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내의 관계 – 에베소서 5:22-33

우리들은 요사이 에베소서를 통해 1장부터 3장까지 에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창조의 질서에 대해 교훈을 받아왔고 4장부터 6장까지는 사람과 사람과의 화목의 질서에 대한 교훈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늘의 본문에서는 누구와 누구의 질서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까? 남편과 아내의 질서입니다. 계명 중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둘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이웃은 원수까지도 포함된 많은 종류의 이웃이 우리들의 생활 공동체의 주변에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가족 공동체내의 아내와 남편의 복종과 사랑에 대한 교훈을 통해 가족 공동체의 올바른 질서를 잡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의 차원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이해하므로 훼손되기 쉬운 하나님의 가정이 온전한 화목이 이뤄지게 되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다운 의미의 추수감사절이 매일 생활을 통해 지켜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아내가 지켜야할 질서(22-24) [2]남편이 지켜야할 질서(25-33) 입니다.

 

[1]제일 먼저 22절부터 24절까지의 아내가 지켜야 할 질서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결혼식 때에 큰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이 하나님의 본래의 창조의 질서 차원에서 이해되지 못하고 신랑 신부에게 주어진 무거운 속박의 계명 차원으로만 이해되기 때문에 이 계명은 무겁고 지키기에 힘든 멍에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주신 본문을 성서적인 차원, 영적 차원으로 이해하므로 무거웠던 멍에가 가볍고 또 기쁨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질서는 복종입니다. 22절에 보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복종해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아내의 머리이끼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서양 사회보다도 여자들을 천하게 여기고 많이 학대했던 긴 역사와 문화가 있어서 결혼관계에 있어서 친정 쪽은 늘 큰 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쩔쩔 매고 살아야 하고 시집 쪽은 늘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높낮음의 관계가 아니라 같은 높이의 수평적 관계임을 전제하고 오직 질서와 역할 측면에서의 복종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를 같은 높이의 수평적 측면으로 규정하고 있는 말씀은 고전 11장 11-12에 “주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런 수평적 관계 내에서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 분담을 해 주되 남자는 그 가정의 머리로 삼은 것입니다. 이 머리란 우리 몸의 머리와 같이 머리가 손발 또는 눈코입 보다 높은 것은 아니지만 손발 눈코입을 움직이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한 몸에 머리가 두 개면 기형아라고 하듯 한 가정에는 머리가 하나인데 남편이 머리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어요, 남편이 병신이든 무식하든, 나이가 적든 아내의 머리라고 한 것입니다. 고전 11:3에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를 선포하시기를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이 고린도 교회의 여자나 남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관된 모든 교회와 가정에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누구의 말씀에 순종하여 세상에 내려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머리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 교회는 마땅히 그의 머리되신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제치고 자기들이 만든 교리와 신학으로 자신들을 높이고 있는 것은 머리가 둘 달린 기형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께 복종해야 하듯 아내들도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순종할 수 있는데 바로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고 복종하듯 바로 그런 자세로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또 주님께서 모든 성도의 구주가 되시듯 남편은 아내에 대한 구주와 같은 책임과 역할이 있으므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아주 명쾌한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과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우리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집사나 장로의 자격은 한 아내를 가진 남편으로만 한정하고 있고, 왜? 여자가 남자를 가르치거나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금하면서 일절 순종하므로 종용히 배워라 고 제한하고 있는지 어리석은 인간의 두뇌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부인보다 멍청한 남편들이 얼마나 많으며 남자보다 더 똑똑한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손발이 머리에 복종을 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복종하듯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복종하는 것으로 받아야할 줄 압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되 “범사”에 복종하도록 하여 모든 일에 복종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로 25절부터 29절까지의 남편이 지켜야 할 질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남편들이 아내를 위해 지켜야할 질서는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들이 평상시에 가볍게 쓰는 단어인데 여기에서 뜻하는 사랑이란 조건적이요 이론적인 어떤 사랑의 개념이 아니라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몸을 바쳐 죽으심과 같이 아내를 살리기 위해 생명이라도 버릴 수 있는 사랑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몸도 자기 몸이려니와 아내의 몸 역시 자기 몸으로 알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거와 같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명령은 새삼스런 명령도 아닙니다. 우리들은 결혼식에서 이런 설교를 듣기 전에 이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은 지 오래되기 때문입니다. 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까요? 내 몸에 붙어 있는 손이나 발이 바로 내 몸의 지체이므로 서로 아끼듯이 내 이웃도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서는 하나님의 몸체에 붙어있는 하나의 지체인 손이요 발이며 눈코입에 해당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 이웃과 합하여 온전한 한 몸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결혼 주례자가 주례사를 할 때에 아내를 사랑하라고 자꾸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례자는 신랑에게 자기를 사랑하라고만 강조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신랑은 아주 지키기에 쉬운 홀가분한 명령을 받은 것이어서 부담이 적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한 사람도 없을 것 아닙니까? 다만 주례자는 아내는 남편의 몸에 젖 붙여진 새 몸인 것만 강조하면 되는 것입니다. 신랑 최 상진 형제는 신부 권 혜원 자매를 사랑하려고 고생하지 말고 자기의 몸만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유를 들면서 만 인류가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와서 우주적인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루어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가 되셔서 모두가 하나됨을 이뤘는데 바로 이와 같이 남자도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었으니 이렇게 한 몸 되는 비밀이 크다고 했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모든 남편들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자기같이 하고 아내들은 자기 남편을 경외하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첫째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아내들과 남편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아내는 자기 남편을 자기의 머리로 알고 남편에게 복종하되 그리스도 되신 주님께 하듯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또 남편을 경외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도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의 명령에는 인간의 이유나 변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사람 남편을 보아서는 실천하기 어렵겠지만 하나님 세계의 질서인 만큼 하나님을 보아서 어렵더라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 되는 사람은 아내 되는 사람이 자기의 바로 몸으로 알고 자기 몸을 아끼고 사랑하듯 아내 되는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명령입니다. 이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보잘 것 없는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생각해서 아내 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해 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 주신 교훈을 통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부부가 한 몸인 것 같이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교회 공동체의 한 몸인 것을 알고 성도들끼리 서로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한 몸이며 모든 성도들은 한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깨닫지 못하는 신앙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천국 가정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는 신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족을 초월하고 족보와 가족을 초월하여 모든 영혼들이 평등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 영원한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뜨겁게 하면서 이 땅에서의 작은 공동체인 가족과 교회에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하나님의 공동체에 주신 질서를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런 생활이 하나님이 바라시고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추수 감사절을 지키는 방법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지켜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