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신앙 고백 – 마태복음 16:1-20

오늘 소개되는 본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포함되어 있는 말씀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소개하시기를 ‘인자’라 하셨고, 또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증거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선포되는 말씀을 사람들이 듣고 믿어 이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하므로 땅 사람들에게 하늘나라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인데 주님의 사사를 받은 제자 중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역사적인 첫 신앙 고백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요 또 이 신앙 고백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심으로 제자들에게 교회에 대해 처음으로 소개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베드로가 한 신앙 고백은 간단하면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장 명확하게 고백한 것이 되기 때문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신앙 고백의 좋은 길잡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올바른 신앙 고백을 소개받는 우리 성도들은 오늘 주어진 말씀을 통해 우리도 구세주로 믿고 있는 예수님을 보다 더 올바르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본뜻을 이해하고 그 본뜻이 주는 교훈을 찾아보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수님의 시험(1-4)

[2]누룩을 주의하라(5-12)

[3]베드로의 신앙 고백(13-20)입니다.

 

[1]맨 먼저 예수님의 시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란 그 당시 종교 단체들 중 2대 중심 단체인데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늘 의견과 입장을 서로 달리하는 맞 부딪히는 두 단체였던 것입니다. 바리새파를 보수파라 한다면 사두개파는 진보파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바리새파가 외형상으로 모든 율법을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대로 잘 준수하는 편이었다면 사두개파는 모세 오경 외에는 다른 책들은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었으며 부활이나 천사나 초 자연적인 어떤 일도 믿지 않던 현실 주의 자들로서 주로 제사장들이 이 파에서 나왔고 재력이 튼튼했고 정치적 영향력을 많이 행사했던 그런 단체였던 것입니다. 이런 두 단체가 평소에는 서로 맞 싸웠으면서도 주님을 꺼꾸러 뜰이기 위해서는 함께 작당을 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좀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의 표적은 세상 마술사들도 거의 해낼 수 있으므로 땅의 표적 말고 하늘로서 오는 어떤 표적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구약 시대에 내렸던 ‘만나’같은 것이 하늘로서 내리거나, 여호수아 때에 ‘해와 달이 멈추어 섰던 일’이나 엘리야 선지자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던 일’같은 표적을 보여 달란 것이었겠지요. 주님께서는 엘리야보다, 여호수아보다, 모세보다 더 크신 분이신 것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들을 통해 일어났던 하늘의 표적 같은 것을 주님께서 원하셨다면 능히 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시험은 주님을 넘어뜨리려 하는 것이었으며 그 뜻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들의 경험으로 오늘은 날이 좋겠다, 날이 나쁘겠다, 비가 오겠다, 날이 덥겠다 등 기상에 대해서는 대략 분별을 할 줄 알면서 왜 시대는 분별을 못하고 하늘의 표적을 요구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센스가 있음에도 왜 영적으로는 그렇게도 센스가 무디냐는 의미인 것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이 메시아를 만나고자 했다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을 만한 표적이 이미 충분히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 바탕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들과 더 이상 소모성 변론을 피하시고 또 그들의 사악한 마음 상태를 책망하기 위해서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시고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요나의 표적 즉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후에 부활하시는 표적이야 표적 중 표적이라 하겠지만 그 표적은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적이 못되고 한참 후에 일어날 일이라 표적을 보여 달라는 그들의 요구에는 만족스런 대답이 못되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당황하게 만들거나 또는 큰 책을 잡고 많은 관중들 보는데서 망신을 주고자 예수님을 시험하러 작당하고 왔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음란한 세대의 주인공이라는 책망을 받고 돌아간 셈이 되었던 것입니다.

