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 – 요한1서 2:1-11

지난주에 강해 되었던 요한 일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 때문에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귀려면 사귀려 하는 자도 역시 어두움이 없는 빛이어야 함이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은 전연 사귈 수 없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과 사귈 수 없음에도 만일 죄 속에 살고 있는 자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한다면 거짓말하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들었던 것입니다. 작은 죄이든 큰 죄이든 내 마음과 영을 어둡게 하고 거리끼게 하는 그 무엇이든 주님 앞에 회개하고 믿음 생활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오늘부터 소개되는 2장에서도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귀어 나가는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나가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인지를 역시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중 1절부터 11절까지에서는 빛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도가 마땅히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가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거짓 말하는 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본문이 주는 본 뜻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대언자와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1-2) [2]계명을 지킨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3-6) [3]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빛 가운데 거한 자(7-11)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대언자와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1절과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대언자 되시고 화목 제물 되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란 이름은 베들레헴 마굿간에 나시고 나사렛에서 자라셨던 사람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그리스도가 함께 붙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인간으로 오셨던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라는 인성과 신성이 강조된 것으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사실이나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이심을 거부하는 자들을 향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강조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사도 요한은 빛 가운데서 살아나가야 하는 성도들의 삶을 소개하는 첫 머리에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을 밝히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언자 되시고 화목제물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목적은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갖는 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하나님께 변호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 되도록 해주시는 중보자이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자는 어두운데 있는 자요 빛 가운데 없는 자가 되므로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바른 사귐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빛으로 나와서 빛 가운데 거하기 위해 대언자 되시고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6절까지의 계명을 지킨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당시에는 지식이나 지혜를 자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랑 속에는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하는 지식 자랑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사도 요한은 과연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3절에 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라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 보니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도록 명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들은 야고보서 강해를 통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확인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같은 차원에서 계명을 머리로 이해만 하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거와 똑같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뜻으로 여러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과 사귄다. 하나님 안에 거한다. 빛 가운데 거한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사귀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빛 가운데 거한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자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는 자라 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몸으로 실천하므로 하나님과 바른 사귐이 이뤄지며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대로 구원의 계획이 이뤄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모범을 보이셨는데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따라 행한다면 주님 안에 거한 자가 되고 하나님 안에 거한 자가 되며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란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

 

[3]마지막으로 7절부터 11절까지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빛 가운데 거한 자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형제 사랑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자가 바로 빛 가운데 있는 자라 했으며 빛 가운데 있다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라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옛 계명이기도 하며 새 계명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보통 생각하기를 원수를 갚지 말며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이 예수님 이후의 신약 시대에 이르러 나타난 것으로 알고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레 19:18 에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라 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옛 계명에도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요약한 것이 십계명인데 십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 자는 마땅히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이웃 사랑이 빠진 하나님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지키도록 하나님께서 10 계명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앞부분 4가지만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뒷부분 6가지를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에 대한 교훈은 요한 일서 3장과 4장에서도 계속 강조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웃 사랑이 빠진 믿음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을 새 계명이라 표현한 것은 원수와 형제 사랑에 대한 계명이 구약에서도 주어졌지만 주님께서 이런 사랑을 직접 몸소 실천하셨기 때문입니다.

 

11절에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두고 어두운 데에 있는 자요 어두운데 있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는 자라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이 자기 눈을 가려 성도가 어떤 행함을 가져야 마땅한지를 알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빛을 찾아 나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만 맴돌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믿음을 갖기 원한다면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분명하게 밝혀준 것은 아무리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열심히 있다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형제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면서 만일 형제를 미워한다면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이며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라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장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믿어온 믿음의 뿌리와 믿음의 역사. 또 교회를 위해 투자한 헌신과 돈. 교회에서 갖고 있는 위치와 직분. 또 말씀과 찬양과 기도의 은사 등입니다. 그 모든 것은 매우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이 인정된다해도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도 내 마음속에 평화로운 천국이 이뤄져야 하고 주님 재림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 마음에 천국이 이뤄지는 것을 방해하고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것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교회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 위선이라고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게 잘하는 형제 사랑은 할 수 있는데 내게 잘 못하는 형제 사랑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 지적하려고 하는 것은 내게 잘하는 형제를 사랑하라는데 있지 않고 내게 못하는 자에게 잘해야 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언제 오실 지 모르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운 때에 와 있습니다. 아니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 우리 각 개인에게 종말이 먼저 와서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언제 부르심을 받더라도 하나님께 인정받는 우리가 되기 위해 벗어버려야 할 옷을 벗고 성도가 입어야 할 마땅한 사랑의 옷을 갈아입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많이 겸손해져야 합니다. 내 주변에 모든 분들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겸손해져야 합니다. 남을 미워하게 하고 남에게 친절하지 못하도록 자기를 교만하게 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 놓고 회개하므로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늘 누구에게나 사랑 어린 웃는 얼굴과 온화한 말로 대하며 따뜻한 손으로 잡아 평안을 빌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인 곳은 가정이고 교회이고 늘 평화로울 수 있도록 모든 어두움을 다 벗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내 이웃을 대해야 하겠습니다. 내게 잘 못하는 형제에게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