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에 합당한 삶 – 에베소서 4:1-6

방금 봉독한 본문 말씀에 대한 강해 제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 지금 강해하고 있는 에베소서 1장부터 3장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교리적인 내용이고 4장부터 6장까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3장까지가 교리적인 내용이라고 했는데 이 교리적인 내용이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실행하신 인류를 향한 구원의 계획과 우주적인 교회를 통한 만 인류의 통일에 대해 기록된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만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만 인류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심으로 만 인류가 또 하나로 연합되도록 하신 하나님의 통일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들이 1장부터 3장까지에서 가르쳐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교회에 대한 교리인 것입니다.

 

3장까지 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되었고 어떻게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안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를 강해했으며 4장부터 6장까지 에서는 이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 도리인지 성도들의 생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중 한 부분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합당이 행하는 방법(1-2) [2]합당이 행하는 목적(3) [3]합당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4-6)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합당이 행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 처음에 보면 이 권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바울 자신을 소개하므로 오늘의 권면 말씀에 무게를 더 한층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자기를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 하여 주님의 일을 하다고 감옥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는 자의 진지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권하는 권면이니 꼭 실천하라는 말이 되겠지요.

 

그리고 1절이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그러므로’는 1장부터 3장까지에서 강조한 대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한 공동체에서 살도록 해주셨으므로’ 그런 의미를 잘 깨닫고 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이 행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 주시고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해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불러주신 뜻에 따라 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어주셨으니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또 교회에서나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합당하게 사는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겸손했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거나 남의 미움을 사는 경우는 전연 없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늘 문제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만 때문입니다. 남을 깔보는 일, 남을 무시하는 일 때문에 남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사건이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 낫다고 뽐내므로 높아지는 것도 물론 아닌데도 사람들은 자기를 남보다 높이려는 나쁜 속성이 있나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늘 겸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또 온유하라고 했습니다. 온유란 믿음과 사랑으로 잘 다듬어진 둥근 마음을 말합니다. 불의는 미워하고 선은 사랑하며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내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불의나 거짓을 못 본체 하거나 용납하는 것은 온유가 아닙니다. 이웃과의 온전한 친교가 이뤄지도록 가슴을 연 마음이며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이며, 내 잘못을 쳐서 다스리는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오래 참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오래 참음이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들을 주님 오실 때까지 오래 참는 그런 참음을 말합니다. 당장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지금은 기도하며 참는 참음이어야 합니다. 이런 참음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내포된 것입니다. 이런 참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용서하고 인정하고 받아드려야 한다는 권면인 것입니다.

 

겸손하고, 온유하고, 오래 참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용납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3절의 합당이 행하는 목적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합당이 행하는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3절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만 인류를 우주적인 공동체 안에서 다 함께 화평하게 하고 다 하나가 되도록 해 주셨는데 하나 되게 하신 것을 그대로 잘 보전하기 위해서 합당이 행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온유하지 않으면, 오래 참지 않으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 용납하지 않으면 하나된 공동체가 둘로, 셋으로 나누어지고 다투며 평화가 깨질 것이므로 평화와 하나됨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부르심의 부름에 합당이 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공동체의 연합이 계속 유지되고 보존되도록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 용납하는 방법으로 합당이 행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4절부터 6절까지의 합당이 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우주적인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세계가 평화를 유지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고, 주도 하나이시며 성령이 하나이시라고 했으며, 믿음도 하나이요, 소망도 하나이며 세례가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인 몸이 하나라고 했습니다. 온 세계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는 이유가 모든 민족을 하나로 연합하시고 통일하신 아버지가 한 분이시고 구원을 주시고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이 한 분이시며 이런 모든 사역을 감당하신 성령이 한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이 속해 있는 몸에 비유되는 교회가 하나이며 교회들이 행하는 세례가 하나요, 교회들이 소망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하나이기 때문에 한 아버지 안에 있는 만 인류는 본질적으로 하나요, 목적 적으로 하나이며, 의도적으로 하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세상은 둘로 셋으로 나누어져서 분쟁을 일삼고 있지만 세계 통일을 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온전히 하나로 연합되고 평화와 통일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개인 개인이 하나로 연합되고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교회 안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가 되고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로 연합되고 각 나라에 있는 교회들이 온전히 하나로 연합되어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개인관계에서 온전히 연합을 이루기 위해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을 받았습니다. 이런 권면을 따른다면 대인 관계에서 성공을 거두어 늘 연합과 평화가 존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지역 교회가 하나되고 그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가 하나가 되며, 온 세계의 교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주권을 온전히 살리고 사람의 주권을 죽임으로 가능합니다. 각 교회가 만든 옷과 각 교파의 옷을 벗고 주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각 교파가 만든 유니폼을 벗지 않는 한 주님의 공동체는 나누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자기의 옷을 벗고 한 목적만을 위해 들어 있는 공중 목욕탕 공동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옷을 벗었으니 직업도 계급도 자기 주장도 다 버린 상태입니다. 오직 목욕을 한다는 부르심의 목적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연합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자기의 옷을 다 입고 있을 때는 그때부터 공중 목용탕이 갖는 공동체의 의미는 그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르심의 한 목적을 위해서 각 교파가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야 합니다. 우주적인 교회가 온전히 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긍극적인 소원입니다. 한 교회가 연합이 되고 교회와 교회가 하나가 되며 교파와 교파가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원대하신 꿈임을 깨달은 우리들은 연합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므로 부르심에 합당이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이 사는 삶은 사람과 사람을 나누는 벽을 헐어야 하며 교회와 교파 사이에 막힌 장벽을 허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연합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개인과 개인이 하나 되도록 먼저 힘써야 합니다. 다시 강조되지만 아무리 미워하고 벌어진 사이라도 상대를 향해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 참고 사랑으로 용납한다면 동독 서독의 장벽이 무너지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 막혔던 담이 언제인지 모르게 녹아져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또 교회와 교회, 교파와 교파끼리의 온전한 연합을 위해 교회를 갈라놓고 교파를 갈라놓은 장벽을 사명감을 갖고 헐어내야 합니다. 헐어내야 할 장벽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만들어 둔 헌법이나, 교리나 신학, 또 사람이 만든 전통입니다. 세례가 하나라고 했는데 인간들이 하나 더 만들었다면 인간이 만든 세례는 사양해야 합니다. 몸이 하나라면 교회가 하나라는 뜻인데 한 교회에 사람이 만든 여러 가지의 이름을 붙였다면 한 몸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만 붙이고 다른 이름을 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가 있고 교회 조직이 성경에 있는데도 인간의 이론으로 다른 모범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면 인간이 만든 것은 사양하므로 이웃 교회와 이웃 교파와 하나로 연합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은 통일과 연합이시므로 통일과 연합을 해치는 장벽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소망에 도전하는 일이요 부르심의 부름에 거슬려 사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벽도 허물고 교회와 교회 사이를 갈라놓은 벽을 허무는 삶을 사므로 부르시는 이의 부름에 합당이 사는 삶임을 깨닫고 합당한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