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회의 – 사도행전 15:1-21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교회 안에 이단교리 문제가 생겼습니다. 시기적으로 보아 유대교를 열심히 따르던 무리들이 기독교로 개종은 했지만 그들 중에는 아직도 율법과 은혜, 율법과 복음을 잘 이해못하고 기독교인도 마땅히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무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교회에 유대로부터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기를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므로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 1-21절까지는 문제의 발단과 그 문제 해결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본문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교회 내의 문제와 해결을 위한 방안(1-5)

[2] 예루살렘 회의(6-18)

[3] 결론(19-21) 으로 말씀을 증거하려 합니다. 짧은 설교 메시지이지만 이 말씀안에 귀한 진리가 나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다시 확증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 교회 내의 문제와 해결을 위한 방안(1-5)

우리 성도들은 이미 갈라디아서 강해를 통해 이방에 세워진 교회마다 유대로부터 왔다는 지도자들이 바울이 전한 순수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대교적인 율법적인 교훈으로 성도들을 혼동을 주게되므로 복음전도자 바울에게는 치명적으로 상처를 주게되고 성도들도 혼동을 하게된 것입니다.

갈 3:1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책망할 정도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 안디옥 교회에도 유대로부터 왔다는 사람들이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게 되므로 주 예수를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 줄 알고 믿어온 성도들에게 상처를 준 것입니다.

할례란 무엇입니까? 율법의 일부, 즉 유대인들과 하나님 사이에 약속된 법이지요. 유대인들은 마땅히 할례를 받아야 하고 모든 율법을 지켜야 했는데, 만일 이방 성도들이 할례를 받게 된다면 그것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고 모든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이방과 유대의 담을 허시고 믿음으로 모두가 의롭게 되고 이방과 유대가 하나가 되게 하셨는데, 유대로부터 왔다는 지도자들이 그렇게 가르치니 이것은 주님이 죽으심으로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을 찟으셨음에도 이들은 다시 성ㅅ 휘장을 꿰메는 결과이며 율법의 어두움에서 자유를 주셨건만 다시 율법 속으로 들어가 얽매이고자 하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반대파들이 공격해왔기에 유대로부터 왔다는 그들의 가르침은 상당리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유대로부터 왔다는 사람들과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적지 않은 변론과 다툼이 일어났으나 해결이 된 것같지 않아 결국 례루살렘 교회에 몇 사람을 보내 이 문제에 대한 정다을 얻기로 하여 바울과 바나바 , 그리고 또 몇 형제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게 됩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가는 도중에 주변 교회들을 들려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간증을 하므로 주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사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와서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신 모든 일을 말하는데, 반대파가 일어나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예루살렘 회의(6-18)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 사도들, 회중들이 다 모였고 많은 변론이 오고 갔습니다. 변론이 있는 동안 다 듣고 베드로가 일어서서 자기의 경험과 의견을 제시합니다.

①이방이들로 믿게 하시여고 나를 택하시어 말씀 전하게 하시었다

②그들에에도 우리에게와 똑같은 성령을 주시었다

③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게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다.

그런데 왜 너희는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도, 또 우리도 메지못한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저희가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은 줄을 믿노라고 분명히 자기 믿음을 밝히게 됩니다.

야고보가 연설합니다.

①이방인 중에서도 자기 이름을 위한 백성을 취하시려고하는 섭리를 베드로를 통해 들었다고 하며 베드로의 연설을 지지했고,

②메시야가 오시어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유대인 중 남은 사람과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신다. 주님이 오시어 그를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게 하시려 한다.

③이런 것들은 예언된 주의 말씀을 통해 알게된다.

물론 야고보의 연설이 있기 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일어나서 이방 중에서도 자기들을 통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다고 발표하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 보내신 찬 지도자란 것을 입증하기 위함이겠지요?

