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의 비유 – 마태복음 25:14-30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세상 종말에 대한 세 비유가 주어지는데 지난 주에는 열처녀의 비유를 소개받았고 오늘은 달란트의 비유를 소개받게 되며 다음 주는 양과 염소의 비유를 소개받게 되겠습니다. 세 비유가 다 세상 종말에 관한 비유인데도 각기 다른 각도에서 교훈을 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줄거리로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갖도록 성령 충만한 믿음에 초점을 맞추었고 오늘 주시는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구체적 삶의 열매인 행위가 있어야 함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는 선과 악의 심판에 비중을 두고 교훈을 해 주고 있습니다. 세 비유에서 모두 하나님의 심판에서 상을 받을 자와 벌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을 분명히 해 주고 있으나 상 받는 자보다는 벌을 받을 자에 더욱 힘을 주어 강조하시어 성도들이 행여 라도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늘 준비되는 삶을 살고 성실하게 살아라는 경고를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려면 이틀밖에 남지 않은 절박한 순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하늘나라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뜨거운 마음으로 가르치시고 계신 주님의 심정을 상상해 보시면서 바로 그 주님께서 지금 우리를 향해 강한 어조로 충고를 주시는 말씀에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주님의 충고를 받아 드리므로 모두 주님께서 예비하신 복된 잔치에 다 참예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종들에게 소유를 맡기심(14-15)

[2]소유를 맡은 종들의 행위(16-18)

[3]충성된 종들과의 결산(19-23)

[4]악한 종과의 결산(24-30) 입니다.

 

[1]맨 먼저 종들에게 소유를 맡기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4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라 하시어 어떤 사람이란 주님을 말하는 것이며 종들이란 성도들 아니면 모든 인간들을 말하는 것이고 타국에 간다는 말은 주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심을 비유한 것입니다. 종들을 불러 소유를 맡기셨다는 말은 모든 사람들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각자에게 재능 즉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셨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또 어떤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나 책임을 주셨다는 말이며 나누어주고 떠났다는 것은 재능과 책임을 주시고 그들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간과 기회를 주셨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달란트란 무개의 단위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여기에서는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 한 데나리온은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므로 한 달란트는 6,000날 즉 약 20년 동안 일을 하여 벌 수 있는 돈이라고 대략 환산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에서 보면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와 한 달란트를 각각 맡겼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다섯 달란트라면 노동자가 100년 동안 일을 해야 얻는 돈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본문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큰돈을 받았느냐에 의미를 두지 아니하고 각각 다른 액수 즉 각각 다른 재능을 받았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5절에 보면 ‘각각 그 재능대로’ 어떤 이에게는 다섯, 어떤 이에게는 둘, 어떤 이에게는 하나를 주셨다고 했는데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각자가 해내야 할 책임을 다 받았고 또한 그 것을 해 낼 수 있는 능력도 다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종들을 불러 주인의 소유를 나누어 주셨단 말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주인이시요,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의 종이므로 종은 바로 하나님의 것이며 종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여 재산을 늘렸다 하드라도 그 재산은 주인의 소유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과 명예와 높은 지위 때문에 교만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이 주시고 맡기신 것을 가지고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며 이런 삶을 살아야 충실한 청지기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 43:1 에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하였는데 이 말씀을 통해 내가 가진 그 무엇이든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두 번째로 소유를 맡은 종들의 행위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6절과 17절을 보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이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그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시 가서’라는 말은 자기가 할 일을 지체치 않고 책임감 있게 당장 했다는 말이 되겠으며 장사를 하여 이를 배나 남겼다는 것은 주인으로부터 많이 받은 자나 적게 받은 자가 주신 재능을 가지고 자기의 최선을 하였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생산적인 삶을 살았다는 말이 되겠으며 감사가 있는 삶이요 희생이 있는 삶이요 이웃을 위한 눈물이 있는 삶을 살았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종이라는 자기의 신분을 잘 알고 종으로서의 위치를 잘 지켜 자기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삶을 살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18절에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땅을 파고 묻어 두었다는 말은 무슨 말이 될까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재능과 시간을 활용하지 아니하거나 또 자기가 맡은 책임을 회피하고 개으름을 피웠다는 말이 되겠으며 결과적으로 자기 주인의 권위를 무시하고 종이 종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삶을 살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 산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충성된 종들과의 결산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9절에 보면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새”’라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인간들이 볼 때에는 주님의 오심이 더디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랜 후에라 표현되었을 것입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무엇을 했다고 했는가요? 회계를 했다고 했습니다. 마 16:27 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 했는데 행한 대로 상을 주시거나 벌을 주시기 위해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회계를 했다는 말은 종들이 분배받았던 재산이 결코 종들의 것이 아니고 임시로 관리를 맡았던 것임을 분명히 해 주고 있으며 언젠가는 주인이 오셔서 결산을 보실 것을 강조하는 말인 것입니다.

