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에 대한 처방 – 고린도전서 5:1-8

고린도 전서 1장부터 4장까지는 고린도 교회내의 분쟁에 대한 처방이 주어졌는데 5장부터는 분쟁 문제 이외의 다른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처방을 주고 있는데 오늘 주신 본문은 음행 문제 즉 성적인 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처방을 주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고린도 도시가 본래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기에 그 심각한 성적 범죄가 교회에까지 번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방탕한 생활에 있어서는 세계 어느 도시도 고린도를 따를 수 없을 만큼 되었었다고 하는데 이 도시에는 천명을 넘는 신전 소속 창녀들이 신전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또 한편 희랍 철학은 성적 부도덕을 다른 것에 비해 그다지 나쁜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그 당시의 남편들의 성적인 방종은 희랍의 철학과 법에 의해 보호되었다고 합니다. 국가는 공창 제도를 설립했고 플라톤 같은 철학자는 그의 저서 국가론 에서 나이가 찬 남녀간의 성적 혼음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은 너무도 부도덕하여 생활 구석구석에서 고질화 된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회 환경은 어떠했던 지간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에 표준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성적 범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도록 강력하게 편지를 써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주셨기 때문에 다시는 옛 몸에 있을 때에 행했던 모든 나쁜 습관과 죄에서 벗어나서 성도답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사는 천국 백성답게 순결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권면과 경고를 우리들의 생활에 적용하여 우리 모두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성도로서 정결한 삶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음행에 대한 죄를 지적함(1-2) [2]음행자에 대한 처방(3-5) [3]성결의 삶(6-8)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음행에 대한 죄를 지적함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일어난 문제들을 인편으로 정확하게 듣고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자기가 낳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를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에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라는 아주 보수적인 예수님의 교훈을 받았을뿐 아니라 또한 우리들이 사는 사회가 고린도 도시와 같은 음탕한 도시 환경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에 저지른 성적인 문란에 대해 이해가 쉽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1절에 보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내에 음행이 있다고 분명하게 지적을 했습니다. 음행이란 여러 모양의 성적인 죄를 말하는 것인데 막연하게 음행이란 말로만 그치지 아니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도 용납이 안되는 죄를 짓고 있다고 강조함으로 그 범죄가 얼마나 타락된 죄인지 죄의 셩격을 구별해주고 있습니다.

 

