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간의 사랑 – 벧전 3:8-12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지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며, 종은 상전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교훈해 주었으며, 아내로서 남편에게 또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권면해 주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성도들끼리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녀들의 행동을 보고 부모님들이 만족하시듯 성도들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께서 만족해하실 삶의 자세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로서는 부모님들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자녀들은 결과적으로는 부모님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만족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성도라면 자기를 낳아주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뿐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교훈을 받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서 현세에도 행복한 삶을 살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행복한 삶을 사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웃을 사랑하는 삶(8) [2]악을 선으로 갚는 삶(9) [3]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삶(10-12)입니다.

 

[1]먼저 8절의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녀들로서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먼 장래를 내다보고 부모님들이 요구하는 삶을 산다면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어렵지만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삶이란 현세 뿐 아니라 미래에 복된 삶을 살도록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계신 것이므로 미래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있는 자들은 그 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비록 어렵지만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나가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내 자신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9절에 보면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유업을 받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10절에서도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통해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살게되는 큰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이 베드로를 통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8절에서는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 한다는 뜻은 서로 관심을 갖는 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도들끼리 피차에 관심을 가져야 사정을 알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고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들은 서로 마음을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체휼하며’ 의 뜻은 동정심을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생하는 자들과 고생을 나누는 삶이요,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충을 함께 나눌 뿐 아니라 역기 기쁨을 또한 함께 나누는 삶이 되겠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며’ 라는 뜻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이웃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려는 차원의 행동을 말합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보이신 희생의 본보기를 따라 사는 삶이 되겠습니다. ‘불쌍히 여기며’ 라는 삶은 이 세상에는 고난을 당하는 자들 즉 불쌍한 자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에게 자기를 버리고 불쌍한 자에게 자신을 나눠주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이 실천적인 불쌍히 여기는 삶이 되겠습니다. 동정심만이 아니고 내 손발이 불쌍한 사람을 찾아가 가진 것을 나누어주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겸손하며’ 는 내 자신을 낮추며 이웃을 높이는 삶이 되겠습니다. 남을 섬기는 삶입니다. 남이 높아질 때에 그것을 시기하지 않고 인정하고 기뻐하는 삶입니다. 자신을 아무리 낮추어도 비굴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겸손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잘난 것을 자랑하기보다는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9절의 악을 선으로 갚는 삶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자에게 보복하지 말고 오히려 그에게 선을 베풀라는 요구입니다. 보통 사람은 전연 불가능하지만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삶이 되겠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는 정도는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 선을 베풀 수 있는 것은 믿는 자의 능력이요 믿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악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하나님께 부르셨으며 우리들에게 악을 베푼 자를 위해서도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 동정을 받을 가치가 없게 생각되어지는 사람들에게까지 선을 베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도록 성경 어려 곳에서 요구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출 23: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잠 25:1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살전 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3]마지막으로 10절부터 12절까지의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는 삶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는 적극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9절에서 혀에서 나오는 악을 통제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찬송을 할 수 있는 혀가 때로는 독을 뿜는 혀로 둔갑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독을 품은 혀는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자기가 공격하는 상대방을 찔러 죽이고 불태워 죽일 수 있는 독침과 불과도 같은 무서운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혀를 잘 가둬 두어 좋은 용도로만 사용하고 나쁜 용도에는 절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훈련이 안된 혀는 많이 놀릴수록 선보다는 악을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혀로부터 나오는 악을 비롯하여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악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화평하는 좋은 길을 궁리하고 이웃을 즐겁게 하는 길을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찬양하며, 남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있는 것으로 없는 자를 동정하며 입으로 낙심한 자를 격려하고 슬퍼하고 있는 자를 위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 있는 자는 악을 행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며 이와 같이 선을 행하는 것은 악을 떠나는 최선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할 일이 늘 있는 자는 자신이 행복하고 남에게 행복을 주며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늘 지키시며 이런 자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해서는 분노의 눈으로 바라보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내가 내 이웃을 사랑하여 마음을 주고 또 무엇이든 줄 경우에 모양새만 본다면 나는 손해를 보고 내 이웃은 이익을 본 것으로 계산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남에게 독한 말을 뱉어내어 자기 혀로 남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내 혀가 남에게만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나에게 악을 행한 자를 용서해 주지 못하고 악을 악으로 갚았다면 분이 풀리고 무엇인가 잃은 것을 되찾은 것 같이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리를 동행하자고 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며 왼편 뺨을 때리는 자에게 오른 편 뺨까지 돌려주라고 하셨습니다. 즉 우리 인간의 생각과 정 반대의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의 결말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을 안내해 주신 것입니다. 늘 남에게 동정심을 갖고 남에게 늘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말하기를 평생 남 좋은 일만 하고 살았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서 자기 호주머니에 넣어주신 복들을 모르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는 삶이나, 이웃에게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어주는 삶이나 평생 겸손하게 남만 섬기고 살았던 삶은 자신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었고 이웃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었으며 하나님께도 기쁨을 가져다 드렸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늘 보호하셨으며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것입니다. 아마 계산을 해 본다면 자기가 남에게 주었던 것보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신 것이 더 크고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 더 많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들의 삶은 마땅히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늘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혹 이웃이 내게 악으로 대해도 그 악을 선으로 갚아 악을 행한 이웃을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산다면 이런 삶은 자기 자신이 행복하여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며 나로 인해 내 이웃이 너무 행복하여 나에게와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며 이런 삶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족해 하시고 이런 자들을 더욱 보살피시며 하늘 나라의 유업으로 보장해 주실 것입니다. 나도 행복하고 내 이웃도 행복하며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까지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 성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성공된 삶으로 알고 성공된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