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핍박 후편 – 사도행전 5:26-42

지난 주에는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옥에 갇혔으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옥문을 열게 하시고 자키는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시어 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성전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도록 지시하므로 그 지시대로 순종했던 사도들의 믿음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사도들의 삶은 개인의 생각대로, 개인의 욕심을 따라, 개인생활의 풍성을 위한 삶이 아니요, 성령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복음 전파를 통해 남의 생활이 풍성해지도록 하는 사명 감당키 위해 십자가를 철저히 자는 놀라운 모습이라는 것을 보면서 성도의 삶의 모범을 배웠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방금 봉독해드린 5:26-42을 통해 초대교회에 있었던 제2의 핍박 후반부를 소개하므로 성령이 함께 한 사도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다시 새롭게 힘을 얻고, 비록 고난이 따르는 신앙생활이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승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믿으시고, 모든 시련과 핍박이 우리가 받을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해준다는 확신을 갖는 좋은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겠습니다.

 

[1] 심문과 답변(26-33)

재판하기 위해 옥에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끌어오도록 했는데, 사도들이 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있었지요? 성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지요? 서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지요. 결국 사도들을 잡아오려고 성전에 사람을 보내어 잡아오되, 26절을 보니 강제로, 억지로 끄러오지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하였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옥에서 풀려나온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믿었고, 이 사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보내신 바 받은 자들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무례하게 대접하게 되면 일반 백성들이 또는 새로 믿게된 기독교인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잡아와서 심판대에 세워두었으나 죄목이 없어요. 왜 갇혔다고 했던가요? 시기심 때문에 갇힌 거예요. 또 주님이 부활했다고 증거하니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아니하므로 종교적 교리차이로 잡아온거예요. 심문하되 28절에 보니 “우리가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금했음에도 너희가 너희 도를 예루살렘에 가득 차게 했으니, 첫째는 공회, 즉 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함이요, 둘째는 예수를 죽인 우리를 살인자로 몰고자 함이 아니냐”고 심문하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답변을 합니다. 어떤 변명도, 두려움도 없이 오로지 하나님을 위한 바른 말만 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답변은 아주 위력적이요, 명백한 답변을 하게 됩니다(29-32)

①사람들이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②너희가 나무에, 십자가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

③살리신 이유는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여 죄사함 얻게 하시려고 오른손으로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

④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성령도 이 일의 증인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에 이어 십자가에 못박힐 위험을 안고도 성령에 충만하여 자기들의 믿음을 조금도 숨김없이 고백하고, 또 자기들이 믿고 있는 바를 재판관들과 방청객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한 설득력있고 위력있는 답변은 과연 훌륭한 답변이었습니다.

 

[2] 가마리엘의 중재(33-40)

33절에 보니 사도들의 답변을 들은 재판관들이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을 이유도 없으나 시기와 흥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으려는 험악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때 가마리엘이란 분이 나타나 중재하는 모습이 33절부터 40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법사(법률가)요,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경 아닌 전통문서에는 그가 그 당시 비밀 그리스도인이었거나 그 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재판관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일어나 역사적 사건을 들어서 중재를 합니다. 드다란 사람이, 갈릴리 유다란 사람이 일어나 사람들이 그를 따랐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세우신 일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죽으니 따랐던 자들이 다 흩어졌었는데, 역시 이 사도들의 일도 상관 말고 내버려두어라. 이들의 하는 일이 사람으로부터 난 일이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겠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고 좋은 중재하게 됩니다. 40절에 보면 이 중재안을 저희가 옳게 여겼다고 되어 있습니다.

 

[3] 석방입니다(40-42)

베드로와 요한이 첫 번째 옥에서 재판관들에 의해 석방될 때에는 이 도를 다시는 전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를 받고 나왔었는데, 이번에는 재판관들이 없애버리겠다고 흥분한 그들의 감정을 억제치 못하고 먼저 채찍질을 했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율법으로는 매를 때리되 40번 이상 때리는 것을 금했으므로 바울과 같은 분들의 고백을 통해서도 죄수들이 39대 정도 매를 맞게 되는 모양입니다. 잘못 계산해서 40을 넘을 경우 위법이므로 하나 정도 줄여서 때리는 모양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큰 작대기 같은 것으로 39번 매를 맞은 사도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41절에 보니 사도들은 주 예수의 이름 때문에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기뻐하면서 재판소를 떠나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억울하다거나 저주하거나 불만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매맞는 것을 당연히 받아야할 상같이 기쁘게 생각하면서 떠나왔다고 했습니다. 매를 먼저 때리고 내보내주면서 뭐라고 했지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었다고 했지요. 그런데 42절에 보니 저희가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기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사실에 감동되시면 할렐루야 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우리가 받는 교훈과 우리 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질문과 답변을 통해 얻은 교훈은 우리 믿음과 사명을 재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는 어떤 사명을 느끼고 있습니까?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무슨 위협으로 우리 신앙을 막더라도 하나님을 택하는 확립된 신앙, 몸은 죽여도 믿음을 지키는 분명한 신앙, 십자가에 못박힐 위험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높이는 그런 신앙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몸은 죽어도 주님께서 영을 다시 부활시켜주시어 영광을 얻게 하실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은 그를 믿고 죄사함을 얻게 하려함이요, 우리는 이 일을 남에게 증거해야 할 사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살리신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시에 심판이 있을 것을 이웃들에게 알리는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부활과 심판의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진리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가 있을 것이라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과 심판을 그대로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가마리엘의 증언을 통해 얻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은 막을 수 없다는 신앙입니다. 잘못 실수하여 어떤 경우에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적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에게 도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인간을 돕고 협조한 것이 하나님을 돕고 하나님의 편에 선 결과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 어떤 경우에는 잘못 판단하여 마귀를 돕고 사단의 부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리 편에, 선한 일에 동참하며 하나님 편에 선 것이요, 비 진리편에 선 것은 마귀 편에 선 결과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석방을 통해 교훈입니다.

사도들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다고 믿을 정도였습니다.

벧전 4:13에 보면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이 매를 그렇게 맞고도 당연하고 기쁘게 옥을 나오듯, 예수 믿고 전도하면서 당한 고통과 모욕과 가난과 어려움은 오히려 우리에게 낙담이 되거나 좌절이 아니라 면류관을 더 키워주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자격을 더 확실히 해주고, 더욱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다주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핍박과 고난은 우리가 받을 상을 크게 해주는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시여,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담대한 신앙,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재림하심을 확신하고 이에 대한 증인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신앙, 그리고 복음전도 위해 당한 모든 아픔과 고통을 기쁨으로 받는 신앙을 갖는 우리 성도들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