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회에서의 바울의 증언 – 사도행전 22:22-23:11

지난 주에는 예루살렘 군중들의 폭동으로 군인들에 의해 체포 구속된 바울이 천부장의 허락을 받고 군중들에게 자신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뜻을 하나 하나 잘 증거해 나가고 있었는데, 바울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셨다는 말을 꺼내자 군중들은 화가 극도로 치밀어 올라와 소리지르기 시작하므로 연설이 중단되었던 부분까지의 내용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방금 봉독한 본문의 내용대로 폭동을 일으킨 군중들이 이런 놈을 죽여야 한다고 소리지르게 되므로, 천부장이나 다른 군대 책임자들이 믿기는 바울이 죄를 져도 큰 죄를 진 사람 같아 고문해서라도 죄의 자백을 받고자 가죽줄로 묶으려했으나, 바울이 자신이 로마시민임을 제시하자 로마시민을 죄도 정하지 않고 구속하고 매를 때리는 것이 불법임을 군인들이 알고 두려워하여 정식재판을 하게하므로 이 자리에서 바울이 증언할 기회를 다시 얻게되었는데, 그의 연설은 데모 군중을 두 패로 갈라지게 해 스스로 분쟁하도록 만들었고, 이 모든 일들을 통해 마음이 약해진 바울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바울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신 내용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신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우리의 믿음이 새롭게 변화되고 힘을 얻는 귀한 시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법적 보호 호소(22-30)

[2] 공회에서 바울의 증언(23:1-10)

[3] 주님의 격려(11)

 

[1] 법적 보호 호소(22-30)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유일한 백성이요, 이방인들은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들로 믿고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전해야 할 사도가 되었다고 증언하자 조용히 듣고 있다 “이런 놈은 세상에서 없이하자. 살려둘 자가 아니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합니다. 당장 돌로 쳐죽이고자 하나 군인들이 보고 있어 그런 행동은 자제하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는 증거로 옷을 벗어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던 것입니다. 청중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던 천부장은 처음부터 왜 데모를 하는지 알 수 없던 차에 이젠 살기가 등등하므로 바울의 큰 죄라도 지은 사람이구나 예측하고 무슨 죄를 자백받고자 부하인 백부장에세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명령을 받은 백부장은 기둥에 가죽줄로 바울을 묶게 됩니다. 기둥에 왜 묶겠어요? 매로 쳐서 죄의 자백을 받으려고요.

바로 그때 바울은 백부장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로마 사람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고 경고를 합니다. 로마법은 로마시민을 절대 보호하여 죄없이 구속시키거나 죄를 정하지 아니하고 매를 치는 것은 법으로 절대 금하고 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법에 의해 집행하는 보안관들인 군인들로서는 큰 일이 났습니다. 매를 때려서 고백을 받아 그 자세한 내용을 상부에 보고하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상부가 알면 목이 달아나게 되었습니다. 이 군인들은 바울이 유대인으로만 생각하고 멋대로 다루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로마시민이라니 큰 걱정이 생겼습니다.

백부장이 즉시 천부장에게 보고하게되니, 천부장이 직접 찾아와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대답하라”하니, 그러하다고 대답을 합니다. 천부장은 자기도 로마시민이지만 그 시민권을 돈을 많이 들여 샀는데 바울은 어떻게 얻었는지 궁금해합니다. 바울이 뭐라고 대답했지요. “나는 나면서부터 얻었다”고 했지요. 일이 이렇게 되므로 심문은 커녕 로마시민을 죄도 정하지 않고 구속했던 일을 두려워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결국 천부장은 정식으로 재판하기 위해 결박한 것을 풀어주고 공회를 모으고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2] 공회 앞에서의 바울의 증언(23:1-10)

지금까지는 불법적으로 다루어졌으나 이젠 합법적으로 절차에 의해 바울이 증언할 권리를 찾게되어 재판관들 앞에 증언을 시작하게 됩니다.

