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나 – 요한계시록 1:3 ; 22:13

지난 주까지 계시록 22장 마지막까지 강해가 끝나고 오늘은 1장부터 22장까지를 종합적으로 한 설교로 엮어보았는데 설교 제목은 “그리스도와 나”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와 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과일이 먹고 싶어 과수원에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과수원에서 무엇을 보게됩니까? 과일을 보게될 것입니다. 또 뭐가 보입니까? 주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보이지 아니하고 과일만 보인다면 그 눈은 다 못 보는 눈이라 하겠습니다. 요사이 수요일에 창세기 강해를 듣게 되는데 창세기에서 무엇을 보게되겠습니까? 이미 에덴 동산을 구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브라함 자녀 이야기, 이삭, 야곱, 요셉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차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란 과수원에서 과일만 볼 것이 아니라 주인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즉 창세기는 과일을 소개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고,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이번 수요일에 강해 받게 되겠지만 창3:15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이나, 창12:3의 “너를 인하여 축복을 받을 것이라” 등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어 쓰여진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많은 스토리가 적혀있지만, 율법은 뭐고 유월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모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역의 역사서나 문학서나 예언서 등 모든 책이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 쓰여진 것입니다. 신약 사 복음도 사도행전도 바울서신도 일반서신도 모두 많은 말이 쓰여 있는 것 같지만 체로 걸러 본다면 무엇만 남겠어요? 예수그리스도만 남게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1년여 걸쳐서 계시록 강해를 마쳤는데, 그 동안 우리는 매주 주시는 양식만을 중심해서 일정 분량의 양식을 중심으로 주님이 내리시는 뜻을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멀리서 22장 전체를 한눈에 보자는 것입니다. 과수원 깊이 들어가 버리면 과일만 보이게 되겠지만 과수원 밖에서 멀리서 바라보면 분명히 주인이 제일 먼저 보이게될 것입니다. 계시록 1장 1절에서 예수그리스도로 시작하여 22장 마지막이 예수그리스도로 끝이 났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처음과 나중이시라 표현되고 있는데, 주님은 창세기이시며 요한 계시록이십니다.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질서정연하게 순차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소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이 무엇에 대해 쓰여있다고요? “그리스도.” 성경의 주제를, 또 계시록의 주제를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훌륭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학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람은 그리스도만큼 중요한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 맞출 수 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이 되어야합니다. 누구일까요? 가장 좁혀서 “나”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주제는 예수그리스도와 나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로 인해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나를 위해 처소 예비하러 가셨으니 새 하늘과, 새 땅도 바로 나를 위해 예비하셨으므로, 성경의 주연 배우는 계시록의 주연 배우는 “그리스도와 나”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눈으로 계시록이란 나무를 좀 떨어져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22장까지를 다섯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 그리스도(1장)

[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2~3장)

[3] 천국의 영광이신 그리스도(4~5장)

[4] 심판자이신 그리스도(6~18장)

[5]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19~22장)

 

[1]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 그리스도(1장)

계시록 1:17-18에 보면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주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과 이젠 영원히 시실 것이 강조되었는데, 왜 이 말이 여기에 강조되었을까요? 성경의 주연 배우가 “그리스도와 나” 라고 했는데 주연 배우 그리스도가 다시 사시어 영원히 사심같이 그를 믿음으로 우리도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될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1장의 제목은 부활하시어 살아 계신 그리스도일 뿐 아니라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 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2~3장)

2~3장에는 주님께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 일곱 교회는 세상에 있는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칭찬과 책망을 하시며, 교회와 연관을 갖고, 교회를 양육하시는 모습을 소개받게 됩니다. 순교 당하면서도 믿음 지킨 것을 칭찬했고,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나누며 충성한 자들을 칭찬하고,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나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미지근한 믿음을 책망했고, 세상과 타협한 믿음이나 이단 교리를 받아드린 것이나 우상 숭배를 책망했고, 외모는 살아났으나 실지로는 죽어있는 교회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의 칭찬도 책망도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돌보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과 관계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도 나도 지금 주님으로부터의 칭찬과 책망을 받고있는 위치, 주님과 매일 연관되어 있는 위치에 있어서 칭찬 받는 것은 더 키워나가고 책망 받는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칭찬 받은 일이 무엇인가요? 아니 책망 받은 일이 무엇인가요? 책망 받을 일을 오늘 지금 고쳐야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 위해 일곱 교회에 보내진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매일 편지를 받고 있습니다. 편지가 끊긴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상고하며 QT생활을 통해 주님의 편지를 받는, 주님의 간섭을 당하는, 구원과 관계를 갖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3] 천국의 영광이신 그리스도(4~5장)

