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 벧전 4:1-6

지난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7일만에 우리가 다시 만났지만 지난 7일 동안은 세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준 주간이었습니다. 테러집단이 민항기를 납치하여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테러집단을 응징하기 위한 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있으며 미국은 테러 집단과의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옛날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당시만 해도 싸움에서 자신을 보호하여 승리하기 위해 갑옷을 입고 싸웠는데 요사이 전쟁은 미사일이나 다른 파괴력이 막강한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갑옷이란 별로 현실성이 없는 때에 와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고난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말씀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루 24시간 마귀와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용사들로 비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갑옷을 입되 예수님의 마음으로 갑옷을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 전쟁에서는 설사 진다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심판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격을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시에 우리 모두 영생의 영광을 차지하도록 예수의 마음으로 갑옷을 입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으라(1) [2]죄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2-3) [3]육체로는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살라(4-6)입니다.

 

[1]맨 먼저 1절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으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절에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최악의 고난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물론 십자가를 지실 당시에 사람이셨던 예수님은 가능하면 십자가의 고난을 면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아신 주님은 순종적인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를 죄로부터 불러내어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죄의 세상에서 불러내어 죄 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쉽게 하고 있지만 믿는 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주님과 함께 주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의미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롬 6:3 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라 했으며 갈 5:24 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했습니다. 또 갈 2:20 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다는 사실은 우리의 옛 몸을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는 일이요 이제는 내 대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세례 받는 그 자체는 십자가에 못 박힌 나의 옛 몸을 많은 물 속에 묻어버리고 새 사람 즉 예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갈 5:24에서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고난과 마귀의 도전에서 승리 할 수 있는 길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욕심을 부정하는 자기 부인입니다. 십자가에 정과 욕심을 못박아버리는 것이요 옛 몸과 죄를 많은 물 속에 다 묻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간 자들은 마귀의 도전에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두 번째로 2절과 3절의 죄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절과 3절에는 ‘그 후로는’ 이란 단어와 ‘지나간 때’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옛 몸을 못 박은 이후와 못 박기 이전의 때를 구분한 말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인류의 죄를 다 지시고 가신 것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옛 몸이 가졌던 욕심에 따라 살지 말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한 것이므로 성도들이 믿음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갖가지의 육의 욕심에 따라 살지 말고 새사람답게 하나님의 양자답게 아버지의 뜻을 찾아 그 뜻대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믿기 전에도 육의 욕심에 따라 살고 믿은 후에도 세상 욕심에 따라 살게 된 다면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몸을 지녔을 때의 행위인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들의 뜻을 따라 행한 모든 일들은 예수 믿기 전 즉 지나간 때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옛 몸의 일들은 작별하고 새 사람의 일,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의 일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는 어떤 고난이나 마귀의 도전에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4절부터 6절까지의 육체로는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살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죄의 길, 방탕의 길을 걸었었는데 예수 믿은 다음에 그런 더러운 길에서 빠져 나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면 옛날 죄의 친구들이 얼마나 비방하겠습니까? 마귀는 새롭고 의로운 삶을 살고 있는 성도들을 다시 죄의 구렁텅이로 끌어오기 위해 비방하고 위협하며 갖가지의 수단을 동원할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끈질긴 도전에 못 이겨 다시 죄의 길로 되돌아간 자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5절에서 말하기를 이방인의 길 즉 죄의 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스스로 자기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재판관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행한 모든 것을 숨길 수 없을 것이므로 자기가 행한 모든 죄 값으로 영생 대신 영벌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의로운 자가 핍박을 받아 육적인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다시 살게 하시어 영원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된다면 어떤 고난과 마귀의 도전에서도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한 자들이 순간적으로는 완전히 승리한 줄 알았지만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승리가 패배로 바꾸었는데 이와 같이 마귀는 예수 믿는 자들을 여러 가지로 괴롭히고 때로는 육체적으로 고난을 줄 수 있겠지만 그런 고난받은 모두의 영혼들을 생명의 부활로 일으키실 것이므로 이런 소망을 가진 자는 마귀의 도전에 대항하여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이 세상 삶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갑옷은 어떤 갑옷일까요? 예수님께서 잡히실 때에 제자 베드로는 칼을 빼들고 주님을 보호하겠다고 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귀를 대항하여 싸우신 갑옷은 그런 갑옷과는 반대 갑옷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지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승리하는 갑옷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지고 영적으로는 사는 갑옷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십자가에 메 달도록 자신의 몸을 맡기시고 순순히 응하셨던 그런 갑옷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입으신 그 갑옷은 주님의 목숨을 보호해주어 세상에서 오래 사시도록 하는 그런 갑옷이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십자가 주변에서 못 박히신 주님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남을 구원한다는 당신이 당신 스스로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입으신 갑옷은 세상에서 적군의 창살을 피해 세상의 왕이 되는 갑옷이 아니라 세상 창살에 찔리고, 세상의 조롱과 비난을 다 흡수하는 갑옷이었습니다. 십가가에 매단 원수들을 갚아주기는 커녕 오히려 원수를 축복해주는 갑옷이었습니다. 주님이 입으신 갑옷은 우리 세상사람들이 입고 싶어하는 갑옷과는 전연 다른 갑옷을 입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약한 갑옷, 창살을 막지 못한 갑옷을 입으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갑옷, 아무도 그 무엇도 뚫지 못할 갑옷으로 바꿔 입혀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어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바로 주님께서 입으신 그런 갑옷을 우리들더러 입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의 갑옷은 비록 몸은 상하게 하더라도 죄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갑옷입니다. 비록 마귀들의 조롱과 모든 비난을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막지 못하는 갑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내 물질과 내 위치와 내가 가진 세상의 귀한 것을 지켜주지는 못하지만 성도의 품위와 하나님의 양자의 신분을 지켜주는 갑옷을 입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세상의 많은 믿는 자들은 이런 갑옷을 입기 위해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손상이 가고 하나님께 불경한 일이 된다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육적인 번영을 가져다주는데 보호막이 될 수 있는 그런 갑옷을 입기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는데 그를 따른 다는 성도들은 내가 질 십자가를 피하게 해주는 그런 갑옷을 입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번영만을 가져다주는 갑옷을 입거나 반대로 세상에서는 지더라도 영원한 나라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갑옷을 입든지 모든 선택은 믿는 자 각자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은 잠깐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이므로 잠깐을 택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잠깐 죽고 잠깐의 고난을 당하더라도 영원한 삶을 택하는 지혜 있는 자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의 갑옷이 바로 우리들이 입어야 할 갑옷으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마음의 갑옷은 악을 선으로 갚는 갑옷이오 죄를 막아주는 갑옷이며 세상의 소망을 막아주고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뚫어주는 갑옷입니다. 주님의 마음의 갑옷은 공격을 막아주는 갑옷이 아니라 공격을 흡수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받아주는 갑옷인 것입니다. 때로는 져주는 갑옷이며 또 양보하는 갑옷이며 그리고 죽어주는 갑옷입니다. 내 것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갑옷이 아니라 내 것이 빠져나가도록 구멍이 뚫어진 갑옷입니다. 내 이웃이 내 갑옷에 기댔을 때에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주님의 마음의 이런 갑옷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