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와 과부에 대한 관리 – 디모데전서 5:1-16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전도하고 있는 전도자 디모데가 성공적인 사역을 해내도록 철저한 지도를 해주고 있습니다. 디모데 전서 5장에서는 나이 젊은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 내에서 대인 관계를 성숙하게 잘 해 내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중 오늘의 본문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와 과부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지를 소개받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물론 전도자 디모데에게 전도자로서의 성공적인 바른 사역을 위한 대인 관계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지만 전도자 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위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평행으로는 교인들과의 바른 대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필요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를 잘 못 갖는 경우가 있어서 오늘의 본문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은 마땅히 눈에 보이는 형제들과도 올바른 처신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늘 유지함과 동시에 성도들간의 대인 관계에서도 늘 바른 관계를 유지함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다양한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1-2) [2]과부에 대한 관리(3-16)입니다.

 

[1]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디모데가 이 편지를 받을 때가 나이 20 세 직전 아니면 직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 젊은 나이에 에베소 교회 전도자로 일했던 디모데가 얼마나 훌륭하게 돋보이기도 합니다. 나이는 적었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선생님의 자상한 지도가 있었고 그 지도와 훈련에 철저히 순응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되어집니다. 나이가 아직 젊고 경험이 없는 이유로 교회 내에서 대인 관계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다양한 연령층에 있는 교인들과 어떻게 대인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를 지도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이 많은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한 권면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라’ 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험과 지혜가 많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에 나이가 드신 어른들은 모든 일을 실수 없이 잘 하겠지만 어떤 경우에 책망 받을 만한 일을 저질렀을 경우에 엄하게 꾸짖지 말고 권면하되 자기 아버지에게 하듯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교회내의 나이 많은 남자 형제를 대할 때에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젊은 남자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젊은 남자 형제를 대할 때에는 필요 없이 자기 권위를 세우려 하지 말고 자기의 한 피의 형제에게 대하듯 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늙은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혹시 나이 많은 자매를 대할 때에는 자기 친어머니를 대하듯 대하라는 충고 인 것입니다. 네 번째는 젊은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아직 나이 적은 총각으로서 여자 문제로 나쁜 소문이라도 날것에 대비한 것 같습니다. 젊은 여자를 대할 때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일절 깨끗함으로 자기 친자매를 대하듯 대하라는 권면입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16절까지의 과부에 대한 관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행전 6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영적 지도자들이 전도와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 일곱 명의 일꾼을 뽑은 사실이 있습니다. 일곱 명을 뽑은 이유가 바로 교회 내에 있는 과부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처음부터 과부를 돌보는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사도 바울도 이방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과부를 돌보는 사역을 하도록 지도한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과부를 분류하되 3종류의 과부로 분류하여 이들을 관리하고 돌보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는 참과부, 두 번째는 자녀나 친척이 있는 과부, 세 번째는 젊은 과부입니다. 하나씩 그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참과부입니다. 3절에 보면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부란 남편을 잃은 모든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나 여기에서 말하는 참과부란 교회에서 생계를 책임져주어야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즉 요사이 말로 교회에서 주는 웰페어를 받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는 과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웰페어를 받는 노인들의 자격이 정해져 있듯이 에베소 교회도 교회 웰페어를 받을 자의 자격을 정하고 자격을 갖춘 과부를 참 과부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참 과부의 자격을 보면 첫째, 육십세 이상이어야 했으니 현재의 수명을 계산한다면 80-90여세로나 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는, 한 남편의 아내여야 했습니다. 한 남편의 아내란 결혼 생활시에 일편 단심 한 남편만 섬겼던 품행이 단정한 여인이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품행이 단정치 못한 여인들이 있었음을 전제한 자격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외로운 자여야 합니다. 외로운 자란 자기를 돌볼 자손이나 친척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넷째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는 자여야 합니다. 세상의 환락을 완전히 포기한 자입니다. 다섯 번째의 자격은 성도로서의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선한 행실의 증거란 자녀를 잘 양육했다거나, 나그네를 잘 대접했다거나 성도들의 발을 씻어줄 정도로 겸손하였다거나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였다거나, 다른 선한 일을 했던 증거가 있는 자들을 자격자로 제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이런 자들만 참과부의 명부에 올리고 그들을 에베소 교회가 재정적으로 도와주었던 제도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녀나 친척이 있는 과부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재정이 충분치 못했는지 교회가 돕지 않으면 생활 할 수 없는 참과부만 돕는 것으로 정하고 자녀나 손자나 있는 자는 그 자녀나 손자가 효성을 발휘하여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를 봉양함으로 부모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고생하셨던 것에 보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도록 자녀와 손자를 가르쳐 배우게 하라고 했습니다.이렇게 자기 부모를 봉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8절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 했습니다. 신앙이 좋다고 칭찬 받는 이들 중에는 교회 일에 충성한답시고 가정을 돌보지 않고 가정을 팽개치고 있는 열심 파도 있는데 이들을 두고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라 한 것입니다. 교회가 전체 교인들을 보살피는 책임이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각 가정의 문제는 각 가정에 속한 식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꼭 직계 자손이 아니더라도 자기 친척중에서 과부가 있다면 그 친척 과부를 자신이 도와주고 교회가 재정적으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하라는 충고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젊은 과부입니다. 그 당시 참과부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나라에만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며 교회를 위해 여생을 바치기로 맹세하는 절차를 거쳐 명단에 올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일 젊은 과부가 참과부 모임에 들어오기를 자청한다면 이를 거절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젊고 정욕이 있어서 시집가게 될 때에는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헛것이 되어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한 결과가 되고 그런 자들은 일을 안하니 집집에 돌아다니며 마땅히 해야 할 말은 안하고 망령된 말만 전하고 다닐 것이니 젊은 과부는 시집가서 아이도 낳고 여자가 해야할 일을 하게 하므로 마귀에게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온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가족이므로 한 가족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나이 많으신 분들을 자기 부모와 같이 대접해 드리며 나이 많으신 분들은 젊은이들을 두고 자기 자녀와 같이 대하고 권하라는 교훈입니다. 교회가 그런 가족 개념이 소화 될 때에 교회는 교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요 그런 분위기가 불가능하다면 교인들은 살아 있으나 교회는 죽은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들끼리 형제 자매라 부르는 것이 우리 교회를 하나님의 가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자는 소망에서 인 것입니다. 서로 한 피의 가족같이 다정하고 사랑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새 천년에 우리가 이룩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가족끼리 보다 더 친밀해지고 더 다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노력으로 평화로운 하나님의 가정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 일은 가족 일원인 우리 각자가 해내야 할 몫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교회가 교회 재정으로 꼭 돌보아야 하는 가정을 돌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교회 재정으로 우선적으로는 교인 중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돕고 더 나아가서는 불신자에게까지 돌보아야 할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 천년에 해야할 일중 하나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입니다. 즉 구제 사업입니다. 꼭 큰돈을 들여서 하는 구제 사업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가난한 자에게, 고난 당하는 자에게 우리들의 관심을 두자는 의미인 것입니다. 개인들이 개인적으로도 하고 또 교회적으로도 이 일에 관심을 갖고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도와야 할 일이 있다면 추천하여 교회적으로 해내야 하겠습니다.

 

교인들끼리 한 가족과 같이 사랑하며 가난한 내 형제와 우리 주변에 사랑을 나누는 진실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