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 요한1서 4:7-21

오늘의 설교 제목은 서로 사랑하라 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일서 2장과 3장에서 이미 사랑의 실천에 대해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 4장에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 구체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성경 중에서 사랑을 강조한 고린도 전서 13장을 사랑 장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오늘의 본문 요한 일서 4장을 두고 제 이의 사랑 장이라고 할만큼 사랑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의 특성을 강조했다고 한다면 요한 1서 4장에서는 사랑의 기원과 함께 사랑이란 성도가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덕목임을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오늘 본문을 통해 사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왜 성도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지 사도 요한을 통해 확실하게 깨우침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랑해야 하는 이유(7-11) [2]사랑의 결과 (12-19) [3]하나님께서 주신 계명(20-21)입니다.

 

[1]맨 먼저 7절부터 11절까지의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해야 함을 설득하기 위해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사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하나님은 바로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성도들이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양이 새끼를 낳으면 양이 되듯 성도들이 사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면 당연히 성도들도 바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므로 사랑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대로 사랑을 당연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소개하며 성도들도 서로 사랑해야 함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죄인 되었을 때에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독생자 아들을 세상에 내려보내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도록 했다고 했습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먼저 사랑하셨으며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게 하실 정도로 큰사랑을 나타내 보이셨다고 헸습니다. 이 보다 더 큰사랑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이었던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 자기의 외아들을 죽게까지 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본질이요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며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나 서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녀라 한다면 당연히 사랑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 서로 사랑해야 마땅한 것인데 만일 성도라고 하면서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며 하나님을 믿는 자도 못된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2절부터 19절까지의 사랑의 결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성도가 서로 사랑하므로 얻어지는 결과를 두 가지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가 사랑을 실천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는 것이 된다고 했으며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는 자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갖게 되고 두려움을 좇아낸다고 했습니다.

 

12절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살아야 했던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랑을 나타내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즉 독생자 예수님을 땅에 내려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을 주시므로 하나님과 동거할 수 있는 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15절에서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한다고 약속하고 있으며 또 사랑 안에 거한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한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사실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사랑하므로 얻어지는 첫 번째의 결과이고 사랑하므로 얻어지는 두 번째의 결과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게 되고 두려움을 내어쫓는 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존재들인데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온전한 사랑을 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두려움도 없게 되므로 이들에게는 심판대에 담대하게 설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3]마지막으로 20절부터 21절까지의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에서 주께 받은 계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께 받은 계명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은 나눌 수 없는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동시에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20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하는 것이라 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주님께서 사람과 불화한자는 사람과 화목한 다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공존해야 하는 것이며 공존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 사랑은 거짓이 되며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형제를 또한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형제를 사랑해도 좋고 사랑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꼭 사랑해야 하는 하나님의 계명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사랑해야 하고 형제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 중 하나가 빠지면 반쪽 짜리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작은 자 하나에게 입히고, 먹인 것이 바로 주님께 한 거와 같다고 하셨으며, 이와 같이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도 이적을 행하고 전도하며 주의 일을 한다고 한 자들을 두고 도무지 모른 다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에 모순이 있다면 교회에서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 지도자 같지만 가정에 돌아와서나 직장이나 사회에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며느리 된 한 사람의 하는 말을 기억합니다. 우리 시어머님은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시며 기도하시는 분이신데 무슨 기도를 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는 분이 며느리 대하실 때에는 도저히 기도하시는 분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비숫한 지적을 우리 모두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 손아랫사람이 아니 내 손위엣 사람이 나를 두고 그렇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며 내 직장 동료나 내 거래처 손님들이 우리를 두고 그렇게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야할 존재들입니다. 이런 존재들이라면 당연히 형제들에게 사랑을 입혀줘야 하며 내가 용서해주어야 할 자들에게 너그러운 용서를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이웃에게 따뜻하게 해주지 않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따뜻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장님으로 취급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을 때에 우리들을 사랑해 주심같이 사랑이란 말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래 믿는 자의 자랑과 능력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자의 자랑과 능력도 또 믿음이 좋다고 하는 자의 자랑과 능력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믿고 있다면 좋은 교회에 다니는 자는 내게 잘못한 자에게도 사랑을 베풀어주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볼 때에도 그렇고 아내 되는 사람이 자기 남편을 볼 때에 자기가 부족한대도 사랑해 준다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도 자기가 잘못하고 부족한대도 자기 이웃이 자기를 사랑해 준다고 인정할 수 있을 때에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었을 때에 무조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큰사랑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무조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조건 은혜를 입혀주셨는데 나는 남에게 조건을 붙여 사랑하겠다고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공짜로 받은 은혜를 돈 받고 팔겠다고 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늘 빚 진자의 자세로 형제 사랑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 할 수 없다면 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이란 거짓이라고 선포한 사도 요한의 교훈을 늘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한 자는 하나님께서 그 안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빠진 신앙 생활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 신앙 생활 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오늘 분문을 통해 확인한 것은 형제를 미워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속에 거하시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 모두 성실히 실천해 나가시어 늘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천국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사랑의 교훈을 받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