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에게의 권면 – 유다서 1:17-25

오늘은 유다서의 마지막 부분을 강해하게 되는데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도들이 믿음을 지켜나가는데 꼭 필요한 귀한 권면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거짓 선지자나 이단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자기가 이단이라거나 자기가 거짓 선지자라고 양심 선언을 하는 경우는 한 건도 없는 것입니다. 거짓 선자자의 정체가 언제 다 들어 나게 될까요? 주님 오실 때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한 수많은 교파나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모두 자기가 정통이요 자기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재림시에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가 분명히 구분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스가랴서 13장을 강해했는데 13장 4절과 5절에 보니 주님 오시기 전까지는 거짓 선지자들이 선지자로 위장하기 위해 선지자들이 입었던 털옷을 입었으나 주님 재림시에는 털옷도 입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자기를 소개하기를 자기는 선지자가 아니라 농부라고 고백할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속일 수 있지만 주님 재림시에는 속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거짓은 자취를 감추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거짓 선지자가 기승을 부릴 마지막 시기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거짓 선지자가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경계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들의 순수한 믿음을 지켜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임을 기억하라(17-19) [2]자신을 건축하라(20-21) [3]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에서 끌어내라(22-23) [4]하나님의 찬양(24-25)입니다.

 

[1]맨 먼저 17절부터 19절까지의 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임을 기억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롱한다는 말의 뜻은 조롱한다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성도들을 조롱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말세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사도들이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라고 유다는 성도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들의 편지에서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경계하도록 미리 말한바가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예고한 유다는 다시 거짓 선지자들의 특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나타날 거짓 선지자들은 경건은 모르고 자기의 욕심대로 사는 자들이며, 교회와 교인을 갈라놓는 당을 짓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또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있으나 성령은 없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성령이 없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구원도 심판도 믿지 않은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말세에 교회에 나타나게 될 것을 몇몇의 사도들이 미리 말한 바가 있는데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20절부터 21절까지의 자신을 건축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다는 성도들이 믿음의 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거짓 선지자와 힘써 싸워 이겨야 하므로 거짓 선지자와 힘써 싸워 이길 수 있는 네 가지 길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된 믿음을 말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는 믿음도 많기 때문에 그런 믿음과 구별하기 위해 거룩한 믿음이라 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나타났을 때에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무너지듯 무너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단단하게 다져진 기초 위에 자신을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하여 자기가 가진 믿음을 말씀과 대조하고 말씀에 따라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두 번째의 길은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말의 뜻은 자기 욕심만을 채우려는 기도 말고 성령을 충만하도록 채우려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기도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킨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자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울타리가 되어주시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이 세상 아무 것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줄 수 없을 것이므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고 늘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으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긍휼은 재림시에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실 긍휼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재림시에 주님께서 베푸실 긍휼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가진 자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어 승리의 자리에 들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3]세 번째로 22절부터 23절까지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에서 끌어내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2절부터 23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로부터 유혹되었거나 유혹될 성도들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바로 앞부분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대항하여 싸워 이기려면 자신을 단단히 무장하라고 권면했는데 이렇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단단히 무장했으면 이제는 자기 이웃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구출해내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거짓 선지자의 유혹을 받아 비 진리를 진리라 믿고 오히려 진리를 의심하는 이웃들에게 냉대만 하지 말고 사랑과 긍휼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유혹된 자는 거짓 선지자들이 불에 탈 때에 함께 불에 타고 말 것이기 때문에 불에서 그들을 구원해 내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불에서 그들을 구원하는 길이란 비 진리에 빠져 있는 자들을 조심스럽게 접촉하여 비 진리의 삶에서 빠져 나와 진리를 다시 믿게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물에 빠진 자를 건져 낼 때에 조심스럽게 건져내지 않으면 둘이 다 빠져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미 빠져 들어간 자를 접촉할 때에 조심스럽게 두려움을 가지고 접촉하면서 구출해 내라는 권고입니다.

 

[4]마지막으로 24절부터 25절까지의 하나님의 찬양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유다는 거짓 선지들로부터 성도들을 지켜주셨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하나님께 찬양하는 말로 유다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거짓 선지자들의 위험 속에서도 성도들을 능히 보호하시어 아무런 거침이 없게 하실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 재림시에 성도들을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장 큰 소망은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는 것이요 그 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설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셔야 하기 때문에 모든 악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성도들을 흠 없게 바로 서게 하실 하나님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마지막 절인 2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일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또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많은 천국 백성들이 천국에 입성하므로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를 영원히 누릴 분이심을 찬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바로 설 수 있도록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바른 믿음의 사람으로 건축해나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명에도 지식도 권세도 부귀도 다 중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이름 있는 자들의 장례식은 오히려 더 허망한 생각이 들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졌던 아무 것도 그를 죽음 앞에서는 쓸모가 없다는 허무한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장례식에 갈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장례식을 아무리 화려하게 거행하고 장례식에서 죽은 자의 약력을 아무리 아름답고 꾸며주어도 그런 것들은 죽은 자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또 장례식을 집례하는 자가 고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고 선포한다고 하더라도 그 선포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죽은 자의 영혼이 주님 재림시에 천국에 입성하도록 해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가졌던 본인의 바른 믿음과 바른 실행만이 자신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도록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다는 우리들에게 권하기를 바른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바른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 나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 없게 즐거움으로 설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자신을 세워나가라고 했나요?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워나가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교파나 어떤 유명한 신학자가 제시한 믿음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인정한 믿음 위에 우리들 자신을 건축해 나가야 합니다. 말씀과 대조하여 세상이 준 믿음은 하나씩 버려나가므로 거룩한 믿음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주님의 기도를 생각하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하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 말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원하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늘 충만하도록 성령의 기도로 우리들을 건축해나가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유다는 우리들에게 늘 하나님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늘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되고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늘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삶으로 우리 자신의 믿음을 건축해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믿음을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믿음으로 자신을 무장한 우리 모두는 비 진리에 빠져 있는 영혼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받게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귀한 삶을 사시어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바로 살 수 있으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