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베드로전서의 결론 부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편지를 통해 핍박의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로 권면해 왔는데 오늘의 이 본문 말씀으로 이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은혜의 하나님, 고난의 의미 그리고 문안 인사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깊은 의미를 바로 깨닫고 이 말씀이 주는 교훈을 실천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나눠주시고자 하시는 복을 다 누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모든 은혜의 하나님(10) [2]고난의 의미와 찬양(10-11) [3]문안(12-14)입니다.
[1]맨 먼저 10절 앞부분의 모든 은혜의 하나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을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 표현했습니다. 베드로는 편지를 받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은혜의 하나님 되심을 공감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은혜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체험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언제나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필요한 것을 늘 준비해 주시고 언제 어디서나 늘 지켜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이거나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잘못할 때는 매를 때리시며, 모든 일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두고 은혜의 하나님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독생자 그리스도를 통해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주셔서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께서 누리실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일시적인 어떤 영광이 아니오 영원한 영광을 누리도록 배려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여 은혜의 하나님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0절 뒷부분과 11절의 고난의 의미와 찬양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사울 왕을 통해 많은 고난과 시련을 당한 것을 압니다. 또 욥이 많은 복을 받기 전에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고난과 역경을 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결과만을 말한다면 다윗에게 그런 고난이 없었다거나 욥에게 그런 시련이 없었다면 그들이 누렸던 특수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말은 그 누구도 고난 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고난을 긍정적으로 맞고 믿음으로 고난을 해결해 나간다면 결과는 성도의 삶에 큰 유익과 복을 가져다준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난이든, 그것이 병이든 간에 그 고난의 시간과 그 고난의 크기에 족히 비교가 되지 않을 영원하고 큰 양의 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사도 베드로는 쓰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장래에 받게 될 영원한 영광과 비교하여 성도들이 현재 받고 있는 고난을 ‘잠깐의 고난’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회적인 여건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으며 또 신앙적인 이유로 또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성도들 중에는 평생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그 영광과 비교하면 ‘잠깐 받는 고난’으로 비교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장래 누리게 될 영원한 영광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크고 긴 고난이라도 잠깐 받는 고난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그 고난은 결과적으로 하늘 나라의 백성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이 가져다주는 유익을 소개하기를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고난받는 자를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신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을 통해서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고, 약했던 부분이 강해지며, 단단해 지고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초가 마련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에게 모든 은혜를 입혀주시며 또 그들에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사도 베드로는 11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세세 무궁토록 하나님께 있기를 원한다는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3]세 번째로 12절부터 14절까지의 문안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를 마치면서 편지를 받는 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의 인사도 전하고 있는데 12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실루아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실루아노를 신실한 형제 라 소개했으며 실루아노가 자기의 편지를 대필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실루아노는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함께 갇혔다가 옥문이 저절로 열린 경험을 했던 실라입니다. 이 실라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베드로와 함께 일하고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는 베드로서를 대필했고 이 편지를 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의 문안과 마가의 문안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란 로마에 있는 교회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핍박이 심한 때였으므로 로마에 있는 교회라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여 은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가가 문안한다고 했는데 이 마가는 마가 요한으로 보고 있으며 이 마가 요한은 마가복음을 기록한 자입니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조카로 바울과 바나바의 제 1 차 전도여행에 동행했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여행을 다 마치지 못했던 나쁜 경력을 가지고 있었던 형제입니다. 그 이유로 제 2 차 전도 여행때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것이냐 데리고 가지 않을 것이냐로 다투게 되었으며 결국 여행을 따로 따로 떠났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데리고 떠났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 마가 요한을 데려오라고 하여 함께 사역한 사실을 보아 마가 요한이 이전의 자신의 약점을 완전히 보완하여 신실한 일꾼이 된 것으로 이해 됩니다. 베드로는 이 마가 요한을 자기의 아들이라 했는데 이것은 마치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 함같이 믿음의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14절에서 편지를 받는 자들에게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고 권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는 말로 편지를 마쳤습니다.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는 뜻은 뜨겁게 문안하라는 뜻입니다. 핍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제들끼리 사랑으로 서로 문안하며 극한 어려움을 맞고 있는 형제들을 서로 격려하고 위로해 주는 사랑의 관계를 가지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는데 평강이란 하나님이 내리시는 평화입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이며 모든 복을 내포하고 있는 복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다면 최고의 복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라는 교훈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 하고, 말씀도 열심히 읽고, 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며, 헌금도 최선을 다해 드렸음에도 자기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경우에나, 혹은 신앙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신앙이 별로 없어 보이는 사람은 무슨 일들이 잘 풀리는 것같이 보일 때입니다. 이런 의심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오늘의 본문 말씀은 정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 정답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좋아하시는 은혜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에 참여하기에 합당한 자로 훈련시키려고 갖가지의 고난과 역경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는 삶의 계획을 세워나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뜻과 믿는 자의 믿는 목표가 다르다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알면 하나님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은혜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깨닫고 은혜의 하나님을 바로 신뢰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그를 가까이 하기 원하는 자에게 세상의 풍요로움보다는 영적인 믿음이 풍성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는 주님 재림시에 시작될 하늘 나라에서 살 게 될 영원한 영광의 삶에 관심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때로는 시련도 주시고 힘든 고통도 허락하시어 여러 모로 믿음이 온전해 지도록 훈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은혜의 하나님은 성도들이 모든 이들과 평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이 짧은 세상을 하나님이 내리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하나님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만일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주시도록 기도했으나 필요한 것을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필요한 것을 이미 주셨는데 주신 것 가지고는 자기 욕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에 받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을 갓입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로 먹이신 하나님, 물이 필요하면 반석에서도 물이 나게 하시며 바다도 육지 같이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들에게 2일분의 양식을 한꺼번에 공급하시지 안았으며 두 벌 옷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내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으로 내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내가 요구한 것을 당장 주시지 않았어도 내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복만을 가지고 복 받았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주어진 고난이나 실패를 두고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의 경지까지 내 믿음을 끌어 올려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과 함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