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본 받는 삶 – 에베소서 5:1-7

예수 믿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르는데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이름으로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속했던 사람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셔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하도록 했기 때문에 거룩한 무리라는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거룩한 무리라는 이름을 받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명예스러운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문제는 일반 교회에서 성도라는 호칭을 직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로 성도라는 옷을 계속 입고 있는 것이 남부끄러워 성도라는 옷을 빨리 벗어버리고 집사나 장로나 권사나 목사라는 이름을 갖기를 희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는 성도인데 성도 중에서 어떤 분은 장로, 집사,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이 예수 믿기 시작할 때에 받는 초급 신자의 이름이 아니고 죽을 때까지 꼭 입고 있어야 할 옷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높은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도라는 이름을 입고 다니기에 적합한가 스스로 반성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성도라는 높은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늘 황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더욱 황송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들 스스로를 반성하자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늘에 속하기보다는 아직까지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땅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땅에서 기어다니는 존재들임에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본 받는 자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신분을 다시 깨닫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대로 하나님을 닮기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을 본 받는 자 되라(1-2) [2]더러운 것을 벗어 버려라(3-5) [3]속이는 자와 함께 하지 말라(6-7)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하나님을 본 받는 자 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에 대해 욕심이 큽니다. 그러나 자기 학교에서 100등 하는 자녀더러 1등을 하라고 하는 부모님은 계시지 않으리라 봅니다. 욕심을 내야 50등을 하라고나 할까요? 또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도 잘하고 착한 어떤 아이를 두고 그 아이를 본받으라고는 할지 모르나 하나님을 본 받으라고 표현한 것을 들었다면 무례하고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다고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이 본문을 얼마나 많이 읽어보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을 자기의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에게 아버지를 본받으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 무리한 말이 아님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하심이라” “우리가 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이런 성경 구절도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말씀인데도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보면서 많이 놀랬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는다면 당연히 아버지를 닮아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온전하심같이 온전해지고, 하나님이 거룩하심같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의 형상이 변화여 영광에 이르러야할 것입니다. 100등 짜리 자녀더러 1등을 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되겠지만 하나님 아버지를 닮으라는 말은 전혀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는 길을 2절에서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시고 아버지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내 형제들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희생을 감당하므로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으며 아버지를 닮는 자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려서 이웃을 살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한계는 내가 살아 있는 범위 내에서 형제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가 죽더라도 이웃을 살리는 생활을 하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5절까지의 더러운 것을 벗어 버려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도들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 나라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야 할 성도들의 삶 가운데 세상의 삶이 있기 때문에 그 세상적인 삶을 벗어 버려라 는 것입니다. 온갖 성적인 부도덕한 행위나, 비 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깨끗하지 못한 행동이나, 세상에 대한 지나친 욕심에서 벗어나되 그런 것들은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흉내도 내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탐심을 우상 숭배로 규정짓고 있습니다. 세상 것에 지나친 욕심을 갖는 것은 우상 숭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도 세상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면 우상숭배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셨는데 아버지를 닮지 않고 세상을 닮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성도로서 덕이 되지 아니한 어리석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을 욕하는 것이나 음탕한 말이나 불평이나 나와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잡담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듣는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6절부터 7절까지의 속이는 자와 함께 하지 말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속이는 자들이 있음을 전제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영지주의자들이라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육은 아무 것도 아니오 영이 중요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은데 그들의 주장을 더 들으면 성경에 어긋나는 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말은 육체는 아무 것도 아니고 결국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육체로 어떤 더러운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영혼만 잘 간직하면 된다는 학파인데 어떻게 육체로 범죄 한 영혼이 순결한 영혼이 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육체와 영혼이 따로 따로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앞부분에서 육체로 범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속이는 자들에게 속지 말고 그렇게 속이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진리를 굽게 하는 현대판 영지주의자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속지 말고 그들과 함께 하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반대말로 표현한다면 세상을 본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신문 방송을 통해서 끔직한 사건들을 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비윤리적이요 비도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들을 때에 은혜가 되지 못하고 덕이 되지 못할 사건과 이야기 거리들을 얼마든지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한사코 우리더러 자기를 본받으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닮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가 닮아야할 우리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아버지는 사랑이시고 거룩한 분이십니다. 아버지를 닮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면서라도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이 순결을 유지하도록 모든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를 닮으라고 손짓하는 그 손짓이 마귀를 닮으라는 손짓인지 하나님을 닮으라는 손짓인지 쉽게 판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귀의 손짓을 강하게 물리치고 하나님의 손짓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본 받는 삶이란 우리 인생에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도전입니다. 연약한 우리들이 해내기에 벅차고 두렵기도 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아버지 되신 자신을 닮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오르다가 넘어지면 다시 오르는 것입니다. 우리더러 높은 산에 오르라고 명령하신 분이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계속 오르도록 힘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었던 우리지만 또 세상의 것으로 더럽혀진 우리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늘 나라에 오르는 일이니 그 어려움이 세상 무엇에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항상 도우실 것을 믿고 아버지를 닮고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본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