종들이 각각 주인에게 나와서 자기들이 분배받았던 것들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주인께 보고를 드리게 되는데 맨 먼저 5달란트를 받은 종이 나와서 말하기를 “보소서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자기가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를 드리게 됩니다. 이 보고를 들은 주인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라고 칭찬함을 보게 됩니다. 잘하였다는 말은 재능과 시간을 묻어 두지 아니하고 활용을 했다는 말이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은 많은 이익을 남겼다는 어떤 결과만을 보고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받은 재능을 최선을 다해 주인이 바라시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칭찬인 것입니다. 마 25:34에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하였고 계 2:26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 하였고 계 3:21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않게 하여 주신다”고 했는데 착하고 충성된 이 종들에게 이런 하나님이 약속하신 즐거움에 참예하도록 허락하심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 있게 볼 것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주인 앞에 나올 때의 머뭇거리지 아니하고 ‘보소서’라고 담대하게 나올 수 있는 모습입니다. 왜 이렇게 담대하게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주인이 오시는 시간까지 성실하게 주인이 바라는 대로 종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도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주인에게 나타나서 두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왔다고 보고를 하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에게 주신 똑같은 칭찬을 주셨음을 보게 됩니다. 즉 다섯이나 둘이라는 이익을 남긴 양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받은 능력만큼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와서 말하기를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왔나이다”라고 보고한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주인을 어떤 사람으로 보았다고 했습니까? 주인은 굳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아주 엄한 사람, 아니면 아주 무서운 사람이란 말입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둔다는 말은 투자도 않고 이익만 챙기는 자, 일은 하지 않고 욕심만 챙기는 자란 말이 되겠습니다. 또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사람이라 한 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기 위해 키질을 하게 되는데 키질도 않고 알곡만 고르려고 한다는 말로서 역시 할 일은 안하고 실속만 챙기는 뻔뻔한 사람이란 말이 되겠습니다. 주인이 그런 분인 줄 알았으므로 혹시라도 장사하다가 실수하여 본전을 잃게되면 아무 것도 주인에게 돌려드리지 못할 것이므로 아예 땅속에 묻어두었다가 주신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주인의 악함을 핑개대고 자기의 개으름과 불충실한 삶을 변명하려는 못된 변명자 임에 틀림이 없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남의 약점을 지적하여 자기의 죄를 덮어버리려는 비양심적인 인격을 가진 자라 하겠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받은 재능이나 책임은 다른 사람이 받은 재능과 책임에 비해 아주 작은 것이므로 스스로 그 가치를 과소 평가하고 자기의 재능이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주고도 자기에게만 한 달란트를 주었다고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사는 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주인이 말하기를 “악하고 개으른 종아, 내가 심지도 않고 거두기를 바라는 그런 나쁜 사람인줄 알았다면 그 돈을 땅에 묻어 둘 것이 아니라 이자라도 더 받을 수 있도록 이자 주는 사람에게라도 맡겼어야 하지 않았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맡겨 주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고 하시며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고 나면 그때야 이를 갈고 슬피울 것이라고 늦게야 후회하는 모습을 보게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은 한 달란트를 묻어 둔 종을 ‘악하고 개으른 종’이라 책망을 하셨고 그가 가진 한 달란트를 빼았았으며, 그를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쫓으셨음을 보게 됩니다. 즉 심판 때에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남의 돈을 빼았고, 또 다른 방법으로 남을 해치는 자만 악한 자라 생각 할 수 있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비록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기가 살아 생전 꼭 했어야할 일을 개으름을 피우고 하지 않은 자도 악한 종이라 하시고 그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여보내시지 않을 것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남을 해치지 않은 것만으로는 하나님께 합격점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지 않은 자도 악을 행한 자나 똑같이 천국에서 제외된다는 충격적인 선포를 지금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계십니다. 뜨겁거나 차거나 해야지 미지근한 것을 토해 내신다는 뜻과 같은 말입니다. 믿음만 있고 행함이 없는 것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둔 자와 똑같고 이런 자는 악한 종이란 책망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회법에서도 악을 행한 자도 범죄자로 심판을 받게 하지만 또한 비록 악을 행하지는 아니했지만 선을 행하지 않은 것도 죄로 단정을 하고 벌을 주게 되는데 믿음 생활에서도 똑 같은 맥락에서 지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게한 자도 살인죄가 있으려니와 물에 빠져가는 사람을 보고 건져주지 아니한 자도 역시 살인 방조자로 취급하여 벌을 주는 것이 사회법입니다. 