 

[2]두 번째는 누룩을 주의하라 입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마가단이란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걱정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교훈이나 신앙 생활에 혹시라도 제자들이 나쁜 영향을 받을까 봐서 마음이 쓰이셨나 봅니다. 주님께서는 이제 얼마 있으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절박한 시기이므로 제자들을 나쁜 교리로부터 철저히 보호하고 주님의 진리를 보다 철저히 심어 줘야 하는 차원에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게 됩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고들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초점은 영의 양식이었고 제자들의 초점은 육의 양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시고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하셨으며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몇 바구니가 남았으며 떡 7개로 4천명을 먹이고 몇 광주리가 남았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질책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찌 내가 말하는 것이 먹는 떡에 관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오직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하시니 그제야 주님께서 말씀하신 누룩이란 떡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는 말씀으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5천명을 먹이시고 4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통해 제자들이 더 이상 육의 양식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는 확신을 가졌어야 할 터인데 주님께서 ‘누룩을 주의하라’는대 제자들은 점심 도시락을 잊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중얼거렸으니 주님께서 얼마나 속이 터지셨겠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전도자가 식사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아! 말씀 공부 시간이란 말일지 모른다는 정도로 영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인들이 조심해야 할 만한 누룩은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교파들의 비 성서적인 누룩이 있을 것이며, 심지어 그리스도의 교회 내에까지 만연하고 있는 잘못되어진 누룩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를 혼동케 하는 누룩들을 정말 조심해야 할 줄 압니다. 누구의 말이든지 간에 성경과 차이나는 말이라면 주님께서 주의하라는 ‘누룩’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룩은 적은 것이로되 큰 덩어리를 다 부풀게 할 것이므로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3]세 번째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지방에 가시게 됩니다. 물론 이곳도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인데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우선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었던 곳이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한 2년 전도를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2년여 전도의 성과를 평가해 보시고 또 그런 기회를 통해 그가 더 가르쳐 주고자 하는 핵심적 교훈을 가르치시려고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라 하시니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에레미야나 또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오기로 되어 있는 인물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뭐라 하느냐 보다도 날마다 생활을 같이하고 이미 상당한 제자 교육을 받은 제자들이 과연 주님을 누구라고 생각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자들 중 제일 먼저 나서는 제자가 누구여요? 베드로이지요?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을 미리 준비해 둔 것 같이 명확한 답을 드렸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분석해 본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이며 히브리어나 아람어로는 메시아인데 메시아의 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옛날 왕이나 제사장을 세울 때에 기름을 부었던 것을 연결 지어 메시아는 만 왕의 왕으로 세워질 기름 부은 자란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나 메시아는 똑같은 말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세에 ‘메시아가 오시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여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을 소망해 왔기 때문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 메시아란 바로 예수님이시란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오시기로 예언된 엘리야나 세례 요한이나 예레미야가 아니고 바로 그분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라는 고백을 하므로 세상 사람들보다 한 발자국 앞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살아 계신’은 지금도 세상과 우리를 관리하시고 섭리하실 뿐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란 말일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과 같은 존재, 하나님과 한 몸이신 존재를 말한 것으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그분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베드로가 고백한 그 당시의 고백과 현재 우리가 고백하는 고백은 비록 문장은 똑같은 문장일지 모르지만 뜻은 현재 우리의 고백이 보다 깊은 뜻이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베드로의 고백은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백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겠지만 그 당시 베드로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부활하신 후 승천하셨다가 심판하러 재림하실 그런 영적 구세주로 믿었던 것보다도 이스라엘이 소망한 ‘메시아’정도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이 죽으셨다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실 때에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대답할 때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아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은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그 당시 고백은 주님의 칭찬을 받기에 충분했나 봅니다. 