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진 형제에 대한 3 단계 – 마태복음 18:15-20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첫째 되는 계명과 둘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지요? 첫째 되는 계명은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이고 둘째 되는 계명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이 좋다는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도 합격이요 사람과의 관계도 합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기독교를 바로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런 대로 잘 유지한다 하더라도 이웃과의 관계에는 종종 실패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과는 문제 될 것이 없으나 살다 보면 내게 폐를 끼치고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자와의 관계를 잘못 처리하므로 내 믿음에 큰 손해를 보게 되고 또한 상대방이나 교회 전체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됩니다.

좋은 신앙이란 평상시에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게 피해를 주거나 또 내가 몹시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떻게 이를 소화하고 이를 잘 처리했느냐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두 좋은 신앙을 갖기를 바라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점이라 할 수 있을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갖도록’하시기 위해 오늘 본문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강해를 통해 모든 인간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남이 나에게 잘못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숙제를 풀게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세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먼저 이해하고 그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혼자 찾아가서 권면하라(15)

[2]두세 증인과 함께 가서 권면하라(16)

[3]교회에서 권면하라(17-20)입니다.

 

[1]첫 번째로 “혼자 찾아가서 권면하라” 입니다.

본문 15절을 보니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 되어 있습니다.‘네 형제’라는 말은 교인 중에서, 또는 성도 중에서란 말이며 이 범죄는 하나님을 상대한 범죄가 아니라 내 개인에게 범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인 중에서 우리 개인에게 어떤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경우라면 그 사람의 뒤에서 그 사람을 헐뜯고, 나쁜 소문을 퍼트려 그 사람의 인격에 손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의 경우는 그 사람을 대면해서 저지른 잘못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거나 그 사람의 물질에 손해를 끼쳤거나 화가 나서 말로 또는 물리적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 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이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에 어떤 사람은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피해를 준 사람을 되도록 피하면서, 서로 말을 안하고 지내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어떤 자는 그 사실을 자기와 친한 사람들에게 알리어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고 상대방의 잘못을 남들에게 소문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가 있겠습니까? 보복을 가하는 경우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피해 입힌 것에 충분히 복수를 해 주는 경우입니다.

이와 같은 어떤 성도 개인끼리에서 발생한 사소한 일인데도 그 작은 일 때문에 교회 전체가 시끄러워질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데 피차 인사도 않고 낯을 피하는 교인이 있다면, 아니 그 사람 보기 싫어서 교회 출석을 중지한다고 한다면 교회 분위기가 어떻겠어요? 아니 서로 자기가 옳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기 주장을 하게 되면 그 말만 들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옳게 느껴지므로 교회는 자연히 두 패로 나누일 수밖에 없게 될 터이니 교회 분위기는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힘써 일하는데 큰 지장이 있게 될 것입니다. 아니 서로 보복하느라 만나기만 하면 욕설을 퍼붓고 머리채를 잡고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교회 내에서 그런 꼴을 본다면 그 교회 상은 어떻게 되며 믿음이 약한 교인들은 얼마나 상처를 입겠습니까? 교회 내에서 이렇게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초신자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이고 대개 목사, 장로, 집사들의 일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지만 사람들 중에는 하나를 둘로 갈라놓으려고 입과 발걸음을 열심히 놀리는 경우를 교회에서 쉽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이 주인 노릇을 하는 교회들에서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교인 중에서 내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을 하셨습니까? 지혜로 최선을 다하셨으리라 봅니다. 그런 경험을 통하여 좋은 제안들이 많이 추천될 수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는 주님께서 제안하신 것을 듣게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최선의 처방은 ‘가라’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 말고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찾아가지 않으면 내 마음에 미움이 점점 더해지고 복수심이 생기며 형제 사이를 갈라놓는 골이 점점 깊어질 것이기 때문에 너무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미리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찾아가되 ‘너와 그 사람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누구에게 그 사실을 나누지 말고 아직 혼자만 알고 있으면서 누구를 데리고 함께 가지 말고 또 상대방의 가족이나 어떤 사람이 없는 가운데 단 둘이 있을 때에 그 사람의 잘못을 알려 주고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이 주는 의미는 옆에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자존심도 있고 하여 자기가 잘못한 것을 변명하거나 반대로 자기가 잘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입니다. 또 혼자 찾아가는 그 목적은 형제가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 혼자 가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혼자 찾아가는 목적이 형제가 자기의 죄를 깨닫게 하여 그 죄를 뉘우치게 하여 다시는 그런 범죄의 길에 있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가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권고한다고 하여도 상대방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잘못을 사과하는 경우란 매우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교인 중에서도 염치도 없고 예의도 모르는 자들이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내게 잘못한 사람에게 욕설을 퍼붓고 복수하기는 쉬어도 진심으로 형제를 사랑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그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선한 양심이 발동하도록 권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와 지혜와 조심성과 자기 부정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철저한 마음의 준비와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서 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 가셨고 내 죄를 주님께서 용서해 주셨다는 차원에서 주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시듯 나도 내 형제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각오로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사이가 나쁜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내 말 표현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항을 할 수도 있고 감동을 받아 회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찾아가는 사람과 찾아오는 사람을 맞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 전연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를 돌이켜야 한다는 목표만 향해 끌고 가야지 그 결과가 오지 않는 다해서 이젠 내 쪽에서 화를 내고 싸워서는 아니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최선의 노력에 따라 형제가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시인하여 두 형제간에 다시 성도의 교제가 회복되어진다고 한다면 ‘형제를 얻은 것’이라고 주님께서 표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찾아가지 않았다면 자기가 무슨 죄를 지은 지도 모르고 계속 그런 실수를 하게 될 것이므로 영원히 성도의 바른 교제도 이뤄지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끊어지면 영원히 잃은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두 번째는 “두 세 증인과 함께 가서 권면하라” 입니다.

