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언약과 새 언약 – 히브리서 12:18-24

새해 첫 주일을 맞았습니다. 새해에 각 가정마다 각 개인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은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히브리서를 통해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는데 방금 봉독한 오늘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길인 옛 언약의 길과 새 언약의 길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가 히브리서의 맨 처음부터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대조하며 새 언약이 옛 언약보다 훨씬 우월함을 소개해 주었지만 우리들이 평소에 구약과 신약을 잘 구분하여 받아드리지 못하고 그저 둘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받아왔기 때문에 아직도 신구약의 구분이 확연치 못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통해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새 언약이 옛 언약에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우리들에게 아주 좋은 언약임을 깨닫고 이 새 언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말씀과 그 말씀에 담긴 뜻을 바로 이해하고 이 말씀에 순종해 나가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두 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옛 언약의 길(18-21) [2]새 언약의 길(22-24)입니다.

 

[1]먼저 18절부터 21절까지의 옛 언약의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옛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 그리고 새 언약에서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계에 대해 비교하면서 새 언약의 우월성을 잘 비교해 주고 있습니다. 18절부터 21절까지에서는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의 주변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를 우리들에게 쉽게 이해시켜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의 환경에 대해 출애굽기 19장 10절부터 25절까지에 자세히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백성들로 하여금 2일 동안 자신을 성결케 하고 제 3일 째를 기다리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제 3일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어 백성들에게 전달할 말씀을 모세를 통해 주시겠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시내산은 거룩한 곳이므로 백성들이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사방으로 경계선을 긋고 그 선을 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만일 그 선을 넘어 들어오면 들어 온 자가 사람이든지 아니면 짐승이든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명했던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출애굽기 19장 16, 18절과 출애굽기 20장 18, 19절의 인용인데 출 19장 16절을 보면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라 했으며 출 20장 18, 19절을 보면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라 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 출애굽기의 기록을 인용하여 율법의 특성과 율법아래에서의 하나님과 백성들과의 관계를 지적하면서 새 언약과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옛 언약에서의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 즉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시내산으로 손으로 만질만한 곳이었습니다. 물질적인 장소였으며 백성들은 산기슭에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뵈올 수가 없었으며 또한 가까이 가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 빽빽한 구름과 연기가 가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직접 보거나 잘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뢰와 번개와 큰 나팔 소리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두렵고 떨려서 당장 죽을 것만 같아서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어 말씀하신 것을 원치 않고 모세더러 말하게 해 달라고 두려움을 가지고 요청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21절을 보면 백성들뿐 아니라 모세까지도 두렵고 떨린다고 했으나 성경 다른 곳에 이런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율법의 두려움을 강조하느라 이렇게 기록한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히브리서를 받아 읽을 수신자들의 믿음이 갖은 고난으로 인하여 율법으로 되돌아가려고 흔들리고 있을 때에 율법의 특성과 약점을 들어내어 배교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22절과 24절의 새 언약의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의 분위기와 판이하게 구별된 시온성에서의 하나님과의 만남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옛 언약에서의 시내산과 대조하여 새 언약에서의 산은 시온성이라 했습니다. 또 시온성과 같은 뜻이지만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그리고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에서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적인 어떤 산이나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지만 새 언약에서는 그런 물질적인 건물에나 장소에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고 언제, 어디에든지 나타나시게 되는 데 이 나타나신 곳을 상징적으로 시온성,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한 것입니다. 즉 신약시대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야 한다거나 시내 산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믿고 찾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므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는 곳이 바로 시온성이요, 하나님의 도성이요 하늘의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시내산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산기슭 멀리 떨어져서 모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 뵈었던 하나님을 새 언약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가까이에서 만나 뵐 수 있으니 옛 언약보다 새 언약이 더 좋다는 것을 쉽게 구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또 모세가 율법을 받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전달할 때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나므로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율법을 전달했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옛 언약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수건이나 구름과 연기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까이 서서 직접 뵈올 수 없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기 어려웠지만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고 우리와 늘 가까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얼굴과 얼굴을 대하면서 만나 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옛 언약아래에서는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로 인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만나 뵈었고 자신들의 죄가 들어 나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만나뵈었지만 새 언약 아래에서는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었으므로 자녀가 부모를 만나듯 두려움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 뵐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즉 새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 인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것이어서 시온성에 들어 있는 사람은 비록 땅에 살고 있지만 그가 가진 믿음에 의해 이미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 입성을 축하하고 환영하기 위해 스탠드에 앉아 있는 천군 천사들과, 믿고 구원받은 영들을 믿음으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아벨은 죄 없이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아벨의 피가 형을 저주하기에 이르렀지만 죄 없이 돌아가신 예수님의 피는 만민의 죄를 씻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피로 인해 시온성에 들어갈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시내산의 믿음과 시온산의 믿음을 바로 구별하고 시온산의 믿음이 주는 특혜를 누리면서 살라는 교훈입니다. 시내산의 믿음은 무엇이며 시온산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시내산의 믿음은 동물의 피를 믿는 믿음이며 동물의 피로는 마음의 죄를 온전히 용서받을 수 없는 믿음이어서 늘 죄인으로서 살아야 하는 믿음이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던 답답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도 죽었던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온산의 믿음은 독생자 예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그의 피로 인해 죄를 통회하는 마음의 죄를 용서받는 믿음이며 누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을 만나되 언제 어디서나 만나 뵈올 수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또 그 믿음을 통해 비록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하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시온성의 믿음의 가치를 모르고 한사코 시온성의 믿음을 시내산의 믿음과 혼합하려는 그런 믿음에 미혹되어서는 안됩니다. 즉 구약적인 믿음, 율법적인 믿음의 그림자로 되돌아가려는 그런 믿음은 새언약의 믿음인 시온산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믿음인 것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미 율법이 폐했음에도 성직이 따로 있어서 성직자라고 특별한 옷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바로 시온성의 믿음을 시내산의 믿음으로 되돌리려는 믿음이며, 예배시에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자가 따로 있는 것이나 율법적으로 십일조를 강요한 것은 역시 시내산의 믿음으로 되돌아가는 믿음인 것입니다. 시내산의 믿음은 종이 두려움으로 주인을 섬기는 믿음이요 자비가 없는 믿음이며, 시온성의 믿음은 자녀가 아버지를 섬기는 믿음이요 자비가 은혜가 충만한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시온성의 믿음을 바로 깨달아 이 땅에 살면서도 하늘나라의 삶을 맛볼 수 있으며 또 주님 재림시에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천국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만져볼 수 없는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시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