주님께서 칭찬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이란 말은 요나의 아들 혹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란 말이며 그런 고백을 한 베드로는 복이 있는 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복이 있듯이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도 복이 있는 자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오 나를 구원할 구세주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묻힌바 있는 정도밖에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때에 그가 마음속에 간직하셨고 소개하시기를 그렇게 바라시던 ‘교회’ 세우실 것을 예언하시게 됩니다. 교회를 세우시되 베드로가 고백한 그런 ‘확고한 믿음’의 기초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인 시몬이었는데 주님께서 시몬에게 베드로란 이름을 이때 주신 것 같습니다. 베드로란 반석이라는 헬라어에서 온 것이며 그에게는 게바라는 이름이 또 있는데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의 아람어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바와 베드로는 똑 같은 반석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고백한 그런 튼튼한 믿음을 반석으로 보신 것이며 교회의 탄생은 그런 튼튼한 믿음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때 베드로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성경 구절 하나를 잘못 해석하므로 천주교가 태어났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가 첫 교황이요 대대로 교황이 선출되므로 천국 열쇠를 가진 자들이 이어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황은 예수님의 대리권 자가 된 것입니다. 천국 열쇠는 그런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한 무리요 철저하게 잘못된 해석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교회’와 천국 열쇠의 ‘천국’과는 같은 뜻이며 천국 열쇠란 앞으로 전파되어야 할 복음 전도의 문을 의미한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는 오순절에 3천명이 새로 태어나도록, 아니 예루살렘 교회가 태어나도록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천국 열쇠를 사용했으며,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받게 하므로 이방인들을 위해 천국 열쇠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후 많은 순교자와 전도자들이 이 천국 열쇠를 사용하므로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누구보다도 사도 바울은 이 천국 열쇠를 많이 사용하여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들의 심령의 문을 열어 주고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했던 것입니다. 땅에서 이 열쇠를 사용하면 하늘 나라 문이 열릴 것이요, 땅에서 이 열쇠를 사용하지 않으면 하늘 나라 문이 닫혀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인들도 우리가 받은 천국 열쇠를 많이 사용하므로 우리 예배당도 채우고 더 넓은 의미에서 꼭 우리 교회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천국 백성을 늘리는데 충실한 일군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이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 만족스런 신앙 고백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주님을 아는 지식과 보는 눈이 다르므로 주님이 누구 신지 각자의 고백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세우되 신앙 고백 위에 세우시겠다고 했는데 신앙 고백이 각자가 다 다르게 된다면 세워질 교회도 각양 각색의 교회가 세워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증거 하는 예수님에 대한 같은 지식을 갖게 되므로 같은 질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으며 같은 질의 고백을 드릴 수 있게 된다면 그 같은 고백 위에 세워질 교회들은 일치를 이룰 것이며 일치를 이룬 교회들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룰 일치된 신앙 고백이란 비록 각자의 표현에는 자율성이 있겠지만 본질에서는 일치를 이루는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이 순수한 성경적 신앙 고백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하늘로서 오는 특별한 표적 보여주기를 구해 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늘로서 오는 특별한 표적이 그 이상 없어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표적 중 표적인 요나의 표적을 이미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갖는 순수한 신앙 고백에 누룩을 뿌려 인본주의의 신앙으로 변질되게 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상을 그대로 믿지 아니하고, 성경에 있는 예배와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사람 생각으로 손질하는 것은 마귀가 뿌린 누룩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은 하나님의 존재로서 인간을 위해 사람의 몸으로 땅에 오셨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신 분이시며, 주는 내 모든 것의 주인이시오, 나의 영적 구원자이시며 세상 끝날에는 불신자들을 심판하시어 벌을 내리실 것이며 믿는 자들은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가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도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영원토록 성도들이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며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서 앉으시어 우리의 모든 간구를 아버지 하나님께 전달해 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를 간섭하시고 보호하시어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며,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능치 못함이 없게 하시는 분’인 것을 믿고 고백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순수한 신앙 고백이 기초된 새 생명이 태어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새 생명을 주님께서는 ‘교회’ 또는 ‘천국’이라 부르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순수한 새 생명인 개체들이 증가되어지기를 바라시어 ‘교회 열쇠’ 또는 ‘천국 열쇠’를 우리 각자에게 주시어 천국 문을 열어 더 많은 동질의 천국들이 이어져 큰 천국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이런 천국, 이런 교회는 주님이 세우셨고 주님이 주인이시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란 사람들이 만든 어떤 교파나 당파가 아니므로 철저하게 주인이 바라시는 대로 순수한 신앙 고백과 말씀대로의 순종의 생활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와 신앙 고백을 기초로 하는 튼튼한 개체 교회들을 재건하고 또 주님께서 주신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우리와 동질의 교회들이 자꾸 세워져 연결되어지게 하므로 주님으로부터 모두 칭찬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