혼자 가서 권면해서 듣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을 중지해 버리고 그 형제를 포기해 버리지 말고 이젠 두 세 명의 형제들과 함께 가서 권면해 보라는 것입니다. 두 세 명과 함께 가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형제의 잘못을 남들에게 퍼지지 말고 함께 권면하러 가기를 바라는 두세 명에게만 말하라는 입을 아직 다물고 있으라는 의미이고 둘째로는 죄지은 형제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몇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되며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잘못한 사실을 최소한 두세 명이 알고 있으니 더 퍼지지 않게 잘못을 뉘우치고 빨리 되돌아오라는 의미도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두세 명의 증인들이 객관적으로 형제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 편견과 이기적인 태도를 막고 또 사는 지혜로 충고해 주므로 중재자들을 통해 형제를 구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 내포된 것입니다. 물론 그가 듣지 않았을 경우에는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한 것인지에 대한 증인이 된다는 의미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여기 두세 명의 증인이 함께 갈 때의 방향도 죄진 형제가 어떻게든지 자신의 잘못을 알게 하고 돌이키게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는 꾸지람을 주고 선도하여 형제를 얻기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2-3명의 집단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살리고 반대로 집단이 주는 단점은 줄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단체의 위압감에 오히려 크게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 함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자 중에도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들이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두세 증인을 동반하여 사랑으로 권면을 했어도 고집을 부리고 권면을 듣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말고 이들을 더 많은 수의 형제들 앞에서 권면하도록 셋째 단계를 거치도록 권고하십니다.

 