1절 뒷부분에 보니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 도다’라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누가’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은 아무개라는 사람이 자기의 계모 혹은 아버지의 첩과 동거한다는 말로 해석이 됩니다. ‘아내를 취하였다’는 말의 뜻은 한 번 실수로 음행을 했다는 것보다는 지속적으로 음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의 뜻이므로 아예 공개적으로 동거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도저히 있어서는 안될 비슷한 성적 범죄 사건들을 가끔 신문을 통해 보면서 많이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문제입니다. 이런 성적 범죄를 근친 상간이라 하여 가족이나 친척끼리의 성적 범죄를 말하는 것으로 구약 율법에서도 구체적으로 이를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범죄는 물론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사건을 두고 순전히 개인적인 일로만 풀지 않고 있음을 봅니다. 즉 요사이 말로 말한다면 프라이버시 다고 하여 남의 사사로운 일에 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을 갖는 데 이것 역시 것이 역시 또한 큰 잘못임을 경고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음행에 대해 저지르고 있는 두 가지 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기 전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행했던 옛 습관대로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그 자체이고, 또한 그런 죄를 짓고도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를 뿐 아니라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고 교만해 있다는 것이며, 교회로서는 교인 중에 그런 음행자가 있으면 많이 비통해하고 이를 시정하도록 권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서 이를 내 좇았어야 함에도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 복음 18:15-17에 보면 예수님께서 범죄 한 형제가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권면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이 함께 가서 권면을 하며 그래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데리고 와서 교회 앞에 세우고 권면을 하여 그래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같이 내 좇아야 한다는 교훈이 있는데 고린도 교회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성적 범죄자를 그대로 용납하였고 성적 범죄자는 교만해져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3절부터 5절까지의 음행 자에 대한 처방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3절에 보니 사도 바울은 비록 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으나 마음은 늘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록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있지 않했다 하더라도 있었던 것과 마친가지로 이미 그 범죄자의 죄를 죄로 인정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의 몸은 고린도 교회에 없다할지라도 바울도 함께 참석해 있다고 전제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온 교인들이 모여 범죄자를 세워 범죄자의 죄를 지적하고 교회의 권면도 듣지 않으면 사탄 즉 세상으로 내 보내라는 처방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라’는 뜻은 어떤 사람의 감정으로 모여 일을 처리하지 아니하고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권위로 모여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권면하고 치리 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5절에 보면 범죄자를 치리 하는 목적과 방향이 주어집니다. 4장 14절에도 ‘내가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한다’고 편지를 쓰는 목적은 잘못을 바로 잡게 하려는 것임을 밝혔듯이 5절에서도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범죄자를 교회에서 치리 하여 내 쫓음으로 그 사람은 세상적으로 부끄러운 일이 되나 부끄럽게 한 일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교회에 다시 돌아온다면 주님 오실 때에 영적으로는 구원이 된다는 것이므로 일시적으로 부끄럽게 하여 세상에서 그의 이름이 좀 떨어진다 해도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며 치리의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6절로 8절까지의 성결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6절로 8절에서는 성도들이 마땅히 살아야할 성결의 삶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교회 안에 들어온 소수의 죄를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누룩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떤 범죄이든 그 죄를 묵인하고 덮어주면 그 죄가 다른 사람에게 번져서 결과적으로는 온 교회가 전염이 되어 교회를 파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온 교회가 순결하기 위해서는 누룩과 같은 작은 범죄라도 이를 지적하고 시정시켜야지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덮어만 주면 교회에 큰 해가 온다는 것입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죄 없이 함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한 점이 흠이나 점이 없이 성결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시기까지 하여 거듭난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피값을 주고 산 우리의 생명을 기리 보전하기 위해 묵은 누룩이 없는 삶, 즉 옛 습관에서 온전히 해방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비유한다면 옛날 유월절을 지킨 자들은 자기들의 죄를 그대로 가지고 양의 피만 흘리게 하였지만 예수님의 피에 의해 구원 된 우리들은 새로운 유월절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지켜 하나님이 받으실 산 제사를 드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란 크고 작은 옛 습관이나 어떤 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과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란 마음과 행실이 일치된 성결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를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내 속에 아주 작은 죄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넓게 말을 한다면 작은 죄라도 교회 내에 살아 번성하지 못하도록 즉시 죄를 추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엄청난 성적 범죄를 두고도 그들을 치리하지 아니하고 또한 범죄자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교만해졌다는 말은 죄가 점점 자라면 무엇이 죄인지도 무감각해진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지경에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 작은 구멍을 막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구멍이 작을 때에는 누구나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기가 지나면 수술을 해도 큰 상처가 남거나 아니면 전연 치료가 불가능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작은 범죄라도 내 속에서 자리잡지 않도록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죄를 추방하는 능력 있는 우리들이 될 뿐 아니라 교인 중에서 심각한 죄의 병을 앓고 있다면 사랑하기 때문에 덮어만 주거나 모른체할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권면하여 고치도록 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이 함께 가서 권하여 현제를 죄의 구덩이에서 나와 성결의 사람이 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이 일믕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의 목표는 거룩한 자들만이 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즉 거룩해야할 이유를 깨닫자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가 없다면 어떤 삶을 살아도 되겠지만 하늘 나라를 목표한 우리들은 하날 나라의 백성이 입는 옷을 입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들의 체중도 조절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시편 15편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자가 누구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수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의 장막에 거할 자’ ‘주의 성산에 거할 자’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