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시험을 이기는 길 – 야고보서 1:5-11

우리들은 어떤 사람을 두고 믿음이 대단하다 고 감탄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을까요? 성경을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그럴 것이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두고도 그럴 것이며 교회 일이라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봉사하거나 자신의 재물을 아끼지 않고 교회 일을 위해 바치는 자를 두고도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구약의 믿음의 용사들의 믿음을 소개받은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겼던 자들이었습니다. 믿었고 믿었기 때문에 행했던 자들이었으므로 믿음이 좋은 자들로서 성경에 기록하여 우리들에게 소개된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지난주에 소개해 드린 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확실하게 표현하면서 성도들의 믿음에 따라야할 행함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각자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표현한 대로 몸으로 실천하여야 참 믿음이요 몸으로 실천할 수 없는 믿음이나 경건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강조되었지만 사도 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강조한 바 있는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라는 그 ‘율법의 행위’와 야고보서에서 강조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그 ‘행함’과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은 바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가 행한 어떤 선한 행동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이 사실입니다. 율법에서 요구한 것을 지켜 행한 그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말은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 것을 몸으로 실천한 행함이 뒤따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왜? 믿고 세례 라고 하는 행위를 강조하느냐고 대드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한인 교회 성도들은 행위와 행함을 바로 구별하는 바른 신앙을 갖는 성도님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어떤 선한 행동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고 공로는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믿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고 구원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의롭게 하고 우리를 구원케 하는 그 믿음이란 말로만 믿는 체하는 믿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한 행함이 따른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다면 마음으로 만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있는 바를 몸으로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는 다면 세례도 받아야 하고 예배도 드려야 하며 예배당에서 예배도 경건하게 드리고 사회에 나가 성도로서 마땅한 이웃을 사랑하는 행함이 따라야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이지 믿음만 가지고 있는 자를 두고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전체를 통해 이런 점에 초점을 두고 교훈이 계속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시험과 시련을 이기는 길에 대한 교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5-8) [2]자기 처한 환경에서 기뻐하라(9-11)입니다.

 

[1]먼저 5절부터 8절까지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주의 말씀인 1절부터 4절에서는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좋은 일을 만났다면 기쁘게 여기라는 교훈을 받지 않아도 기뻐할 줄 알지만 어려운 시험을 당했을 때 기뻐하라고 했으니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런 시련을 잘 참아 견디어 낸 뒤에 과거를 돌아보면 그 시련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므로 먼 훗날을 내다보는 믿음을 가진 자라면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을 때 기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믿는 자들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거나 어떤 일을 당했을 때에 그 일을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5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이미 배운 자들이거나 교회에서 성경을 많이 배워 많은 지식을 가진 자라도 그 지식을 적용할 지혜가 부족하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생활에 전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지식이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이 바로 이런 지혜인 것입니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혜는 아는 것을 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기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구할 때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는 자에게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구하라고 했습니다. 의심하고 구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 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식이 있고 믿음이 있는 자들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 일을 잘 대처해 나갈 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꾸준히 기도하라는 권면입니다.

 

[2]두 번째는 9절부터 11절까지의 자기 처한 환경에서 기뻐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낮은 형제란 경제적으로 생활 환경이 곤란하거나 신체적으로 부자유한 자를 말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리고 부한 자들이란 그와 반대로 경제적으로 넉넉한 자들이거나 건강하고 생활환경이 좋은 자들이라고 풀이됩니다. 본문에서는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놓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음을 자랑하라고 했는데 즉 생활 여건이 나쁜 시련을 당하던지 반대로 생활 여건이 퍽 좋은 시련을 당했을 때에 그 시련을 잘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 잘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생활 환경이 좋은 것을 두고 제가 시련이라고 표현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가난보다도 부가 오히려 믿는 자들에게 큰 시험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명예를 갖다 보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등한히 하여 믿음이 식거나 누가 그런 것을 자기에게 주었는지 생각하지 못하고 교만해져서 낮은 자들을 깔보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는 가난보다 오히려 큰 시험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낮은 자들이나 높은 자들 둘 다 시험을 당하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두 계층의 사람들에게 본문에서 권면하기를 낮은 자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높은 자는 자기의 낮음을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어렵다고 실망하고 낙담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어 있을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무식하고 형편이 퍽 어렵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부족한 자에게 은혜를 입히시어 왕 같은 제사장이 되게 하시며 하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그 가치관을 바로 깨닫고 머지 않아 세상의 그 어떤 부귀 영화를 누린 자도 맛보지 못한 화려한 생활환경과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에서 주님과 함께 평화롭게 지낼 것을 소망하면서 자기의 그렇게 높아진 신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 환경이 퍽 좋은 자들은 이런 좋은 환경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심히 일시적이어서 풀의 꽃과 같이 곧 시들 것이므로 자기의 있는 것에 지나치게 마음을 두지 말고 있는 것을 없는 자와 나누고 가진 것이 없는 자 같이 겸손하여 이 세상에서 가진 재미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사는 자가 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건강한 자의 건강도, 장수한 자의 장수도, 가진 자의 물질과 명예와 권세의 무상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두셀라가 969 세를 살다 죽었고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대명사 솔로몬도 죽었으니 세상에 속한 것은 다 무상함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낮은 자나 높은 자나 세상 것에 가치를 두지 말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이 지식을 생활에 적용해 나가는 지혜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에 가치를 두고 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에 주신 교훈은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학교를 통해 세상 지식도 배웠으며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도 배웠습니다. 지식으로만 끝나는 것이라면 이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교육에 대한 열심히 대단하여 교육 수준으로는 높아 있고 교회적으로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있으며 기독교 열기가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밝은 사회와 문명의 나라여야 함에도 사실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어두움을 맛보며 쓴맛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교회에서 배운 지식을 생활에 적용하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교회에서 배우고 자기 스스로 읽어서 아는 성경지식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말씀이 적용되지 않고 자기의 욕심과 자기의 생각에 따라 일을 처리하므로 모든 일을 그르치게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에 개인이 가진 재산을 교회에 내 놓고 성도들의 부족을 채웠던 지혜를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교회 재산을 목사나 교회 지도자가 가로채는 실수를 하지 않나, 교회 직분을 돈을 주고 사고 팔거나, 목사직을 기업에서 하듯 자기 자녀에게 세습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남이 저지를 그런 실수를 두고 평하는 것을 재미로 여길 것이 아니라 크고 적은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매사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처리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즉 성경 말씀을 배운 대로 실천하는 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돈을 많이 주실 때에도 그 돈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며, 돈이 없고 매우 환경이 어려워도 이 어려운 환경을 비굴하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문으로 알고 잘 대처해 나갈 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헐뜯고 비난해도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어 이 고난을 잘 견디어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또 누가 나를 높이어 주어도 이런 때에 내가 교만하지 않고 잘 대처해 나가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믿음으로 구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으니 믿고 구하셔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일마다 지혜를 간구하는 자 되어 어떤 형편에서도 성경 지식이 생활에 적용되어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삶이 일평생 이어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