[3]세 번째는 “교회에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제를 왜? 교회에까지 가져오라고 하셨을 까요? 하나님께서는 개인 개인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뜻이고 한 개인 문제가 교회에서 잘 해결이 되어지지 않을 때에 그 개인과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큰 무리에게까지 큰 손해를 가져다주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개인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죄를 싫어하시고 또 교회를 갈라놓는 분열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그런 심각한 상황에까지 가지 않도록 교회 앞에 내 놓고 잘못을 훈계하고 잘못을 뉘우치게 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즉 숫자를 2-3명에서 더 늘리므로 단체가 주는 이점을 살리자는 뜻이고 교인 중에서도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이런 절차에 의해 훈계됨을 보여주는 의미도 있을 줄 압니다. 요사이는 교회가 징계하는 일이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인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교인 징계를 하는 교회인 줄 알면 누가 그 교회를 오겠어요. 그런 이유로 교인들이 방자한 행동들을 많이 하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이민 교회들 얼마나 많습니까? 여기 저기서 환영하는데 징계를 받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징계를 겁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그 사람이 어떤 개인에게 잘못한 것이라면 개인적인 문제이니 교회에서는 상관말자고들 하리라고 봅니다. 어떻습니까? 가정에서 형제간들끼리 문제가 생겼으면 부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건 개인적인 것이니 상관 않겠다고 하십니까? 아니지요? 잘 잘못을 가리고 시정하고 두 사이가 원만해 지도록 매도 때리고 책망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부모는 무책임한 부모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개인적인 문제에 깊이 관여하시어 개인적으로 충고해도 듣지 아니하고 2-3명이 충고해도 듣지 않으면 더 많은 수의 교인들 앞에 세우고 책망을 하여 자기의 잘못을 겸손히 수용하고 잘못을 고백하게 하므로 잃을 뻔했던 형제를 찾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앞에 세우라는 말은 교회 내에도 그런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있을 것이므로 세상 재판장에게 재판을 받으므로 불신자가 성도를 재판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뜻도 내포된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 앞에 세워야 할 때에도 교회의 권위만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연약한 처지의 인간들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온유, 겸손과 사랑을 가지고 그 형제를 돌이켜 형제로서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세워야 할 것입니다. 남의 짐을 나눠진다는 형제애를 가지고 세울 때에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있으리라 봅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교회앞에 세운 일이 있었는데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여 교회를 상대로 고소를 했던 사건이 미국에서 일어났고 미국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다움을 느껴 보았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면 회개하고 형제와 다시 하나가 되겠습니까? 명예 훼손으로 교회를 고소하시겠습니까? 교회를 고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주님께서는 그 형제의 영혼을 위해 교회 앞에 세우라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의 권고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정도의 사람과는 전체 교인들이 성도로서의 친교를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공동체로서의 소외의 압력을 주라는 말로 풀이될 수 있겠습니다. 이 교회에서 큰 실수를 했음을 다른 교회에서도 잘 알면서도 참회의 의식 없이 다른 교회에서 받아 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그 사람의 영혼에 대해서는 전연 관심이 없고 인간 놀음으로 즐기자는 처사라 할 것입니다. 아니 교회에서 그렇게 치리 한 자를 어떤 교인들이 옛날과 똑같이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주는 것은 그 사람이 영원히 버림받도록 격려하는 결과를 낳게 할 것입니다. 그가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면 받아 줄 사랑은 갖되 그런 태도를 계속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버림을 받는 존재인 것을 깨닫게 하고 형제들과의 따뜻한 친교를 나누지 못하여서 매우 외로움을 느끼게 하여 돌아올 수 있는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인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결론을 우리 교인들은 심각하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요한 복음 20:23 의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적더라도 우리 교인들이 사랑으로 어떤 형제를 권했는데도 그 권면을 받아 드리지 아니하여 우리 교회가 그를 이방인 같이 여기기로 선포를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릴 것이고 우리 교회가 그의 회개를 보고 그 결정을 철회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받아 주시겠다는 결론입니다. 더 좁혀서 두세 사람의 진지한 결정은 주님께서 그대로 인정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수가 적어도 그런 주님의 권위를 가지고 교회를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큰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얼마나 따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교회라야 주님이 인정하시는 권위 있는 교회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내 죄를 하나님 앞에 다 고하고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평화를 유지해야 함같이 모든 성도들과도 평화를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형제의 영혼을 사랑하지 않고 형제를 귀히 여길 줄 모르고 형제들을 괴롭히고 이런 일로 교회에 피해를 주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성도간에 평화를 원하시는데 평화를 해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내가 형제를 괴롭혀서도 아니 되겠지만 그런 실수를 내가 저질렀다면 즉시 찾아가서 죄 용서를 받고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단에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먼저 형제와 사화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 형제가 불편하고 마음에 부담이 되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교인 중에서 내게 실수를 하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피해를 본 내가 먼저 찾아가서 그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 주되 지적한 것을 감사하게 받아 드릴 수 있도록 겸손과 온유한 태도로 권면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들이므로 아니 우리도 형제가 범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잘못했음에도 내가 찾아가서 화목을 시도하라는 주님의 교훈입니다. 만일 듣지 않으면 2-3명이 함께 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데리고 와서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즉 형제가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를 최소한 3번쯤 시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형제의 영혼을 그만큼 사랑하라는 교훈이 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죄를 범한 형제가 자기 죄를 깨닫고 용서를 빌게 하며 결과적으로 모든 성도들 간에 어떤 갈등도 없이 평화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절차를 밟았는데도 고집을 부리는 자가 있다면 이방인과 같이 여기라 하셨지만 그런 결과를 전제하고 권면해서는 아니 되며 죄를 회개하고 형제의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으로 다시 끈이 메어지게 하는 목표로 권면을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랑의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교회의 권면까지 받아 드리지 아니한 자는 형제로서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하겠다는 것이므로 교회에서는 이는 그 이상 이 교회 교인이 아님을 선포하여 교회의 권위와 순결성을 유지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된 우리로서는 현실로서 어려운 사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모든 성도와 화평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