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태어나셨다가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신지 3일만에 부활하셨다가 40일만에 승천하신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하시려 다시 오시게 될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재림 그 하나 하나가 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런 중요한 제목들의 의미를 우리들에게 보다 깊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야만 했으며 왜 십자가를 지셨으며 그가 승천하시어 무엇을 하고 계시며 재림하시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아주 귀중한 말씀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천이 다 들어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면 기독교의 원리를 바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핵심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진리를 바로 깨달아 재림의 주님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깨닫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23-26) [2]주님의 재림(27-28)입니다.
[1]먼저 23절부터 26절까지의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 땅에 내려 오셨는지 누가 물으면 어떻게 답을 하면 정답이 될까요? 23절부터 26절까지에서는 이 질문에 정답을 잘 정리해 준 말씀입니다. 23절부터 26절까지에서는 앞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옛 언약에서의 동물의 피로 드린 제사와 새 언약에서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린 제사를 잘 비교해주므로 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는지 내려오시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의 피로 드린 제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린 제사를 구별해주기 위해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하늘에 있는 것들, 이런 것들과 더 좋은 제물, 또 손으로 만든 성소와 참 하늘, 그리고 해마다 드린 제사와 단번에 드린 제사라는 말로 구별해 주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모세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모형과 실체 또는 그림자와 실체라는 말로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는 동물의 제사를 드렸는데 이런 동물 제사는 하나의 모형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희생양의 되신 것은 실체라는 것이며, 대 제사장이 사람이 지은 성소에 들어간 것은 그림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실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 제사장이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 동물의 피로 제사를 드린 것은 그림자요 주님께서 스스로 단번에 십자가를 지신 것은 실체라는 것입니다.
옛 언약에서는 사람의 몸이나 집안 또는 어떤 물건이 더렵힘을 받았을 경우에는 동물의 피나 또는 동물을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뿌려 줌으로 정결하게 되었다고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정결은 일시적이요 부분적이며 외적인 정결이었던 것입니다. 23절에서는 이런 정결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므로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그런 제물가지고는 안되고 더 좋은 제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제물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이 더 좋은 제물은 참 것의 그림자인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소에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고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다고 구별해주고 있습니다. 24절은 더 좋은 성소가 무엇이며 주님께서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대 제사장들은 일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서 속죄의 중보자가 되어주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어 언제나 우리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타나실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이 제사 드린 하늘의 성소는 참 성소이며 더 좋은 성소가 되는 것이며 부활 승천하신 이유가 바로 하나님 곁에 바로 앉아서 우리들을 위해 간구해 주시기 위해 승천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25, 26절에서는 해마다 드려진 제사와 단번에 드려진 제사를 구별해 주면서 주님께서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대 제사장은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는 일을 해야 하므로 불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기의 몸을 단번에 드려 제사하므로 불완전한 사함을 온전한 사함으로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단번에 드려 만민의 죄를 온전히 사하시기 위해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고 과거형으로 써있는데 주님께서 처음에 베들레헴에 오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목적이 단번에 몸을 드리심으로 만민의 죄를 없이하시려 오셨다는 것입니다.
[2]다음은 27절부터 28절까지의 주님의 재림(27-28)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7절에 보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수명에 한계가 있어서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더러는 일찍 죽고 더러는 장수하여 100세를 넘기기도 할뿐입니다. 오래 사는 것에도 관심을 모으고 오래 살려고 건강을 보살펴야 하겠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죽은 후의 심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심판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행해질 것입니다. 28절에서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되는 이유에 대해 써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단번에 자기 몸을 드리신 주님께서 주님을 믿고 재림하실 주님을 바라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시려고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신다는 말은 첫 번째 나타나심과 비교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죄와 상관되어 오셨고 두 번째 오시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믿음과 소망의 성도들에게 영원한 구원으로 보상하시려고 오시기 때문에 죄와 상관없이 오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사랑에 어울리는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은 주님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존재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시어 말구유에 태어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으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어 언제이고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 중보자로서 우리들을 위해 간구해 주시고 계시며 이제 때가 차면 주의 재림을 바라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삶을 허락하시려고 다시 오실 것이라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즉 절대적인 사랑을 나타내셨으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사랑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처음부터 인간들을 높이시기 위하여 자기를 낮추신 사랑이요, 또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이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늘에 오르심도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계속 보호하시고 우리들을 위해 중재자가 되시기 위해 하나님 바로 곁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때가 차면 믿음을 지키느라 모든 고난을 잘 참아 낸 성도들에게 상을 주고 영원히 사는 나라에 들어오도록 하시기 위해 다시 오신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실 때에 어떤 환경이나 어떤 형편을 핑계대시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위해 절대적인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우리들의 삶 자체를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한 삶이란 주님을 닮은 삶을 말하는 것으로 희생의 삶이요 진리를 위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주님 오셔서 우리들에게 상을 주실 때에 상을 받아 마땅할 삶을 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김 대중 대통령께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되니 외국 사람들은 그가 상을 받아 마땅하다고들한 것을 듣게 됩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마땅치 않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내리실 심판은 조금도 오차가 있을 수 없습니다. 꼭 상을 받을 사람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고 벌을 줄 사람에게는 벌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생은 운동경기의 운동장에 해당됩니다. 일평생의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우리들의 운동장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상을 주시던지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들의 형편과 사정에 맞추어 신앙 생활을 한자는 하나님께서 그 형편과 사정에 맞는 상벌을 내리실 것이고 내 형편과 사정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에 맞게 살려고 최선을 다한 자에게는 최선을 다한 것에 맞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모두는 현실의 내 형편에 따라 믿어나가지 말고 주님께서 베푸시고 앞으로도 베푸실 사랑에 맞추어 신앙 생활해 나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일 오신다는 연락을 오늘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맞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신랑을 맞을 열 처녀의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았다는 비유를 해주셨는데 우리 모두는 신랑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신랑을 맞을 수 있는 준비된 신부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등잔에 기름을 미쳐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신부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뿌린 모든 씨앗의 열매를 다 거두게 될 것이며 주님 섬기는데 등한한 모든 씨앗의 열매도 다 가두게 될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을 상의 기준은 어떤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믿고 순종했는지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재림시에 상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 다 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