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제목은 결혼의 신성함입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결혼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차이가 있으리라 보지만 교회 안에서도 결혼관에 대해 많은 견해 차이가 있으리라 봅니다. 아니 결혼관보다도 이혼에 대한 의견은 더욱 갖가지여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 제목이 이혼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내 생애에 이혼이란 있을 수 없다든지 내 사전에는 이혼이란 낱말이 없다는 말 말입니다. 비록 날마다 싸우고 별거 생활을 할 망정 호적에 이혼이라는 기록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은 호적 청결 주의자도 있을 것입니다. 또 반대로 이런 이야기도 흔히 들어 보셨을 줄 믿습니다. 그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해어지는 것이 백번 낫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의견에 손을 드시겠습니까? 아마 50 대 50정도 되리라 짐작해 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결혼과 이혼 또 독신 생활에 대한 주님의 교훈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는 우리 모두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시므로 주님 오실 때에 정결한 신부로 나타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바리새인들의 질문(1-3)
[2]결혼에 대한 주님의 교훈(4-6)
[3]이혼에 대한 주님의 교훈(7-9)
[4]독신 생활에 대한 주님의 교훈(10-12)입니다.
[1]맨 먼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1달 전쯤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베레아 지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곳에 많은 병자들이 주님께 찾아와 병 고침을 받았고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온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질문은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였습니다. 즉 어떤 이유가 됐든지 간에 이혼 증서만 주면 이혼이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혼에 대한 두 가지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샴마이 학파의 주장으로 ‘음행한 연고 없이는 이혼은 허락될 수 없다는 아주 보수적인 주장이며 또 하나는 힐렐 학파의 주장으로 남편이 아무 이유로도 이혼 증서만 주면 이혼이 가능하다는 진보적인 주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 두 학파가 근거한 성경은 신명기 24:1로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입니다. 보수파는 “수치 되는 일” 영어에서는 “some uncleanness” “some secret thing” 을 오직 음행한 일로만 해석을 하였고 진보 파에서는 남편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든 일에 적용을 했습니다. 즉 음식을 잘못하거나, 자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자기 부인이 싫어지거나 하면 이혼이 가능하다고 해석을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해석이 맞겠습니까?
세례 요한이 왜 목베임을 당했나요? 헤롯왕이나 헤로디아에게 ‘이혼 반대 또 결혼 반대’의 분명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자기들의 욕심대로 이혼하고 또 재혼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을 죽였었던 것입니다. 즉 결혼과 이혼 문제는 진보 파와 보수파간의 심한 논쟁 거리였는데 이 제목을 가지고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께서 자기의 주장을 내 놓으심으로 진보 파로 부터든 보수파로부터 이든 강한 반발을 사게 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2]두 번째는 결혼에 대한 주님의 교훈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결혼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강조하시므로 그들의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시게 됩니다. 주님께서 깨우쳐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본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하신 점입니다. 아담 한 남자와 하와 한 여자를 만드신 거와 마찬가지로 한 남자에게는 한 여자가 준비되어 있다는 일부 일처의 의미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강조하신 점은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그 이상 둘이 아니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하는 연합체가 되었다는 말로 아담은 자기 아내를 내 살중의 살이요 내 뼈중의 뼈라 표현함같이 아내의 살이 남편의 살이요 아내의 뼈가 남편의 뼈가 되는 결합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엡 5:29에도 ‘아내’를 ‘자기 육체’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의미에서인 것입니다. 육적으로 서로 뼈가 되어 주고 피차에 살이 되어 주는 육적 연합, 또 함께 살면서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한 공동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7:3-5에 보면 아내와 남편은 서로 져야 할 자기 의무를 다하고 각자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한다고 하심으로 제 몸을 제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자는 것까지도 제 맘대로 방을 따로 써서는 아니되고 오직 기도 시간에만 따로 있다가 빨리 합하라고 한 것입니다. 부부는 피차에 자기 부정의 생활을 하는 관계로 서로에게 바쳐진 몸이요 계속해서 헌신해야 할 대상이요 서로를 위해 창조된 존재로서 부부는 오직 호주머니가 하나이요 부엌이 하나이며 침실이 하나여야 한다는 육적 연합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한 몸” 또 “연합”이란 함께 자고 먹고 또 애 낳고 사는 육적 연합뿐 아니라 정신적 연합과 영적 연합을 말해 주십니다. 