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음으로 합하라 – 빌 2:1-11

빌립보 교회는 작은 교회였으나 열심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의 선교 활동을 위해서 선교비를 충당하고 또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로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도왔던 좋은 교회였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일을 하는 교회, 열심을 내는 교회이고 보니 일하는 중에 사람들의 의견이 서로 다른 이유로 교인들이 나뉘어져 파당이 이뤄지는 낌새가 있었나 봅니다. 이런 낌새를 알아챈 사도 바울은 오늘 주신 본문으로 권면하여 교회가 한 마음으로 연합되도록 축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있었던 때인 만큼, 온 교인이 일치 단결하여 온전한 연합을 이룸으로 어려운 핍박을 견딜 수 있게 하며, 또 연합의 힘을 이용하여 복음 사업을 보다 더 활발히 하기 위해서도 연합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유로라도 교회가 나뉘인 것은 교회의 참 모습을 잃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며 의도적으로 하나되어야 하며 목적적으로도 하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나뉘일 위험에 있었던 빌립보 교회에 연합되도록 권면한 사도 바울의 권면을 우리 교회 성도들이 수용하여 어떤 이유로라도 교회가 나뉘이는 것을 막고 성도들이 온전히 연합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해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한 마음으로 연합하라(1-2) [2]연합하기 위해 겸손하라(3-4) [3]겸손의 모범(5-11)입니다.

 

[1]먼저 1절과 2절의 한 마음으로 연합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회가 무슨 일을 해내야 할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 놓을 수 있습니다. 또 일을 해낼 때에도 사람의 성격에 따라 어떤 사람은 열성적으로 하여 다른 사람의 두 몫, 세 몫을 해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덜 열심일 수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일하는 방법이 달라도 목적했던 그 일은 해내야 하는 것이나 우리 주변에는 의견이 맞지 않고 일하는 방법이 서로 달라 해야할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또 의견이 다르고 일하는 방법이 다른 이유로 성도들끼리 서로 헐뜯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교회에서 종종 있는 것입니다. 일을 안한 교회는 할 일이 없으므로 말을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고 일을 많이 하는 교회는 그 일 때문에 성도들끼리 상처를 입고 나누이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권면을 해도 문제이고 권면을 하지 않아도 문제이며, 서로 자주 만나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다 보면 문제가 생기고 전연 사귀지 않아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위로를 해주고 또 도와줘도 문제가 되고 위로나 도움을 주지 않아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단은 어떤 환경에서라도 좋은 관계를 갈라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끼어 들기 때문에 가끔 자기도 모르게 사단의 시험에 말려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요? 사랑이 다르고 마음과 뜻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같은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 사랑한 것이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주님의 공동체가 온전히 하나로 연합되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또 나와 의견이 다르고 일하는 방법이 다른 모두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들의 사적인 뜻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적인 열성만 가지고 접근하다보면 사람 사이는 얼마든지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형제에게 접근한다면 나뉘어지는 비극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접근하며 하나님의 뜻으로 합하며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절로 4절의 연합하기 위해 겸손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겸손해 보이지 않는 남의 태도는 퍽 싫어하면서도 내 태도가 남의 눈에 교만으로 비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의 많은 일들이 교만하게 보이는 상대방의 언행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교만한 사람을 보면 우리들의 눈과 마음과 입은 저항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교만의 외모가 무엇입니까? 교만의 외모는 허영이며 다툼입니다. 자기가 남보다 더 잘 낫고 남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어떤 허영이며 자기 의견이 남의 의견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쉽게 남의 의견에 참견하여 다투는 태도입니다. 허영과 다툼이 교만의 외모인 것입니다.

 

그럼 겸손의 외모와 내모는 어떤 것일까요? 겸손의 내모는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며, 겸손의 외모는 나의 일을 돌아보는 동시에 남의 일에도 관심을 갖고 나의 일과 같이 남의 일도 돌아보아 주는 자세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취해 있는 사람이므로 교만한 사람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기가 남보다 더 잘 났다고 하는 자기 잘난 멋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겸손하게 살기가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남의 일도 돌아보아 주는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권면입니다. 겸손은 온전한 연합을 이루게 만들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5절부터 11절까지의 겸손의 모범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외모에 의해 사람을 대접하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겸손한 사람을 깔보고 자기가 잘 낫다고 똑똑한 채 하는 사람을 존대해주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에 대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늘 겸손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하도록 권면을 하고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겸손의 본질과 겸손의 모양을 잘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겸손이란 교만하지 않는 것이 겸손이 아니라 진정한 겸손은 남을 위해 많이 낮아지고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남에게 유익을 주는 자세가 겸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겸손은 하늘에 계신 존재로 땅에 내려 오셨으며 하나님이신 분이 종의 모습인 사람의 형체를 입고 땅에 오셨으며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그는 신분을 낮추시고 모습을 낮추신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고 생명을 내 놓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겸손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늘에서 땅까지 자기를 낯추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다시 하늘의 보좌에 높이셨으며 모든 만물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그를 주로 시인하게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겸손한 자를 쉽게 생각하고 깔보는 경향도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높이 치켜올리신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영혼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치 단결하라는 것이며 일치 단결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겸손하라는 교훈입니다.

 

교회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체 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사명은 앞으로 점점 이 구원의 공동체 건물이 더 크게 지어져 나가도록 전도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이 교회의 사명이며 성도 각 자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교회는 교회대로 성도는 성도대로 하나님의 이 뜻과 일치된 마음을 가지고 온 성도들이 하나로 온전히 연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교회 공동체가 일치 단결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가족이 날로 늘어나는 것을 시기하여 방해를 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방해가 바로 성도들끼리 갈라져서 서로 비방하게 하고 열심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여 모든 일을 중도에 포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서로 비방하고 나눠지도록 하는 주된 원인이 교만 때문이므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범에 따라 겸손하므로 온 교회의 연합을 이루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모범대로 자기의 신분을 낮추고 목소리를 낮추어 남의 인격과 의견을 존중하며, 때로는 시간적으로 명예적으로 물질적으로 내가 희생하면서까지 이웃 형제를 돌보라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돌보며 희생을 감당한 성도들도 있고 반대로 남을 깔보고 자기를 높이며 남의 대접을 받는 재미로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높이시며 교만한 자를 끌어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늘 겸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 인간의 생각으로 이 세상에서는 겸손한 자는 늘 희생만 당하고 남의 밥만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많이 높이신다는 확신을 갖고 언제 어느 환경에서든지 겸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하겠다고 다짐했다가도 사람을 쳐다보다가는 실망하기 일쑤입니다.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의 신분으로써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 오셔서 심지어 십자가까지 지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참고 겸손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땅까지 자신을 낮추셨으나 우리들은 어쩌면 반듯이 세워진 고개를 약간 굽히는 낮추거나 벌려진 입을 다물 수 있을 정도의 겸손만 보여도 되리라 봅니다. 겸손하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높이신 하나님께서 겸손한 모든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같이 높이실 것입니다.

 

성도 각자가 겸손하시어 온 교회 공동체가 온전히 연합되기를 원하며, 연합된 힘을 활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