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야곱, 요셉, 모세의 믿음 – 히브리서 11:20-29

히브리서 기록자는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 주일에도 구약의 인물 중 믿음이 좋았던 모범 된 인물들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우리들에게 그들의 좋은 믿음을 본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되는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과 모세의 믿음을 통해 좋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소망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확실하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 마음으로 받고 그 복된 믿음과 소망을 삶의 목표로 삼아 믿음의 선조들이 살게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살아나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생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삭과 야곱의 믿음(20-21) [2]요셉의 믿음(22) [3]모세의 믿음(23-29)입니다.

 

[1]맨 먼저 20절부터 21절까지의 이삭과 야곱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0절과 21절에서는 이삭과 야곱이 자기 자녀들에게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축복한 사실을 들면서 그들을 믿음이 좋은 분들의 대열에 올려놓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창 26:2-5 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약속하신 내용을 이삭에게도 나타나셔서 똑같은 약속을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삭에게 주신 약속의 내용을 보면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에 거하면 하나님께서 이삭과 함께 계셔서 이삭에게 복을 주고 그 땅을 이삭과 자손에게 줄 것이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이삭의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천하 만민이 이삭의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설명을 붙이자면 이삭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어 애굽에라도 가려고 마음먹고 있는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시기를 흉년이 들었다고 애굽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가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땅이 바로 아브라함에게도 지시하셨던 가나안 땅인 것입니다. 그 땅에 가서 살면 그 모든 땅을 이삭과 그 자손에게 줄 것이며 아브라함게게 약속했던 대로 자손도 크게 번성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손 중에서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삭과 자손에게 주시기로 한 땅은 이삭에게 약속하신 때부터 약 400년 후에 이삭의 후손들에게 정복되어 분배되었던 것입니다. 또 천하 만민에게 복을 주시기로 된 약속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할 때부터 약 1800년 후에 오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약속하신 것들은 이삭 때에 이루지는 것들이 아니고 먼 훗날에 이뤄지게 될 일들로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의 눈으로 볼 수만 있는 실체요 실상이었던 것입니다.

 

창 27:27-29에 보면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믿고 자기가 죽을 즈음에 야곱에게 축복을 할 때에 먼 훗날에 이뤄질 일을 소망하며 기름진 약속의 가나안 땅에 관한 것과 이삭의 후손들이 주변 국가들을 통치하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 재림시에 예수님께서 만국을 통치하실 것에 대해 축복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야곱도 자기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야곱도 믿고 이삭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임종시에 자기 손자들에게 축복했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는 22절의 요셉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2절의 내용은 창 50:24,25 의 내용으로 요셉은 애굽의 총리를 지낼 때에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애굽으로 모두 이민을 해오도록 애굽에서 다 함께 살다가 그가 죽을 때에 그가 한 유언을 소개하면서 그를 믿음 있는 자의 대열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그가 임종시에 한 말을 보면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또 맹세시켜 너희는 이 곳에서 내 해골을 매고 올라가겠다 하라” 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요셉이 비록 애굽에서 총리를 지내고 그의 모든 가족을 애굽에 이민을 시켜 좋은 지역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그 애굽 땅이 자기의 본향으로 생각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증조 할아버지이신 아브라함과 할아버지이신 이삭과 아버지 야곱에게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 땅을 주시고 큰복을 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애굽에 사는 자기 가족들이 다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가게 될 것을 믿었기 때문에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그 때에 자기의 해골을 가지고 가서 그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인 것입니다. 그의 믿음이란 그의 선조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약속을 그도 역시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다른 나라에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 땅을 자기의 본향으로 생각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을 자기의 본향으로 생각하며 그 소망을 잃지 않았던 믿음을 높이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그 때로부터 약 240년 후에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3절부터 29절까지의 모세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모세의 부모의 믿음도 칭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모세가 났을 때에 용모를 보고 모세가 특출한 아이임을 직감하고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세를 석 달 동안 숨겨 키운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이 앞으로 하실 사역을 알고 사람 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모세의 믿음의 뿌리가 바로 모세의 부모에게 있었음을 암시하면서 모세의 좋은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가 들고 있는 모세의 믿음은 첫째,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이나 많은 보화와 큰 재물 그리고 궁중에서 누릴 수 있는 일시적인 쾌락을 버린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그는 애굽에서 종노릇하느라 갖은 고난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피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고난받는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 내려면 많은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 받는 것을 일시적인 세상에서 누릴 모든 영광보다 더 귀하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은 그는 주님 재림시에 주님의 일꾼들에게 상주실 것을 소망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해 애굽인을 죽였던 사건이나 왕궁을 떠났던 사건 모두가 임금의 노여움을 살 일었으나 모세는 임금의 노여움을 개의치 않고 궁중을 떠날 수 있었고 또 40년 동안의 어려운 광야 생활을 잘 참아 낼 수 있었던 것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동행을 보았으며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 자기를 통해 출애굽시킬 구원의 계획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 두 번째 소개된 모세의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지방에 양의 피를 바르게 하므로 장자들을 죽이는 자로 장자들을 건드리지 않게 했던 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다면 유월절의 피 뿌리는 예를 행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소개된 모세의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했던 모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를 향해 지팡이를 들고 손을 내 밀도록 하면 바다가 둘로 갈라질 것이고 갈라지면 육지 같이 건너가도록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셨는데 모세가 그대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홍해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했던 모세의 믿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던 애굽 군사는 바다에 다 죽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고 있습니까?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가 가졌던 같은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믿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이지 않은 나라에 대해 믿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일에 소망을 둔 믿음이었습니다. 당장 자기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이뤄지지 않는 다해도 언젠가는 이뤄질 것으로 믿고 소망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야곱이나 요셉과 같이 이 세상에서 부귀 영화를 누린다해도 그 땅이 자기들의 종착지가 아니고 자기들의 종착역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나라였던 거와 같이 우리들의 삶의 목표는 이 땅의 어떤 복락이 아니고 주님 재림시에 펼쳐질 화려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요사이 기독교를 변질시켜 잘 믿으면 이 세상에서 세상적으로 번성할 수 있다고 가르침으로 예수 믿고 천국에 가고 또 이 세상에서도 번영을 누려보겠다고 믿어나가는 교인들이 많지만 그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의 가르침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번도 믿음이 좋으면 세상적으로 번영을 누리게 될 것임으로 잘 믿으라고 하신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잘 믿으면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순교 당하고 핍박받았던 사실들을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 끝이 가까웠으므로 있는 재산을 가난한 자와 나누라는 교훈이므로 예수 잘 믿는 교인이 큰 재산 누리며 살 수 가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부자가 없어서 부담 없이 말을 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 극단적인 말을 한다면 큰 부귀 영화를 누리는 것은 잘 믿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못 믿는 믿음 때문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는 아무 것도 가지신 것이 없었습니다. 재산도 생명도 다 버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보상으로 지금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신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얻은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상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 세상의 부귀 영화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택했던 거와 같이 우리들도 장래에 주님 오실 때에 받게될 큰상을 받기 위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버려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의 부귀 영화와 주님께서 주실 부귀 영화를 동시에 누리는 길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양손에 떡을 쥘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속이는 자의 속임수 넘어가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장래에 누릴 큰 영광을 희생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모두 좋은 믿음을 가져 장래 나타날 큰 영광을 다 차지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