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영광 – 고린도후서 4:7-18

1997년이 엊그제 시작했던 것 같은데 오늘이 12월 마지막 주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해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해 동안에 무엇을 이루시기를 소원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소원하신 것을 이루셨습니까? 달력에 지난 한해의 삶을 평가해 볼 수 있는 12월이 있고 소망을 갖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1월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보다 알차게 꾸려나가는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어떤 평가가 우리 각자에게 내려졌든 지간에 지난 한해를 평가할 수 있는 오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가 한해를 반성해볼 때에 사람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얼마쯤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들이 꼭 했어야할 일들을 하지 못한 것들이 있으리라 보고 못 다한 것들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함이 마땅한 일이라 믿습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평가한 것을 소개받으면서 우리들의 평가가 세상적인 것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 있는데 비해 사도 바울은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어 평가한 것을 보게 됩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우리들이 세상적인 것을 얼마나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만 평가될 것이므로 사도 바울과 같은 평가 기준이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소개받는 성도님들 모두가 사도 바울이 가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시어 내년 연말에는 사도 바울과 같은 수준의 영광된 자신을 발견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보배를 간직한 사도 바울(7) [2]고난의 가치를 체험한 바울(8-15) [3]크고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갖고 있는 바울(16-18)입니다.

 

[1]맨 먼저 7절의 보배를 간직한 사도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사도 바울의 생애를 한 눈으로 볼 때에 사도 바울의 생애는 갖은 환난과 수고의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원수들로부터 당한 시련은 고사하고 심지어 자신이 전도한 고린도 교인중 일부가 바울에게 감사를 돌리기는커녕 오히려 심하게 사도 바울을 괴롭혔던 것을 생각해볼 때에 사도 바울의 생애중 우리들이 보통 말하는 세상적인 복이란 찾아볼 거리가 전연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적인 안락한 생활 보장이 전연 없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실망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도를 버리지 아니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7절에서 자기 속에 보배가 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육체를 질그릇에 비유하고 자기 속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믿음, 또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보배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그릇이란 값이 싼 그릇이며 쉽게 깨질 수 있는 그릇이나 보배란 깨지지 않고 오래 갈 뿐 아니라 값이 비싼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남보다 훌륭한 교육도 받고 남에게 자랑할만한 것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이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또 복음 전도의 직분과 같은 하나님과 연관된 일과 자기가 가진 육체를 비교한다면 전연 비교가 되지 않는 질그릇과 보배로 비유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귀한 보배가 어울리지 않게 가치 없는 질그릇과 같은 자기 속에 간직되어 있는지 놀랍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능력만이 이를 가능케 한 것이지 인간적인 그 아무것도 이를 가능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배를 가졌다고 한다면 우리들도 또한 그런 보배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의 질그릇 속에 간직된 보배가 있는 한 이 세상적인 어떤 것을 혹시 성취하지 못한 1997년이었다고 해도 우리들은 1997년은 보람된 한해였다고 평가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속에 임재해 계시는 하나님과 그를 믿는 믿음을 이 세상의 어떤 것들과 비교할 때 질그릇과 보배에 비유될 만큼 가치 있는 것임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8절로 15절까지의 고난의 가치를 체험한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당한 많은 고난을 통해 몇 가지의 귀한 체험을 얻었음을 간증합니다. 첫째로 그는 그가 당한 수많은 고난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고난에 처한 자신과 함께 하시어 모든 어려움에서 건져주시고 지켜주신 사실을 체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결코 우겨 쌈을 당하지 안했다거나, 답답한 일을 만나지 아니했다거나, 핍박을 받지 아니했다거나,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아니했다고 말하지 아니했습니다. 한마디로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도 빠져나갈 길을 주셨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잘 믿는 사람이 많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으나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능히 이겨낼 힘을 주신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두 번째로 그가 체험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같이 자기 자신도 예수 때문에 날마다 죽음에 해당하는 고난을 짊어짐으로 예수의 생명이 자기에게 나타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셨다면 어찌 그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겠느냐는 논리에 따라 자기도 고난 없이 어떻게 영생을 차지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는 죽으면 살리라는 주님의 기본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여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믿었으므로 어떤 고난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그가 체험한 것은 자신이 복음 전도를 하면서 고난을 당한 그 고난의 결과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체험한 것입니다. 