정신적 연합이란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복종하면서 지식과 취미와 철학을 함께 나누는 정신적 동반자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영적 연합이란 영혼의 양식과 영양분을 함께 나누는 영적 동반자로 하나님께서 부부를 다스리도록 내 맡기며 말씀에 따라 사는 연합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벧전 3:7과 같이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고 한 소망 가운데 세상을 이기고 함께 살아가는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주님의 마지막 강조는 하나님이 짝 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둘이 한 몸을 이루도록 연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연합시키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있어서 연합시키신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살도록 연합시키신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중심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한 가정을 이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을 사람이 변경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주권자는 남편도 아내도 아니요 하나님이신 것을 강하게 표현해 주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므로 사람은 나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신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이혼에 대한 주님의 교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은 나눌 수 없다고 주님께서 결론을 내리시자 바리새인들은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질문을 하였고 주님께서는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답을 하시게 됩니다. 모세 때부터 예수님이 살아 계시는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자들을 너무 천대한 모양입니다. 물건을 쓰다가 필요 없으면 버리듯이 남편의 마음에 아내가 싫어지면 쉽게 버리는 나쁜 습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자의 인권이 전연 무시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모세의 시절에 이혼 증서를 주고 아내를 내어 버리라 한 것은 이혼 자체를 전연 허락지 않으므로 부인들이 심히 매맞거나 아니면 죽여 버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므로 여자들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혼의 문을 열어주고 이혼 증서를 주어서 헤어지도록 하고 선의의 피해를 본 그 여자가 다른 데로 시집 갈 수 있는 신분으로 보장되도록 한 것이나, 주님의 말씀은 헤어지도록 한 것은 ‘너희의 완악함’ 때문이지 본래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명이 끝날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하나님을 받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며, 자기의 고집과 자기의 욕심대로만 살려고 하는 완악함 때문에 모세가 이를 허락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음행한 이유 이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은 간음이라고 결론을 내리신 것입니다. 막 10:11 에 보면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고 기록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에도 로마 문화권에 있던 이방인들 중에는 남편을 버리는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의 교훈은 남편이나 아내가 음행을 저질렀으면 꼭 이혼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이혼의 조건이 된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뜻은 비록 음행의 연고가 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으면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싸주며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고 살라는 것입니다.
[4]네 번째로 독신 생활에 대한 주님의 교훈입니다.
주님께서 아주 보수적으로 결론을 내리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이에 큰 부담을 느꼈나 봅니다. 그들이 주님께 투정 비슷한 말을 하기를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 한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혼이 허락이 안된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독신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타고난 자라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떤 자는 나면서부터 성적으로 불구자인 고자로 태어난 남자가 있고, 또 왕궁에서 왕후를 돌보기 위해 수술을 받은 고자가 있고 또는 사도 바울과 같이 천국 일을 위해 스스로 택한 고자 즉 독신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독신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 자는 그 길을 택하라는 교훈을 주시게 됩니다.
고린도 전서 7 장에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을 권장하나 혼자 살게 되므로 음행할 수 있으니 그럴 경우에는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정욕이 불타는 것보다는 혼인하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만일 남편이나 아내가 어떤 일로 나뉘어졌으면 그냥 지내든지 다시 합하든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기 개인의 의견이라고 전제하고 믿지 않은 배우자가 갈라서기를 원하면 허락해 주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불신자와는 이혼하라는 것이 전연 아니고 불신자 편에 서서 그가 바라는 대로 대우를 해 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독신을 권장하고 있는 이유가 두 세 가지 있는데 하나는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웠으므로 주님 오심을 사모하라는 의미이고 둘째는 독신자들은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할꼬 염려하나 기혼자들은 어떻게 상대 배우자를 기쁘게 할꼬 하게 되므로 주님을 보다 충성스럽게 섬기기 위해서 였으며 셋째로는 시집가는 것이 죄가 아니로되 육신에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을 이룩하기 위해 많은 육체적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이유인 것입니다. 과부라도 시집갈 권리는 있어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 하라’ 고 명령을 하시므로 오직 믿는 자와만 하라는 권면을 주신 것이며 그의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고 결론을 짓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결혼, 이혼, 재혼, 독신 생활에 성경적 교훈을 바로 깨닫고 그 근본 정신에 따라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성경적 교훈은 무엇이며 근본 정신이 무엇인가요?