이런 범죄를 부작위범 즉 할 일을 하지 않은 범죄라 하는데 우리의 신앙에서도 우리에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부탁하시고 명령한 것이 있는데 하지 않으면 역시 ‘악하고 개으른 종’으로 취급되어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질 것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장사하여 이윤을 남기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나이 많으신 분들도 탤런트라는 단어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말고 인기 탤런트에서의 탤런트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소개받은 달란트의 비유를 일명 탤런트의 비유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인간들은 각자가 각기 다른 재능과 책임을 맡았다는 의미에서 돈, 달란트의 비유를 재능의 비유라는 표현으로 바꾼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재능 즉 탤런트를 받았다고 한다면 TV 에 나오는 탤런트들만 탤런트가 아니고 우리 모두는 뭐가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탤런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TV 탤런트들은 TV에서 자기의 재능을 발휘하거나 또는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해내므로 탤런트의 인생이 지속이 되지 탤런트가 탤런트의 생활을 하지 않고 숨어살고만 있다면 그 사람을 탤런트라고 하지 않음과 같이 모든 성도들도 각자가 받은 재능, 즉 은사가 있고 각자가 받은 시간이 있고 책임이 있는데 무대 뒤에 숨어 있어서는 아니 되겠고 우리의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TV 탤런트는 개인 사정으로 무대에 나오지 않아도 악하고 개으른 종이란 책망을 받지 아니하지만 성도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고 자기의 시간을 낭비하고 재능을 묻어 두고 살게 되므로 성도 탤런트의 직임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무대에 나타나지 않으면 ‘악하고 개으른 종’이란 책망을 들을 뿐 아니라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난다는 경고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역시 죄인으로 취급되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재능이 많던 적던, 나이가 많던 적던, 가난하던 부자이던, 싱글이던 커플이건, 자기의 현 형편에 따라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능력을 가지고 일을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은 장사하여 이윤을 남긴 자이고 일을 하지 않고 잠을 자거나 앉아 있는 자는 땅속에 묻어 둔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는 재능도 없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너무 늙었고, 너무 젊었고, 병들었고 함도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런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께서는 비록 마음으로 미워하는 자도 이미 살인자나 같다고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비록 미워하지도 않았는데도 해야 할 사랑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살인한 자나 미워하는 자나 심판 때에 버림받는 똑같은 자리에 쫓겨난다는 충고를 주시고 계십니다. 살인한 자나 남을 미워하는 자나 또는 남을 사랑하지 않은 세 종류의 사람에게 똑같은 벌을 내린다는 것이 퍽 공평치 못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사람이나 또 주님께서 하라는 것을 하지 않은 자나 모두 명령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똑같은 범법자가 되는 것임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기준으로는 전연 납득이 되지 않겠지만 심판은 인간의 기준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되어지는 것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교통사고가 날까봐서 아예 집에서만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로 보이겠습니까? 혹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차를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함과 같이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지 말라는 법에 혹시라도 걸릴까 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는 곧 현재도 죽은 자나 다름없고 죽은 후에도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란 사실을 분명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윤을 남겨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받은 자들과 같이 우리 모두도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즐거움에 참예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 위해 열심히 이익을 남겨야 하겠습니다. 이익을 남기는 일이란 하루하루를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일을 몸소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만족치 못하다는 것을 이미 강조했으므로 그 차원을 이젠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길이란 내 이웃에게 내가 가진 것으로 함께 나누는 것도 될 것이며 하늘 나라를 전연 모르는 자들에게 하늘 나라를 소개하는 것도 되겠으며, 하늘 나라의 사업을 위해 자기가 가진 물질이나 시간, 건강, 지식, 명예를 투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본문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시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묻어 둔 자리에서 일어나 이윤을 남기는 삶, 즉 무엇이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을 날마다 몸소 실천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즐거움에 참예하는 삶이란 주는 삶이요 나누는 삶이며 희생의 삶임을 깨달으시어 지체치 마시고 ‘즉시 가서’ 이윤을 남기시므로 주님 오실 때에 ‘보소서 내가 이윤을 남겼나이다’ 라고 담대히 주님 앞에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