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 – 로마서 13:8-10

오늘의 본문은 이웃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큰 계명입니까? 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대답하신 이 말씀 때문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 주님시대 이후에 나타난 새 계명으로 이해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보통 알고 있기를 율법에서는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도록 명하고 있음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의 기본 정신은 아닌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율법의 겉만 이해하고 있지 율법의 알맹이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온 오해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약 레위기 19장 18절에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의 기본 정신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임에도 이 기본 정신을 거역하고 이웃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 처벌 하는 방법이 우리가 느끼기에 살벌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신약에서뿐 아니라 구약 율법에서도 근본 가르침인 것을 확인하고 오늘 본문에서 주는 사랑에 대한 교훈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피차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8) [2]율법의 성격과 사랑의 성격(9) [3]사랑은 율법의 완성(10)입니다.

 

[1]맨 먼저 8절의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의 빚을 지고 태어나서 사랑의 빚을 진체 죽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은 일평생 살면서 맨 먼저는 부모로부터 시작하여 가족, 친척 이웃 그리고 국가와 사회에 걸쳐 내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14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했습니다. 이 뜻은 자기는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죄인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신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헬라인에게나 야만인이나 할 것 없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빚진 자들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통해 복음을 전달 받았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들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면서 빌레몬은 사도 바울 자신에게 빚진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 빚은 사도 바울을 통해 빌레몬이 복음을 전해 받은 복음의 빚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빚진 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들을 구원시키시어 영원히 살게 하셨으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큰 빚을 진자들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무엇으로도 빚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큰 빚을 진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 빚진 자의 신분인 우리들에게 권하기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빚을 지지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피차 사랑의 빚을 나누어 주며 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으니 그 큰 은혜에 감사하여 받은 사랑을 내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9절의 율법의 성격과 사랑의 성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 이웃에게 해서는 안 될 것을 자세히 적어주기도 하고 또 이웃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도 적어준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이 주어졌는데 이 율법을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10계명에서는 8 계명은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것이고 2개의 계명은 무엇을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인 것입니다.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법은 인간들의 속성이 죄의 속성이 있어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인간들이 하고 있음을 전제하여 주어진 법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이 소개 되었는데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탐내지 않는 것은 이웃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적극적인 것은 아니고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의 아주 소극적인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것도 잘 지키지 못해 이웃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자들이 십계명 중에서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8 계명을 잘 지키므로 이 사회에 성적 범죄자나, 살인자나 강도 절도가 없게 된다면 이것만 해도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들에게나 주민들에게는 상당히 안정감을 주고 평화를 느끼게 하리라 봅니다. 이런 계명만 잘 지켜도 태러 때문에 겪는 불안과 불편이 살아질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율법의 성격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을 막는 정도의 소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랑의 성격은 남에게 직접 이익을 나누어주는 성격이 있는 것입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입을 것이 없는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필요한 자에게 사랑을 배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개인과 단체가 있는데 그 모든 단체에서는 사랑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공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이웃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소개 했습니다. 어떤 여행자가 여행 중에서 강도를 만나 매 맞고 상처 나고 모든 것을 다 빼앗겼는데 그 강도 만난 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자들도 있었으나 세상에서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은 그를 일으켜 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며 심지어 병원비까지 다 부담해 주었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우리들은 세 종류의 내 이웃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강도, 하나는 내게 손해를 끼치지 않은 이웃, 다른 하나는 내게 선을 베풀어주는 이웃입니다. 율법이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이웃이라 한다면 사랑은 남에게 선을 베풀어주는 이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3]마지막으로 10절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8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했으며. 9절 마지막 부분에는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나 무엇 무엇을 하라는 어떤 계명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4절부터 7절에 보면 사랑에 대해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내가 만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내 이웃에게 피해가 될 만한 어떤 악을 행하지 아니할 것이고 마음에 상처가 될 만한 어떤 말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내 이웃이 좋아할 만한 일만 행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에는 어떻게 해주면, 무엇을 해주면 내 이웃이 기뻐할까 만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에게 피해가 될 만한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는 율법이나 남을 위해서 무엇 무엇을 하라는 율법 등 모든 율법이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을 하게 된다면 율법이 따로 필요 없으며 율법이 다 이뤄진 것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는데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셨고 또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율법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소극적으로 풀어 본다면 남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선 먹을 것이 없어서 쌀을 꾸는 것 말고 사치하기 위해 또는 큰 사업을 하기 위해 물질을 꾸어서 갚지도 못하는 그런 빚을 지고 살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런 후에 돈을 많이 빌려 도망쳐 버리는 일들도 보게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빚을 지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훈은 이런 소극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교훈으로 사랑을 피차 나누며 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지고 태어나는 존재이며 살아나가는 모든 삶에서 사랑을 빚지고 사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께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아무리 갚아도 내가 하나님께 진 빚은 갚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 뿐 아니라 내 부모와 내 형제와 내 이웃 더 나아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를 통해 입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존재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노인들 나라로부터 입고 있는 은혜를 어떻게 갚겠습니까? 돈으로 갚겠습니까? 아니면 몸으로 국가에 봉사하겠습니까? 노인들로서는 그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빚지고 갈 수 밖에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사도 바울이 권하기를 피차 사랑의 빚을 나누어주며 살라는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빚을 나누어주며 살되 모든 이에게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주듯 도움이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진 많은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으나 기회가 있는 대로 나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므로 내가 진 빚을 갚아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나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 이기주의적인 분위기 이지만 성도들은 오늘 받은 교훈에 따라 남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타주의 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남은 나에게 어떻게 대했더라도 그것과 상관 말고 심지어 내게 잘못한 사람에게까지 잘해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내가 잘하기가 어려울 것이므로 그럴 때에는 내가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 예수를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랑이 실천될 수 있을 것이므로 사랑을 실천할 때마다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다는 자세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사랑을 받기는 쉬어도 사랑을 실천하기란 참 어려우므로 성령께서 도와 주셔서 사랑의 빚을 나누며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을 나누며 살아나가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