모르고 손만 씻어야 되는 줄 알았던 예루살렘에서 온 조사 반원들의 얼굴이 뜨거워졌으리라고 봅니다. 자기들 속은 썩어 곪아 있는데도 그건 보지 못하고 남의 손에 먼지 묻은 것만 보고 이것을 비난하다가 얻어맞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를 들어 주님께서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무엇은 ?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입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 마음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십계명에서 하지 말라고 이미 금한 것인데도 율법과 계명은 무시한 채 유전만 내세운 저들의 큰 잘못을 노골적으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씻지 않은 손으로 먹은 음식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분명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손도 씻어야 하겠지만 더욱 열심히 씻을 것은 우리의 입입니다.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라도 씻고 단장하여 나를 더럽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할 줄 압니다.

 

[4]네 번째로 소경의 종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난 것을 아시느냐고 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심지 않으신 것은 다 뽑힐 것이므로 그냥 두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그냥 두어라 하신 말씀을 이미 들었습니다. 장로의 유전 같은 것은 하나님이 심지 않은 것이요 또 이런 것들을 지키고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자들은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자들이므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뽑아 버리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입니까? 심판 때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율법을 보고 읽고 해석하고 남을 가르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눈이 어두운 소경에 비유를 하셨습니다. 자기들도 앞을 못 보면서 남에게 길을 인도한다고 하니 둘 다 어디에 빠지게 된다고 하셨지요?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셨습니다.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의 말만 듣고 그들을 따라다니는 자도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사람의 말을 존중하고 사람을 따라다녔으니 자기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 다 심판 날에 악인이 받는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이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뭐라고 지적하셨던가요? 아니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어떤 자를 심판 때에 뽑아 버리시겠다고 하셨던가요? 주님께서 지적하신 사람을 더럽게 하는 첫 번째의 경우는 사람의 교훈을 하나님의 교훈보다 높이는 것이라 지적하셨습니다. 성경에 분명한 가르침이 있는데도 이에 어긋난 교리를 만들어 이를 지키게 하는 자들이나, 성경에서 하도록 지시함에도 불구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거나, 성경에 없는 것을 끌어 드려 지키도록 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옳지 않다고 비판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와 같은 비 성서적인 교리를 하도록 한다고 따르는 모든 자들도 똑같이 천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파라 하더라도 그들의 교리가 성경에 있는 것을 지키지 않거나 성경에 엄연히 있는데도 자기들 편의대로 변경시켜 시행하거나, 성경에 없는 것을 절대적으로 시행하는 경우라면 주님께서 지적하신 사람을 더럽게 하는 첫 케이스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서는 아니된다’는 말씀이나 ‘순종이 제사보다 났다’는 말씀은 이를 뒷받침해 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보통 교인들이 어떤 교파의 교리이던 쉽게 받아 드리나 위의 원칙에 걸리는 것이라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파이든 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말임을 본문을 통해서 확인한 것입니다. 내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나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고 빼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인간의 교훈을 존중한 자들을 소경이라 했으며 소경의 말을 듣고 따라다니는 자들도 또한 구렁 덩이에 빠지게 되리라 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지적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위선적인 신앙입니다.

마음은 없으면서도 겉모양만 갖춘 신앙, 마음은 없으면서도 입으로만 찾는 신앙, 말씀의 본뜻은 모르고 외형적으로만 모양을 갖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 진정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이 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찬양도, 우리의 헌금도 마음과 함께 드려진 진지한 것이어야 하며, 이웃에 대한 사랑도 구제도 진심이 내포된 것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빠진 교회 내의 자기의 직분, 예배 출석의 횟수나 믿었던 연륜이나 헌금의 액수, 예배당의 크기 등은 위선이라는 것입니다. 그 것들 속에 지금 얼마나 순수한 질이 들어 있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를 이루는 신앙을 주님께서는 바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삶 속에서 믿음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신앙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란 육의 열매를 맺는 경우입니다. 성도가 마땅히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비방과 교만을 맺기 때문입니다. 이런 열매를 맺는 한 아무리 손을 씻고 목욕을 한다 하더라도, 아니 그 누가 깨끗해졌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사람은 그것들에 의해 더러워진 자요 결국 추수 때에 뽑히게 될 존재라는 것입니다.우리 인간은 방금 천사 같다가도 순간적으로 마귀에게 넘어가 악마가 될 수 있는 성정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더럽게 하는 그런 육의 열매에서 벗어나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인내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많은 연습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딤전 4장 8절에 보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독일의 본에는 악성 베토벤이 살던 집이 지금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에 방문해 보면 그가 사용하던 피아노가 있다는데 건반이 움푹 패어져 있음을 본다고 합니다. 그래 움푹 패인 건반을 보면서 이런 천재 악성도 건반이 패일 정도로 연습을 했어야 했나? 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고 합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특별한 사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가 맺도록 피나는 경건의 연습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존재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들이 뭐라고요? 사람의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는 것, 위선적인 신앙, 육의 열매를 맺는 일임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복을 누리는 것을 방해놓는 마귀의 전승 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을 확인한 우리로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말씀에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 열납되는 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