 

[3] 결론(19-21)

야고보가 자기의 주장을 나타내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야고보가 누구입니까?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요,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요,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주님 살아계실 때는 주를 믿지 아니했으나 부활 후에 믿게 되고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되었고 야고보서의 기록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결론은

(1)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를 괴롭게 말라.

(2)몇 가지 편지를 써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①우상을 멀리하라. 이방인들은 잡신을 섬기므로 우상을 멀리하라.

②음행을 멀리하라. 고린도 교회 등 이방인들에게 흔한 음행을 멀리하라.

③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이것은 유대인들이 지킨 율법에 있는 것으로 율법에서는 피는 곧 생명이므로 피채로 먹지말고, 피를 먹지말고, 또 더러운 음식(부정한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먹지말도록 또 멀리하도록 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왜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요? 우리가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게되며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다른 복음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단이란 단어에 민감하지만 이단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판단이 흐립니다. 맘 좋은 성도들은 어느 교파이든 어느 종파이든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니 다 좋다고 하거든요. 정말 맘 두 번만 좋았다가는 신앙 다 팔아먹겠어요.

안디옥 교회에 문제가 발생할 때는 아직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가 기록되기 전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은혜에 대한 바른 확신이 없는 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이 우리 손에 있고 율법과 은혜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음으로 기록된 것을 벗어나서 가르치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십계명을 구약 율법적인 것으로 현대교회에서도 성도들을 얽어매려한다면 예루살렘 교회까지 갈 필요 없고 말씀으로 확신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다른 복음, 거짓 고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을 골라내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을 그대로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라고 했으면 받아야 할 것이고, 물 속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가 성경적이면 그대로 할 것이고, 매주 만찬을 하는 것이 성경적이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여자 집사, 장로 없으면 안하면 되는 것이지요.

거짓 형제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①성경지식 자랑하는 자, 그리고 옆사람 기죽이는 자

②주님 말씀보다 자기 의견 내세우는 자

③교회는 정기적으로 가지 않으면서 말마다 주 예수 이름이나 금식기도 내세워 자기 위장하는 사람

④주님 이름 높이기 보다 자기 자랑, 자기 높이려는 사람.

교회를 둘로 쪼갤 수 있는 많은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답을 어디서 얻을까요? 어디로 가서 재판을 받을까요? 오로지 신약성경을 중심해서 신약교회에서 어떻게 했고, 말씀은 우리에게 뭐라고 했는지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 존중하기 보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말씀에 기초 두어야 합니다. 계시도, 꿈도, 방언도, 예언도, 다 중요하겠지만 말씀 앞에서는 잠잠해야 합니다. 더하거나 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말씀에 기초 둔 신앙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 덕을 끼치라는 말씀입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사 음식 먹을 수 있어요, 없어요? 믿음으로 먹으면 다 깨끗한 것이 사실입니다. 율법에서는 돼지고기뿐 아니라 금한 음식 많아요. 그러니 그런 율법적인 금지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위해 먹지 않는 거예요.

예루살렘 교회가 왜 안디옥 교인들에게(이방인교인들) 목메어 죽인 것이나 피를 멀리하라 했겠어요? 안디옥 교인 중에서도 유대교에 개종된 유대인 교인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음식을 구태여 보는데서 먹는 것은 성도간에 덕이 되지 못해요. 그래서 유대인은 율법을 양보하고, 이방인은 먹는 음식을 유대인 앞에서는 양보하는 덕을 세우는 화목의 처방이 내려진 거예요.

예수 믿는 사람 술, 담배 해도 크게 잘못될 것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 누가 보던, 보지 않던 몸에 해로운 것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는 결과이므로 술 ,담배 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중요한 것은 이웃 성도들에게 덕을 끼치게 하기 위해 하지 않는게 바람직한 거예요.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다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으되 형제의 유익을 위해 사양할 수 있다는 믿음 가졌습니다. 집에서 혼자 술, 담배 하는 사람이 남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이 위선이 아닙니다. 남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끼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성도들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고수하고 남에게 덕을 끼치고 양보하여 화목을 끼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