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정의와 아벨, 에녹의 믿음 – 히브리서 11:1-6

히브리서의 전체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해도 믿음 장으로 알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고 있어 친근감이 들것입니다. 성경 퀴즈를 할 때에 성경 육십 육 권 중 믿음 장이 어떤 것이냐고 하면 히브리서 11장이라고 대답을 하면 정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히브리서를 시작하면서부터 새 언약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어떤 누구보다도 더 우월하시며 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대제사장 직은 모세 율법의 어떤 대 제사장 직 보다도 우월하심을 증거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 기록되어져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십자가상에서의 대제사장 직 수행은 만 인류의 죄를 온전히 대속하신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10장까지에서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서 증거 해주었고 11장부터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능력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큰 능력을 행하시어 동물의 제사로는 씻어 낼 수 없는 인류의 죄를 그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온전히 씻으신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지만 이런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믿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능력자가 되어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동물의 피를 통해 일시적으로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준 제사나 십자가상에서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가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믿음 장에 기록된 많은 선진들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 모두도 우리들의 좋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믿음의 정의(1) [2]믿음의 결과(2-3) [3]믿음의 사람 아벨과 에녹(4-6)입니다.

 

[1]먼저 1절의 믿음의 정의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에서는 믿음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를 믿음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바라는 것의 실상이란 믿음이 소원하고 있는 것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즉 지금 믿고 있다면 그 믿고 있는 것은 장차 꼭 얻어질 것이므로 지금 당장 손에 쥔 것이나 똑같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소망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을 한다면 믿음이 없으면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이 세상이나 사람을 믿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약속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또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터인데 이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은 장래 일에 대해 믿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 같이 확신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 8:56 에 보면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아브라함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사역을 행하실 일을 믿고 그 때를 보고자하였는데 보고 기뻐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약 1900년전 사람이었는데 1900년 후에 행하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고 그 사역을 보고자 했는데 보고 기뻐했다는 말이니 아브라함의 믿음은 믿었고 소망했고 그 소망을 이뤘다는 말이니 그의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가 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2절, 3절의 믿음의 결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절에 보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4절부터는 수많은 구약의 믿음이 좋은 인물들이 소개되는데 성경에 기록된 그런 인물들이 자신들이 가졌던 믿음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것은 오직 믿음이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3절에서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믿음을 통해 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믿는 믿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창세기의 기록을 믿는 믿음이 되겠습니다. 세상 인구의 절반이 혹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창조를 믿지 않고 이미 있었던 어떤 미생물이 진화하여 되어졌다고 하나님의 창조설을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믿음이 있는 자는 성경의 기록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고 믿는 것입니다.

 

3절 마지막 부분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는 말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의 피조물들이 이미 세상에 있었던 그 무엇에 의해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진화론 같은 설을 부정하는 말입니다. 요사이 창조 과학회라는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또 고고학적으로 증거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믿음에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창조가 과학적으로 또는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되었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믿는 믿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구약의 선진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도마라는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듣고 의심했었으며 자기 손으로 못 자국을 직접 만져보아야 믿겠다는 야무진 말을 하고 만져본 다음에야 부활의 사실을 믿었던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성경에 예언하셨고 또 부활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면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그대로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3]세 번째로 4절부터 6절까지의 믿음의 사람 아벨과 에녹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부터 32절까지에서는 수많은 구약의 인물들 중 믿음을 지킨 자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오늘은 그 중 믿음을 지킨 아벨과 에녹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2절에서 선진들이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고 했는데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아벨과 에녹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에서 아벨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아벨을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인정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가 죽었지만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더 나은 제를 드리는 길은 믿음이라고 했으며 또 의로와 지는 길도 바로 믿음을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 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온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벨의 제사는 받아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아주시지 않았던 이유를 성경은 자세하게 기록해주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은 우리들이 알 수는 없지만 믿음으로 드렸던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드렸던 제사였음이 틀림없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믿음에 따라 드린 예배는 더 나은 예배가 될 수 없으며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벨은 비록 육적으로는 죽었으나 그의 믿음 때문에 성경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오늘도 우리들에게 믿음에 대해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죽어도 영원히 살아 있게 한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5절에서는 애녹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그의 믿음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고 했으며 그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란 인정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 믿음을 가졌다니 에녹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 믿음이 인정되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오직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 했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는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핍박이 심하여 어떤 이는 순교 당하고 또 많은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런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꾸준히 신앙 생활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상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하며 이런 믿음을 가진 자는 상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바른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바른 믿음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성경 말씀에 준한 믿음입니다. 우리들이 믿고 행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자기 중심적인 믿음은 가인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께 받으시지 않은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며 찬양이며 헌금이며 모두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교회 생활과 신앙 습관에서 사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 둔 모든 믿음과 실행을 추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믿음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봉사를 하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가 서 있는 단상에는 주님을 세워야지 그 자리를 사람이 서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사람 말을 전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했는데 우리들이 가질 믿음은 또한 성경에서 약속하신 바른 소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통해 주시고자 하는 것은 이 세상의 부귀 영화가 아니고 주님 재림시에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임에도 현대 교회가 교인을 끌어 모으기 위해 기독교를 하늘의 복을 주는 곳에서 이 세상의 복을 주는 곳으로 끌어 내렸다면 잘못된 믿음과 잘못된 소망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은 사실이나 그가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준비하신 상은 이 세상의 어떤 복이 아니라 그런 복에 비교할 수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복인 것입니다. 세상의 복은 작은 복이요, 하늘의 복은 아주 큰복임을 믿어야 합니다. 돈 있는 자가 복이 있는 자란 말씀이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얻은 바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며 그런 자들이 믿고 소망한 것은 지금 손에 쥔 것과 똑 같이 보장이 된 것입니다. 바랄 것을 바라고 믿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고 바라야 하지만 성경 말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약속과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말씀에 따른 바른 믿음, 말씀에 따른 바른 약속과 소망을 갖고 다 이루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