첫째는 한 몸을 이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루고 함께 산다는 말은 자기를 부정하고 피차 복종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육체와 정신과 영적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더러는 육체적으로는 하나 되어 애 낳고, 시간과 물질을 서로 함께 쓸 수 있으나 마음으로는 각각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또한 영적으로 피차 동반자가 전연 되지 못하는 부부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결혼이란 자기를 상대에게 온전히 맡기는 육체적 연합이 전제된 것이며 자기를 부정하고 상대방을 내 몸의 일부로 알고 사랑하고 피차 희생하며 또한 피차에 복종하는 정신적 연합이 전제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 말씀을 나누고 영적인 삶을 함께 살아가는 영적인 연합을 두고 “한 몸” 또는 “연합” 또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적 결혼 생활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부가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므로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함께 살고 정신적으로 함께 살며 영적으로 함께 사는 동반자를 두고 한 몸 이룬 부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어떤 부부가 어떤 부정적 이유 때문에 별거하거나 또는 자기 몸을 주장하고 몸을 나눌 수 없다면 그것은 연합이 아니며 이혼의 한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집과 교만으로 피차에 사랑을 거부하고 복종을 거부하며 희생을 거부하는 부부가 있다고 한다면 정신적으로 연합이 깨진 상태이므로 역시 이혼의 한 형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영적으로 피차에 영양을 나눌 수 없고 오히려 신앙 문제로 큰 갈등을 느끼거나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면 연합된 한 몸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형태만 가지고 있을 뿐이요 주님이 바라시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결혼의 근본 정신은 육적, 정신적, 영적인 연합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께서 짝 지어 주실 때에는 목적이 있어서 짝지어 주신 것으로 그 목적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결혼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행여 라도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 하지 말고 함께 하나님의 뜻을 찾고 힘을 합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큰 목적으로 결혼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결혼 기본 정신은 순결입니다.
이혼을 금하는 기본 정신이 바로 순결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것이며 결혼을 장려하는 것이 바로 이 순결을 유지하여 주님의 신부로서 합당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결은 한 남자에게는 한 여자에 한정하여 사랑하도록 제한한 것입니다. 그 것을 벗어나는 것을 음란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자가 욕심이 나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또 다른 여자에게 장가가는 것을 이혼이라 하고 이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외에 이방 신을 섬기는 것도 음행으로 보는 것도 똑 같은 원칙인 것입니다. 한 남자에게는 한 여자, 한 여자에게는 한 남자로 제한하여 육체적, 정신적, 영적 연합을 이루는 순결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완전한 연합,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 또 순결이라는 결혼의 기본 정신이 우리 생활에 적용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한 전도자가 자기의 아내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기는 차를 타고 강물에 빠져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 가정 불화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혼을 금하기 때문에 이혼은 못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살인까지 했다면 이혼을 하지 말라는 기본 정신을 너무 모르는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차라리 갈라서는 것이 죽이는 것보다 나았을 것으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까? 이혼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부부간에 완전히 연합되지 못하고 일평생 전쟁을 일삼아 교인들에게나 이웃 사람들에게 교인으로서 덕을 끼치지 못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류로 이혼 수속은 안하고 별거하는 것도 이혼과 다를 것이 전연 없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혼을 금하신 것은 호적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 전연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 소극적인 것을 칭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연합되었다는 적극성을 칭찬하는 것이며 재혼하지 않았다는 소극성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순결을 지켰다는 적극성을 칭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혼 당한 자가 다른 대로 시집가거나 장가를 가는 것이 간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자나 독신으로 있거나 음욕을 품는 자는 역시 간음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혼 당한 자가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서도 재혼은 간음이니 그대로 혼자 산다고 자기를 변호한다면 그 분은 순결의 기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을 해야 할 분이 계십니까? 온전히 합할 수 있겠는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가 되겠는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 순결을 위한 것인지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결혼을 하셨습니까? 최선을 다하여 온전한 연합을 위해 힘쓰고, 결혼 생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도록 힘쓰며, 부부 피차에 순결을 지키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혼을 당했습니까? 때가 얼마 남지 안았으므로 신랑 되신 주님을 소망하며 그냥 지내십시오. 이것을 받을 만하지 못하십니까? 아니 재혼하는 것이 사람에게 덕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으로 믿고 계십니까? 재혼하십시오. 다만 결혼의 기본 정신을 확인하고 확신이 있을 때에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