4:11에 보면 주님이 창조자 되시기 때문에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또 5:12에는 죽임을 당하는 예수, 즉 죄를 대속하신 주님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내 인생을 운영하시며, 내 죄를 대속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게도 그리스도는 창조자로, 내 죄를 대속해 주신 어린 양으로 나타나시어 내 입으로부터 감사와 찬양이 고백되어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나의 창조자이시오, 나의 죄 구속 자이신 그리스도는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라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멘 입니까?

 

[4] 심판자이신 그리스도(6~18장)

6~18장까지에서 세 단계의 재앙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일곱 인의 재앙, 일곱 나팔의 재앙, 일곱 대접의 재앙 이런 것들이 다 지나야 주님이 오시게 됨을 소개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4장과 거의 일치하여 주님오시기 전에 일어날 일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1) 자연계의 변화

(2) 복음의 세계적 전파

(3) 적 그리스도의 출현

(4) 마지막 전쟁이 주님오시기 전에 나타날 징조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세상이 파괴되되, 4분의1, 3분의1, 그 다음은 모두 파괴될 점차적인 멸망도 예고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 후에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실 것을 예고해주고 있는데, 우리에게 주님이 언제, 어떻게 오시며, 그 전에 어떤 징조들이 있을 것 인지의 지식을 넣어 주게 하기 위해 6~18장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준비하라는, 주님 영접할 자격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세마포 옷을 입으라고, 흰옷을 입으라고, 주 예수 믿고 죄 용서받고 정결한 처녀로서 신랑 맞을 수 있는 신부가 되라는 교훈입니다. 성서적 종말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성서적 종말관을 세상의 징조를 분석하는데 즉 계시록 몇 장, 몇 절과 연관 짖는 일에 몰두하지 말고 날마다 주님 오실 지 모른다는 종말관을 갖되, 들떠 있지 말고 차분하게 일상 생활을 충실히 하며 단 믿음에 깨어 있어 모두 재림 예수 영접하라는 교훈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19~22장)

21:5에 “다 이루었도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상에서도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셨는데, 21장에서도 “다 이루었다” 하십니다. 주님의 계획은 죄인된 인간이 속죄양 예수를 믿어 죄사함 얻고, 주님 오실 때 천년 왕국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19장에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의 Vision을 보여주시고, 20장에 천년 왕국을, 21~22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여 주시며 그 곳 새 예루살렘에 입성한 성도들을 보실 때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기까지 인류의 긴 역사가 주어진 것입니다. 창세기가 있었고, 에덴 동산도 있었고 노아 홍수도,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있었고, 홍해 바다도 있었고, 금송아지도 있었고, 제자가 스승을 은 30에 팔아 넘기는 배신도 있었고, 순교도, 뜨거운 성도의 사랑도 있었으며, 지진도, 전쟁도, 사이비교단의 집단 자살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인류의 역사를 다 진행시키신 후 최후에 얻게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된 순간이므로 수 천년간 애쓰신 주님께서 이젠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부족한 나를 위해 그 많은 세상 역사를 존재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이 다 이루셨다는 고백은 내가 새 예루살렘성에 입성한 사실이 전제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다 세 예루살렘성에 입성했으나 나 자신이 입성하지 못하고, 이를 갈고 울고 있다면 주님의 다 이루셨다는 완성의 환희는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새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한다는 강력한 호소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 1-22장까지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까?

 

주님이 계획이시오, 주님의 소망이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Vision을 갖고 세상에서 언제나 승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주님께서 이제 뜻을 다 이루었다고 안심의 숨을 내 쉴 수 있도록 승리의 삶으로 이끌어 달라는 것입니다. 오직 그 길은 길 되시고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철저한 간섭과 지도를 받아서 우리의 잘한 것을 칭찬과 격려 받고, 못한 것은 엄하게 책망 받아 깨어있고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라는 교훈입니다. 바로 오늘, 바로 지금 주님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요사이 주님과 어떻게 함께 하고 계십니까? 아니, 주님과 자주 못 만나고 계십니까? 날마다 QT생활을 통해 주님이 매일 주시는 말씀의 교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 교훈대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하루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이런 자기의 삶을 이웃과 나누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임을 믿고 실천하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