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부터의 자유 – 로마서 7:1-6

로마서 강해가 좀 딱딱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을 이해하게 된다면 어려운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지난 6장까지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첫째 모든 인류는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다 죄인이었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모든 인류가 자기의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나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므로 모든 인류는 죄를 용서받아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말은 과거의 죄가 믿음으로 단번에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지 이제는 죄를 전연 짓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완전히 변화 된 것이 아니고 아직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죄의 성품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신을 지켜 늘 성화 되어지는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화 된 삶을 살아나가는 첫 번째 방법으로 지난주에 소개받은 죄로부터 자신을 지키라는 것이었으며 오늘은 성화 되어지는 삶을 사는 두 번째 방법으로 율법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소개받게 됩니다. 오늘에 주어진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율법과 연합된 결혼(1-3) [2]그리스도와 연합된 결혼(4) [3]율법으로부터의 결별과 새로운 결혼 생활(5-6)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율법과 연합된 결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성도들의 신분과 상태를 여러 가지의 비유를 들어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종의 비유를 들어 믿기 전에는 죄의 종이요 믿은 후로는 의의 종이라 했으며, 믿기 전에는 우리의 지체가 불의의 병기로 사용되었으나 믿은 후로는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믿기 전에는 사망의 열매를 맺었고 믿은 후로는 영생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으며 믿기 전에는 죄와 연합한다고 했으며 믿은 후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연합한다는 단어의 뜻을 보다 현실적인 뜻으로 믿기 전에는 율법의 아내이고 믿은 후로는 그리스도의 아내라는 결혼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결혼의 비유란 한 여자가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남편에게 메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결혼의 일반 원리를 비유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여자는 결혼의 법에서 해방되므로 다른 사람에게 결혼을 해도 되지만 남편이 죽기 전에는 결혼의 법에 메여 있으므로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남편에, 그리고 믿는 자들을 아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론을 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세례를 통하여 예수와 함께 옛 몸을 십자가에 못박고 장사 지냈기 때문에 이미 옛 몸, 율법에 메였던 몸은 죽은 것임이므로 그 이상 율법이나 죄에 메이지 않고 율법이나 죄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결혼하여 율법에 메여 있었던 옛 몸은 이미 예수를 믿을 때에 죽었으므로 옛 남편인 율법에는 그 이상 메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논리인 것입니다.

 

남편에 비유된 율법이 죽거나 율법에 메어 있었던 여자에 비유된 옛 몸이 죽으면 율법은 그 이상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인데 율법이 죽을 수는 없고 여자에 해당하는 옛 몸이 죽으므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다른 남편에게 결혼을 해도 되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물론 옛 몸이 실지로 죽은 것이 아니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옛 몸을 위해 대신 돌아가셨기 때문에 옛 몸이 죽은 것으로 인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옛 남편인 율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완전히 해방된 신분이 된 것입니다. 지난주의 말씀에서는 성도는 죄의 종이었던 신분이 의의 종인 신분으로 바뀌었으니 더 이상 죄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었는데 오늘의 교훈에서는 율법에 끌려 다니는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이런 이론을 전개하며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는가 하면 그 당시 교회 내의 어떤 자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믿기 전에는 율법에 메여 있었으나 믿은 후로는 이미 율법과의 결혼관계가 있었던 옛 몸이 죽었으므로 그 이상은 율법에 메이지 않고 율법으로부터 자유스러운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4절의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옛 남편인 율법에서 자유로워 졌으니 이제는 다른 남편 즉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미 율법에서 해방된 성도들은 그 이상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지 말고 의롭게 하신 예수님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의의 열매를 맺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결혼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새 남편인 그리스도와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살라고 하는 결혼 생활의 방향을 분명하게 설정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5절부터 6절까지의 율법으로부터의 결별과 새로운 결혼 생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5절 앞부분에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 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의 육신이란 단어는 죄의 종이 되었던 옛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알기 전 죄의 병기로 또 죄의 종으로 드려졌던 옛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의 말씀은 전에는 율법 아래에서 죄의 정욕이 우리들의 지체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었지만 이제는 율법에 얽매였던 옛 몸이 죽어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옛날 그대로 무익한 것을 위하여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율법에서는 무엇을 해서는 안되니 무엇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속성에는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그것을 한 번 해보고 싶어하는 충동의 속성이 있어서 결국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한 번 해보게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오히려 그 선악과가 더 먹음직스럽게 보여 선악과를 따먹었던 속성과 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아래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인해 죄의 속성이 우리들의 지체에 충동을 주어 죄를 범하게 하므로 결과적으로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있었을 때에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해도 결국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하므로 죄인의 신분을 벗어나지 못해 결국 사망의 열매를 맺는 결과가 되었지만 이제는 무엇을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그런 율법의 그늘에서 벗어났으니 구원자 예수만을 믿고 순종의 삶을 살아서 영생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영의 새로운 것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새로운 결혼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의문의 묵은 것이란 율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남편 되는 율법이 죽었거나 아니면 아내 된 옛 몸이 죽었거나 하여 옛날 결혼 관계는 다 끝나 옛 남편인 율법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로움을 얻었으니 옛 남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고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새로운 결혼 생활을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자유를 누리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많이 듣고 읽어보았습니다. 또 모세 율법을 요약한 십계명을 많이 외우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로마서를 씋 당시의 사람들 뿐 아니라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들에까지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야 구원될 수 있다는 관념에 매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런 관계로 누구누구는 하지 말라는 그 무엇을 했기 때문에 아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든지 또는 나는 하라고 하는 그 무엇을 했기 때문에 구원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안도감을 갖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폐해진지 오래되었지만 율법은 아직도 우리들의 머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분명히 율법은 우리가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에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거와 같은 현실이므로 율법에 대해서 메이게 되는 어떤 생각도 해서는 안된 다는 교훈입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이 이미 죽은 것이 사실임에도 과연 내 전 남편인 율법이 정말 죽었는가 하는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가 없으므로 그 무엇을 행한 내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새 남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받고 날마다의 말씀에 순종해나가는 성화 된 삶을 통해서만 구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머리 속에 내가 무엇을 했으니 그 공로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신뢰감도 버려야 하며 내가 무엇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이 허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란 율법에서 하라고 했던 그 무엇을 함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오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지 않으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내 노력과 내 능력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 자체가 아직도 율법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단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우리의 옛 몸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므로 우리들은 율법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으며 이제는 새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므로 구원이 주어지고 영생의 열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율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는 말의 뜻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된다고 믿고 있는 잘못된 메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믿는 자는 전연 행함이 없어도 된다고 하는 성도가 행해야 하는 행함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구원은 공로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것인 것을 믿고 옛 남편 율법에서 온전히 해방되고 새 신랑 예수만 의지하며 성도가 행해야 하는 행함을 통해 계속 성화 되어지는 삶을 살아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