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해 고난받는 일 – 벧전 3:13-17

올바른 신앙을 지켜나가겠다고 힘쓰는 참 신앙인들은 온갖 종류의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첨단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이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는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형을 시키는 미개발의 지역도 있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 당하고 ,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당하고, 이용당하고, 매맞고, 투옥되고, 살해되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때에 관계없이 여러 종류의 핍박을 받게 되는데 문제는 우리가 여러 종류의 핍박아래서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핍박아래에서도 견고히 서서 하나님으로부터 신실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느냐 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우리들에게 항시 닥치는 고난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겨나가시므로 현세에서도 행복하고 미래에 영생을 영원히 상속받으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의미를 깨닫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옳고 선한 일을 열심으로 행하라(13-14) [2]구원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소망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답변할 준비를 항상 하라(15) [3]선한 양심을 가지라(16-17)입니다.

 

[1]먼저 13절, 14절의 옳고 선한 일을 열심히 행하라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3절에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라 했습니다. 이 본문의 뜻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를 칭찬했으면 칭찬했지 누가 핍박하겠느냐는 뜻도 되고 또 일반적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누가 뭐라 하든지 꾸준히 선을 행한다고 한다면 일시적으로는 따돌림을 받고, 무시를 당하고 모욕도 당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꾸준한 선행이 핍박하는 자들의 양심의 눈을 뜨게 하여 칭찬으로 돌아서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평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옳고 선한 일을 하는 자라면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칭찬이 나오거나 아니면 결과적으로 칭찬을 받는 자가 될 것이므로 핍박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의 뜻은 옳고 선을 행한 자를 심히 핍박하여 육체적으로 심지어 죽게 할 지라도 영혼만은 누가 해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 되겠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을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와 같은 맥락에서 선을 행한 자의 육체는 해한다할지라도 영혼만큼은 해할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14절에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소동치 말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산상설교에서 가르치시기를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셨으며 ‘천국에서 상이 크다’고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14절에서도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 고 한 것입니다. 고난의 보상으로 천국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려워하거나 소동치 말라고 한 것입니다.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장해주실 천국의 큰 보상을 믿고 두려움이나 소동치 않고 순교를 당했을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5절의 구원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소망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답변할 준비를 항상 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믿는 자들이 어려운 핍박을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있는 힘은 천국을 상속하게 되리라는 구원에 대한 소망입니다. 비록 몸은 죽여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은 순교자들로 하여금 능히 어떤 핍박에도 견디어 내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도 베드로는 15절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믿어 마음으로 영접하고 성도들의 마음을 거룩하게 유지하도록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기의 몸과 영혼의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는 삶을 산다면 어떤 어려운 핍박과 고난도 능히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을 대비하여 구원에 대한 큰 소망을 각자가 갖도록 권할 뿐 아니라 이 구원에 대한 소망에 대해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온유와 두려움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에 두고 늘 겸손하고 친절하며 사랑을 가지고 대답해주어 구원의 큰 소망에 대한 대답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대답하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누가 물으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간다는 구원의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고 어떻게 그런 구원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느냐고 물으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성서적인 방법을 항상 준비하고 있다가 대답해주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6절과 17절의 선한 양심을 가지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6절에서는 여러 가지의 핍박 속에 살 수 밖에 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양심적이고 진실되며 성실한 삶을 보고 그 동안 기독교인들을 많이 핍박했던 핍박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부끄럽게 되도록 끝까지 더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신 것은 핍박을 받는 자도 천국에 들어오고 또한 핍박을 가한 자들도 천국에 다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한 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성도들이 핍박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선한 양심을 갖고 선한 일을 계속해 나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어떻든 선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는 자도 있고 악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자에게는 천국의 보상이 주어지지만 악을 행하고 고난을 받는 자는 마지막 형벌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 고난을 받는 자보다 의를 행하고 고난을 받는 자가 월등히 낫다고 격려하면서 고난이 있고 없고 간에 성도들은 늘 선한 양심을 갖고 선을 행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분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핍박이 있고 없고 간에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삶을 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삶에 대해서 묻는 자에게 항시 대답할 수 있도록 대답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교훈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양심은 무엇이며 선한 삶은 무엇일까요? 선한 양심이란 하나님과 자신과의 바른 관계를 알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와 내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아는 양심이 바로 선한 양심입니다. 그리고 선한 삶이란 하나님과 자신과의 바른 관계를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를 바로 아는 선한 양심으로 살아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란 하나님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천국에 들어오도록 초청하신 자요 우리들은 천국에 들어오도록 초청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초청에 들어온 자들은 내 이웃들에게도 이 초청의 자리에 함께 들어와 살도록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도록 부탁 받은 하나님의 일꾼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분과 관계를 갖고 있는 모든 성도들은 자기의 신분을 바로 알고 양심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현세의 우리들은 순교를 당해야 하는 그런 차원의 핍박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들 죽이는 여러 종류의 핍박과 고난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하는 세상의 명예, 재물, 권세 와 같은 모든 유혹이 바로 현세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과 핍박이 되겠습니다. 또 성경적 진리 말고 사람이 만든 수많은 비성경적 교파적인 가르침이 바로 현대의 핍박과 고난이 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고난이 있다 하더러도 이 선한 양심이나 선한 삶을 포기해서도 안됩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선한 양심과 선한 삶을 맞바꾸어도 안됩니다. 세상은 쉬 지나가고 천국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선한 양심은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며 구원의 소망을 날마다 가꾸어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진 선한 양심은 나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게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경에서는 죄인이 어떻게 구원된다고 했는지, 또 구원받는 자는 어떻게 예배하며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어떤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말씀에 따라 확인하고 확신을 가질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확인과 확신을 묻는 자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대답을 예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만 알고 있는 것으로는 부족한 신앙이요 남이 구원에 대한 질문을 내게 해 왔을 경우에 질문에 답을 항상 예비해 가지고 있는 자는 채워진 신앙인 것입니다. 다만 남에게 답을 주는 자는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야 합니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에게도 구원을 허락하셨으니 내 이웃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중보적인 마음으로 답을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 없는 것을 말하면서 천국 가지 못한다는 답을 주어서도 안되며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거나 더해서 천국 소망에 대해 가르쳐서도 안됩니다. 또 나는 잘 모르니 우리 교회 전도자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해서도 안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시 악기도 사용하지 않고 박수도 치지 않으며 여자를 권사나 집사로 뽑지 않고 여자들이 기도 인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다 성서작인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생 저는 모든 교회가 똑같은 실행을 하기를 원하여 적극적으로 가르쳐 오고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대로 하지 않은 교회 성도들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판단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똑같이 실천하지 안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산다고 남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또한 그렇다고 그렇게 해도 다 천국에 간다고 선포해도 안됩니다. 천국 가고 못 가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 한 발 더 나아가지도 말고 또한 한발 더 물러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성경에서 가르친 구원의 방법을 성경을 펴고 소개하는 것으로 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소개하는 입이 되도록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권고입니다. 9오직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주고 있는 구원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 믿고 확신하며 자신이 믿고 확신한 바를 묻는 이들에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선한 양심에 따라 사는 삶을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지켜나가셔야 합니다. 이런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