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미성숙에 대한 경고 – 히브리서 5:11-14

오늘의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를 받아 읽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 된 대제사장직이 주는 의미마저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진리에 대한 지혜와 지식이 없고 믿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나태한 신앙을 일깨워주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도 본문의 경고를 겸손하게 받아드려 믿음의 나이에 알 맞는 성장된 신앙을 갖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생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듣는 것에 둔한 신앙(11) [2]자라기를 거절한 신앙(12) [3]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13) [4]단단한 식물을 먹는 신앙(14)입니다.

 

[1]맨 먼저 11절의 듣는 것에 둔한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1절에보니 히브리서를 기록한 자가 히브리서를 받는 자들에게 쓰기를 멜기세댁에 대해 쓸말이 많지만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듣든 것이 둔하다는 말은 듣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또 듣는 일에 게을러서 별로 들으려 하지 않는 뜻도 되겠습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유대인들이 주님께서 수행하신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 수행하신 대제사장직 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배우려고 애쓰지 않으므로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매주 강해하고 있지만 히브리서 같은 말씀은 이 말씀에 큰 관심을 갖고 히브리서에 무슨 말이 써있는지 설교 듣기 전에 집에서 읽어보고 무슨 말인지 뜻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설교 시간을 통해 그 뜻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설교 시간에 듣고 이해된 말씀을 집에 가서 또 읽어보고 이 말씀을 내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묵상하므로 둔했던 귀, 들어도 전연 이해할 수 없었던 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방금 읽었던 말씀을 읽고 읽고 또 읽어야만 이해되는 곳이 있습니다. 말이 어려워서 여러 번 앍는 경우도 있고 읽기는 읽었지만 뜻을 이해하려고 집중하지 않고 읽기만 했거나 또는 아예 딴 생각을 하면서 읽었을 경우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진리의 말씀을 기어코 이해하겠다고 마음먹고 정신을 집중하여 읽고 들으며 묵상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면 둔했던 귀가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수신자들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에게 듣는 것이 둔해서 더 쓰기가 어렵다고 둔한 귀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12절의 자라기를 거절한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2절에서는 자라나지 못한 신앙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성도들이 믿은지 오래되었으므로 그들의 신앙이 신앙의 나이만큼 자라서 이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의 자리에 있어야 마땅함에도 아직도 진리의 초보에 해당하는 말씀을 남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니 이는 10살 20살 먹은 사람이 1살 짜리 아이와 같이 우유만 먹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육체적으로 건강할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건강이 유지 되도록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건강을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는 것도 재대로 먹지 않고 잠자는 것도 제대로 자지 않고 물론 운동도 하지 않은 다고 한다면 이런 자를 두고 건강을 포기한 자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나이가 많아진 만큼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단계 한 단계 성실하게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고, 열심히 듣고 반면에 개인적으로 또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말씀을 읽고 명상하며 그 말씀을 내 생활에 적용하려고 일상 생활에서 최선을 다하므로 나이 값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책가방만 들고 학교에 왔다갔다하면 성적이 올라갈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어떤 학생은 학교 가는 것마저 게을리 하여 학교에 자꾸 빠지는 학생은 실력이 향상될 수 없을 것은 너무나도 뻔한 사실입니다. 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석하며 또 집에서 개인적으로 열심히 해야 만이 성적다운 성적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적으로 예배드리는 일에 열심하고 또 개인적으로 신앙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신앙이 성장하기를 거절한 사람이 되고 말아 아무리 신앙의 나이를 먹어도 신앙의 높은 수준에 들어가지 못하고 늘 초등학고 일학년에서만 10년이고 20년이고 머물러 있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신앙의 나이에 비례해서 신앙이 자랐는지 스스로의 믿음의 실력을 자로 재보아야 합니다. 10년 20년 지난 신앙 나이라면 당연히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라지 못했다면 자라도록 달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3]세 번째로 13절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3절에서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이므로 의의 말씀을 경험해보지 못한 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신앙이 초등학고 일학년에만 머물러 있는 자는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자연히 말씀에 따라 사는 체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는 책망인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기를 시작할 때에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깊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면서까지 사랑을 나태내신 큰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교회 나와 주는 것으로 또 십일조를 꼬박꼬박 내주는 것으로 잘 믿는 신앙이겠지 하며 신앙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차차 신앙 연수가 더해가고 신앙 학년이 올라가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내 개인에게 연관시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범사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게 되고 또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그 말씀에 큰 감동을 받게 되어 믿는 자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벅찬 가슴을 안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0년이 되었거나 20년이 되었어도 아직 젖밖에 먹지 못하고 단단한 음식이라곤 입에 댈 수 없는 신앙이라면 그런 깊은 감동을 전연 경험하지 못하고 믿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은 시험에도 쉽게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이 자라게 하여 하나님의 섬세한 계획과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이 내 생활에 적용하는 신앙에 이르도록 하라는 충고입니다.

 

[4]마지막으로 14절의 단단한 식물을 먹는 신앙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에서 자라나지 못한 신앙 즉 젖만 먹는 신앙에 대해 책망한 본서 기록자는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신앙을 갖은 자들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장성한 신앙을 가진 자는 어떤 깊이의 말씀도 받아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 동안 받아먹고 소화하여 생활에 적용했던 경험과 지혜를 사용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어렵지 않게 판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야 옳은지 어디를 가지 말아야 옳은지, 무엇을 해야 옳은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옳은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되며,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성경 말씀을 사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온 산 경험을 통해 날마다 접하는 새로운 사건을 두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마귀가 어떤 길로 유인하려 한다해도 그 길이 나쁜 길인지를 쉽게 구분할 줄 하는 분별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믿어온 신앙 나이에 따라 믿음이 성장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교훈입니다. 신앙이란 하루아침에 다 자라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말씀도 점점 더 깊게 이해하게 되고 또 그 말씀들을 내 생활에 적용하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계속 젖을 먹는 정도의 신앙에 머물러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신앙에 병이 들어 있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어도 늘 한 정도의 크기로만 있다면 병든 것이라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장이 중지되어 있지 않도록 성장 호르몬을 계속 공급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성장 호르몬에 해당될 까요? 첫째는 기본적인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일 예배에 기쁨으로 참석하고 기쁨으로 찬양하며 헌금을 드리고 교회에서 기쁨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추가적인 신앙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주일 예배 만으로는 부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수요일 모임에도 참석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개인적으로 말씀을 읽고 그 읽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도록 애쓰며, 정해 놓고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학생들이 학교 수업 이외에 과외 수업을 받거나 또는 집에서 예습 복습을 하듯 개인적인 신앙을 위해 과외 활동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주일에 얻어먹은 영양만으로는 신앙이 성장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특별한 결단아래 신앙을 보충해 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지금 가지고 있는 신앙마저도 다 빠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까지도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을 기초하여 더 큰 믿음을 위해 애쓰므로 믿음이 점점 성장하게 될 것이며 믿음이 없는 자는 믿음에 대한 열망이 없어서 있는 믿음까지도 다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들은 우리 모두는 자신의 믿음에 청진기를 대고 진단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잘 성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성장이 중지되어 있는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계속해서 잘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이 되면 그 믿음에 만족하시지 말고 계속 더 높은 곳을 향해 꾸준히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혹시 믿음의 성장이 멈춘 것으로 진단이 나왔다면 언제부터 성장이 멈추었는지 무슨 이유로 성장이 멈추었는지 조사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장 영양제를 계속하여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가 우리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자기 신앙을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서 남을 가르치는 자리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시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믿음의 성장에 따른 큰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큰복을 다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