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에 대한 태도와 끝인사 – 디도서 3:8-15

오늘의 본문으로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가 끝나게 되는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레데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이단자들을 향한 태도와 바울의 마지막 인사를 적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굳세게 말하라(18) [2]피하라 멀리하라(9-11) [3]끝인사(12-15)입니다.

 

[1]먼저 9절의 굳세게 말하라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부분 4절부터 7절까지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인간의 행위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구원의 계획,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 사함과 성령을 충만케 하심, 그리고 영생의 소망입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인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의롭게 하시어 하나님의 아들 딸 되게 하시어 주님 재림시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케 하신 영생의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8절에서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굳세게 말하라는 말은 확신을 가지고 강조하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구원되었는지 성경적 구원관을 확신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선포하라는 말입니다. 그레데 교회에는 이단들이 여러 가지 이단설을 가지고 혼란시키고 있는데 이단들을 멀리하고 경계하도록 진리를 확신을 가지고 전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첫째는 진리를 실천케 하고 진리를 행한 가운데 선한 일을 힘쓰게 하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은 믿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므로 성도들이 선한 일을 행하기에 힘쓰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행하고 힘써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 성도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9절부터 11절까지의 피하라 멀리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9절부터 11절까지에서 성도들이 피할 것과 멀리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고 이단을 멀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변론이란 성경적이 아닌 변론, 소모적인 변론, 다툼만 가져오는 유익이 없는 변론을 말합니다. 또 족보 이야기도 피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자기 가족의 족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성경의 유명한 인물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나 다윗 아니면 선지자중 어떤 인물이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선전하므로 자기 가족의 종교심을 자랑하는 일을 자주했기 때문에 그런 족보이야기를 피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선조가 아브라함이면 어떻고 자기 조상이 엘리야 선지자면 어떻습니까? 조상의 신앙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의 믿음에 따라 구원받는 것이므로 조상 이야기는 성도들간에 자랑삼을 거리는 아닌 것입니다.

 

또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파당을 지어 나누어지는 일을 피하고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대한 다툼이란 할례를 받아야 구원된다든지 또는 안식일에는 얼마나 멀리 걸어도 되는지 서로 자기 의견을 내세워 다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관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믿음을 자랑하기 위해 율법을 끌어드려 자신을 자랑하려는 것을 피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라 했습니다.

 

10절에서는 멀리해야 할 것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하고 듣지 않으면 멀리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단 사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돌아오기 힘들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미 영적으로 부패하여져서 회생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들을 가까이하다가는 오히려 이단 사상에 물들 수 있을 것이므로 멀리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2절부터 15절까지의 끝인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를 니고볼리라는 곳으로 급히 오라고 쓰고 있습니다. 거기서 디도와 함께 겨울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디도가 그레데를 비울 동안에는 아데마나 두기고 둘 중 한 사람을 그레데에 보내어 디도의 자리를 메꾸겠다고 쓰고 있습니다.

 

13절에는 교법사 세나와 아볼로를 먼저 보내어 그들이 궁핍함이 없도록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레데에 보낸 세나와 아볼로를 디도가 그레데를 떠나기 전에 보내라고 했으며 그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해주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순회 전도자들이 교회를 방문하곤 했는데 교회가 그들의 여행 경비를 부담해주었던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전도자들의 여행경비를 지원해 줌으로 믿음의 열매 있는 자들이 되기를 힘쓰라고 쓰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했는데 믿음이 있는 성도들에게는 선을 행하는 훈련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 교회를 방문한 전도자들을 지원하는 일에 힘쓰므로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을 배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15절에서 바울과 함께 있는 자들의 이름으로 디도에게 문안하며 끝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진리에 굳게 서고 선을 행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레데 교회가 이단 사상으로 말미암아 혼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에도 비성서적인 행함이 교회들을 혼란케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이 과연 성경적인가를 확인하려 하지 않고 모든 실행은 당연히 성경적일 것으로 믿고 실행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니 성경적인 것 보다는 비성경적인 그런 실행이 오히려 자기들의 체질에 베어서 성경적인 것을 거부하고 비성서적인 실행을 선호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첫째 진리를 따르고 그 진리를 확신을 가지고 선포하므로 비성서적인 실행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밝혀주라는 교훈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내려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근본 목적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근본 목적인 구원관을 주님께서 성경에 제시한 것을 무시하고 각 교단마다 자기들의 견해를 주창하고 있는 현실인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성경적인 구원관을 바로 굳세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구원관을 실천하는 자라야 올바른 소망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모든 실행이 성경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는 진리 안에 거하고 그 진리를 선포해야 하며 진리 안에 거한 자들은 선한 일을 힘쓰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일이 되겠습니다.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얻는 복된 소식을 전하여 죄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얻게 하며, 또한 사회적으로 불우한 자들을 찾아 할 수 있는 데까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선한 일을 하기에 늘 준비되었다가 기회가 왔을 때에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는 것은 이미 구원 얻은 자가 행하는 믿음의 열매이지 구원을 얻는 방편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리란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모든 실행을 성경과 대조하여 그 실행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자기 부모가 가르치는 것이라 할지라도 비 성서적인 것은 버려야 하며 아니 자기 부모가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이면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모세 시대에 모세의 교훈을 거부하는 자들을 두고 하나님께서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고집이 세서 불순종한다는 의미에서 였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 목이 곧지 만 않았다면 현대 교회들의 실행이 보다 성서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들을 통해 양육 받은 교인들이 성서적인 것을 받아드리는데 보다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비성서적인 것을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이 마치 믿음인 것같이 오해를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우리 모두는 첫째는 비 성서적인 것을 하나씩 정리하여 성서적인 실행으로 바꾸고 그 진리를 남들에게 전하면서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달받은 우리 모두가 이 교훈을 실천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