22:1에서는 연설을 할 때 “부형들아”라고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형제들아”라고 표현하여 재판관들을 자기와 동족으로 간주하고 연설을 시작합니다.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말하자, 대제사장인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던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하게 됩니다. 입을 치라고 명령하는 것은 듣기 싫으니 입 다물어란 뜻이 겠지요.

그 말을 들은 바울은 대제사장을 향하여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의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재판자리에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하느냐?”고 맹공격을 하게 됩니다. 율법대로 한다면 죄도 결점이 없는 사람을 쳐서는 아니 되지 않겠어요? 데제사장을 맹공격하니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는냐고 경고를 받게 될 때, 바울이 즉시 그것을 받아들여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노라”고 잘못을 인정하였는데, 왜냐하면 율법에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하지 말라고 했음을 아는 바울은 세상법을 준수하고 자기도 법대로 권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지 못하였다는 말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오랫동안 떠나 있었으므로 실제로 몰랐을 가능성이 있고, 아나니아 자체가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담당하기에 신통치 않은 인물이어서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를 향해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 말대로 그는 친로마파로서 로마의 앞장이 노릇을 했는데 AD 66년 유대인들이 로마를 향해 반란을 일으킬 때 아나니아가 무서워 도망을 쳤는데, 유대 특공대들이 헤롯궁 하수구에 숨어있는 그를 찾아서 살해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재판관들이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일부는 바리새인인줄 알고,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다가 내가 심문을 받는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왜 이런 연설을 했을까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므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자기들끼리 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봅니다. 연설은 성공적이서 바리새파 사람 중에 몇 사람이 일어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하니,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사람들끼리 분쟁이 생긴 것을 보고 천부장이 볼 때 혹시라도 바울이 찢겨질까하여 군사를 명하여 부대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3] 주님의 격려(11)

그날 밤 주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담대하라고 하신 것은 그가 얼마나 힘이 빠지고 지쳐있었음을 암시해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야할 일을 말해주십니다. 지금 예루살렘에서 맞아 죽게될 인물인데도 하나님의 계획은 로마에까지 가서 부활의 증거자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보장이 됩니까? 예루살렘에서 아무리 위협이 등등해도 그는 죽지 아니할 것이요, 로마에까지 갈 것이라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그때부터 약 5년간 죄수로서의 생활을 하게됩니다. 로마에까지 가는 동안 배가 태풍을 만나 파손되게 되어 선원들이 다 죽는 줄 알았지만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씀을 믿은 바울은 배가 풍랑을 만나도 생명에는 전연 지장이 없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셨을까요?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Q.T를 하셨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음성을 들었을까요? 제게 주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우리의 시민권을 사용할 줄 알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에 필요한 것으로 알고 로마시민권을 갖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그는 그의 시민권을 자랑으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복음전도 위해서 필요할 때 잘 사용하므로 위험에서 구출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주신 것을 전도를 위해, 주를 위해 가장 적절히 잘 사용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민권은 무엇입니까? 좋은 인물입니까? 좋은 가문, 학벌입니까? 지식입니까? 지혜입니까? 가난입니까? 무식입니까? 인물이 못났습니까? 사회적 지위가 없습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가? 젊습니까? 늙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두 전도를 위해 예비하신 우리의 시민권입니다. 적절히 사용하시라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두려워 말라는 주의 음성을 듣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가장 곤고할 때마다 두려워말라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18:9-10에 고린도에 있을 때,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아무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란 음성을 들었습니다. 27:24에서 주님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울이 심히 곤고할 때 주께서 바울곁에 서서 이르되 담대하라고 위로해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렵고 힘들 때에 우리 곁에서 응원하시는 주님의 담대하고 평안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곁에 서서 늘 응원하심을 믿고 그의 음성을 듣는 귀를 열어두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 하나님이 주신 시민권을 잘 활용하여 복음전하는데 사용하시고, 주님께서 늘 내곁에 계시어 어려울 때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심을 믿고 모든 어려움에서 힘을 얻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