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도와 아그립바 – 사도행전 25:13-27

지난 주에는 베스도 총독이 올바른 재판을 기피하고 오히려 유대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재판장소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서 하겠느냐는 질문에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 가서 황제의 재판을 받겠다는 호소를 했던 바울의 모습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으로서 정당하지 못하고 약자를 무시하고 다수의 군중들을 즐겁게 하려는 재판 놀음을 즐기던 베스도 총독에게 곤혹스런 결과를 가져다주었던 통쾌한 호소였던 것입니다. 자기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고, 당연히 자기가 처리했어야 할 일을 로마 황제에게 보내야 하는 재판과 통치능력의 무능을 들어내는 결과가 되어 쩔쩔매게 되는 입장에 처하게된 베스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본문 13-27절을 통해서 베스도에게 부임 축하인사를 온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의 얼굴을 보면서, 본문이 주는 교훈과 우리 생활에 적용할 것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 베스도와 아그립바의 대화(13-22)

[2] 신문소에 나타난 아그립바와 버니게(23-27)

 

[1] 베스도와 아그립바의 대화(13-22)

13절에 보니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라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아그립바 왕이라고 하면 헤롯대왕의 증손이요,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의 독자이기도 합니다. 사도 야고보를 죽인 헤롯이 아그립바 1세요, 여기의 아그립바는 그의 아들 아그립바 2세인 것입니다.

벨릭스의 아내가 누구였지요? 드루실라. 드루실라는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었으므로, 아그립바 2세는 드루실라의 오빠가 되는 것이지요. 그의 아버지 아그립바 1세가 사도 야고보를 죽인 후 곧 하나님이 치시어 죽게되었는데, 그때 아그립바 2세는 나이 17세였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 너무 어려 치세를 할 능력이 적다 평가되어 베스도가 통치하고 있던 지역의 북동쪽의 조그만 땅을 다스리면서 제사장들이나 임명하고 속죄일에 의식복이나 착용하는 정도의 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왕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주후 53년에 황제 네로가 갈릴리 바다 부근의 땅을 그에게 덧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아내 버니게는 드루실라의 언니이므로 아그립바의 친누이 동생이 됩니다. 드루실라가 이혼하고 벨릭스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 버니게도 두 번이나 이혼하고 자기 오빠와 살게되는 유대의 밥을 철저히 어긴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헤롯 왕가의 마지막 왕이 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이 새로 취임한 총독 베스도를 축하 인사차 방문하게된 것입니다. 베스도로서는 어쩌면 황제에게 바울의 죄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아그립바 왕이 도아줄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바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바울에 대한 이야기의 요점은,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 유대인의 지도자들이 그를 고소하여 자기들에게 내어주기를 원했으나, 피고가 원고 앞에서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는 내어주는 곳이 로마법이 아니라 하여 저희가 나와 함께 가이사랴에 와서 지체지 아니하고 재판을 했으나, 내 짐작하던 대로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 뿐이라, 내가 종교문제라 어떻게 심판해야 할지 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심문을 받겠느냐고 하니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가이사에세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했다고 말하게됩니다.

그러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하니 내일 듣도록 하자고 합니다.

 

[2] 신문소에 나타난 아그립바와 버니게(23-27)

23절에 보니 “이틀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라는 기록을 보게됩니다. 왕이 권위를 세우고 화려하게 입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며, 그 성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모습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베스도는 바울을 부르고, 베스도가 청중을 향해 자가의 의견을 말하게 됩니다. “이 사람 바울은 유대인이 무리가 크게 외쳐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며 내게 고소했으나, 나는 살피건데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황제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였나이다. 그러나 황제에게 확실한 사실을 보고할 자료가 없어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압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아그립바 왕의 혈통은 기독교와 연관이 있어 베스도가 큰 기대를 걸 수 있었을 것입니다. 헤롯대왕은 예수님을 죽이려 그 당시 2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명을 내렸지요. 헤롯대왕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지요. 또 헤롯대왕의 손자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지요. 헤롯의 혈통은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태어난 집안이라 아그립바 2세로서는 그 누구보다고 기독교에 대해 아니 바울의 죄를 뒤집아 씌어주기에 유익한 인물로 보고 베스도가 기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을까요?

첫째, 예수님과 상관없는 무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경고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3일만에 부활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음에도, 아니 바울을 통해 직접 부홯에 대해 증거를 받았음에도, 영생을 주는 이 구원의 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베스도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는 아직도 예수는 전설의 인물같이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하는 문제”라고 막연한 표현을 하거나 듣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에게 보낼 자로 작정하며, 또 자기 죄 회개하고 구원받아야 하는 절박한 갈증이 아닌 호기심으로 그 유명한 바울을 만나보고자 하는 아그립바 2세이며, 하나님의 보내신 바 구원의 도를 전파한 위대한 주의 종을 살려두지 못할 자라고 외쳐되었던 군중, 어떤 방법으로라도 죽여야한다고 살기가 가득한 종교 지도자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군인들, 신문소 앞에는 각자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로 매워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들 믿어 구원 얻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 못하는 세상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많은 선지자와 사도들과 주의 종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구원얻는 일에는 관심없고 자기의 명예와 지위와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나 교인들의 모습을 지적해주는 것입니다.

정권 유지에 정신이 없는 정치 지도자라도, 사회개혁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회 개혁자들도, 보다 잘살아보도록 하겠다고 희생하는 경제 지도자들도, 아니 가족 식구 먹여 살려야 한다고 사업에만 얽매여 있는 사업가들도 그것이 다 중요하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 예수가 나를 구원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세상에 속한 나를 주님께 속하도록, 세상에 소망을 둔 나를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도록 끌어올리고 관심을 바꾸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성도들 무엇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까? 무엇에 팔려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의 구제주이시니, 그가 세상에 오시어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고 3일만에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그가 하늘에 오르사 언젠가는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거라는 것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둘째, 스승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으로부터 어떤 답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베스도도 세상에 속한 사람, 아그립바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므로, 베스도는 혹 아그립바를 통해 바울을 죽일만한 죄목얻는데는 도움이 될자도 모르나, 바울을 죽이는 것이 그를 살게하는 결정적 도움이 아니라, 그가 사는 길, 영원히 사는 길은 바울이 전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그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 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학식도, 학벌도, 명예도, 인품도 나를 완전히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며 온전히 나를 사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동분서주하는 것 바쁠 뿐입니다. 뭐 좀 한 것 같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산해보면 남은 것이 없을지 모릅니다. 바른 지도자, 유일한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분의 지도 받고 내가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도 그 분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크게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싸이클은 그리스도의 음성이 나오는 주파수에 맞추고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유명한 강사, 부흥사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 제치고 유명세만 찾아다니다가는 명답을 얻지 못합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 맞는 우리 성도들이 잠시 다시 사신 것 같이 우리의 믿음을 계속 살려 나가기 위해 관심을 내 신앙에, 관심을 주님께, 관심을 하늘나라에 주님오실 때에 두고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 바른 충고와 지도 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