자기가 당한 수모나 고난이 구원받는 자를 더하게 하여 그들도 주님 오실 때에 바울과 함께 부활의 자리에 동참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체험한 것입니다. 즉 자기 개인이 죽고 고난을 받음으로 여러 사람을 살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게 되는 일임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어떤 고난에도 자기의 직무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세 번째로 16절부터 18절까지의 크고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갖고 있는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기 어려운 모든 고난에도 낙망하지 않는 이유를 또 우리들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예수를 전파하다가 몸은 매맞고 상처 뿐이요, 늙고 쇄약해졌으며 거기에다 치료되지 않는 질병까지 얻었고, 늙은 자신을 돌봐줄 자식 하나 없고 가진 것 하나 없이 된 자신을 돌아볼 때에 자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요? 어쩌면 너무 허전하고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이 깨지면 깨질수록, 속사람인 영은 새로워진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말을 바꾸어서 표현한다면 육이 편하고 부귀를 누리면 누릴수록 속사람은 낡아져 감을 느낀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들 인간의 몸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낡아지기 마련입니다. 피부도 거칠어지고 주름살도 늘어나고 허리도 굽어지고 눈도 어둡고, 걸음걸이도 느리고 목소리마저도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늙는 것을 모두 싫어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인간의 낡아진 상태를 후패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몸은 고난을 당해 후패해지고 또 늙어서 후패해지고 있으나 자기의 속 사람은 날이 갈수록 새로워지기 때문에 겉 사람이 낡아졌다고 낙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아니 자기 육체가 점점 못쓰게 될수록 자기 속에 있는 영이 새로워진다니 어찌 육체의 낡아짐이 그에게 실망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는 또 현재 당하는 고난과 미래에 받을 영광을 저울질해 볼 때에 낙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다면 그가 당한 모든 고난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최악의 것으로 보이지만 바울 자신은 아무리 고난이 크다하여도 미래에 받을 영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저울 한쪽에는 현재의 고난을, 다른 한쪽에는 미래의 영광을 놓고 저울질해본 것입니다. 그가 받은 현재의 고난은 잠시라고 하였습니다. 길어야 한평생이요 영광은 영원한 것이라 했습니다. 또 현재의 고난은 경한 것 즉 가벼운 것이라 했으며 미래에 받는 영광은 지극히 크고 중한 것 즉 무거운 것이라 했습니다. 그를 매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심한 핍박과 환난은 가볍고 잠시 받는 것이라하고 장차 받을 영광은 지극히 크고 중한 것이며 또한 영원한 것이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고난도 장래에 받을 영광과는 전연 비교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이 부족하고 없다고 하여도 낙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구 무엇이 아니라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보물을 보물로 알고 잘 간직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들이 꼭 간직해야할 보물을 소개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보물도,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다 질그릇으로 비유했으며 참 보물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 소개받았습니다. 보물에 해당되는 이 보물을 우리들이 가끔 소흘할 때가 있으나 이 보물을 보물로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이것이 보물이 되겠습니까? 좋은 믿음은 우리들에게 어떤 환경에서든지 범사에 감사와 만족을 가져다주며, 우리들에게 평안과 소망을 가져다주며, 주님 오실 때에는 우리들에게 부활과 영생을 가져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떤 보화도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줄 수 없으나 오직 믿음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므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그 무엇보다도 믿음을 앞세우고 믿음이 귀한 것임을 알고 믿음을 키워나가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체험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고난 중에서 우리들에게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능력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시련과 고난은 내 믿음이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게 하는 것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소망을 더욱 뜨겁게 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미래에 주어질 영광은 현재의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될 수 없으므로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겨내어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을 차지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주어질 장래의 영광이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날마다 쉬지 않고 꾸준히 달려야할 장거리 마라톤 코스를 성실하게 규칙대로 달리는 일만 계속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마라톤 코스를 돌면서도 세상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세상일보다는 하나님을 향해 달리는 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인 교회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여 받기에 합당한 작들을 위해 예비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다 차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