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환상과 육체의 가시 – 고린도후서 12:1-13

사도 바울은 자기 자랑을 하지 말도록 권한 분인데 지난 11장에 이어서 오늘 12 장에서도 자기 자랑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랑이라는 것이 결코 무익한 일인 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부득불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자랑을 하게 된다고 하면서 말문을 열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을 깍아 내린 반면에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자신들을 높이는 거짓 선지자들의 수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무슨 환상을 보았다던가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본 것 또 들은 것을 자랑하니 고린도 교인들은 진짜인 사도 바울 보다는 가짜인 거짓 선지자가 더 위대해 보였던 것입니다. 사례금을 받지 않고 일했던 사도 바울은 어딘가 부족해 보였고 사례금을 톡톡히 요구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당당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은 아무리 거짓 교사들이 거짓 말로 속이고 사도 바울을 비난해도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 자신을 옹호해주고 거짓 선지자들을 배척할 것으로 기대를 걸었는데 결과는 정 반대로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선전에 넘어가 사도 바울을 배척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상 입을 다물고 있으면 고린도 교인들이 다 비 진리에 넘어가고 말 것이므로 입을 벌려 자기 자랑을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본문에서 보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을 쉽게 판별하고 사도 바울이 가진 높고 깊은 신앙관을 배워 실천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도 바울이 본 환상과 계시(1-6) [2]사도 바울에게 있는 가시(7-10) [3]사도의 표(11-13)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6절까지의 사도 바울이 본 환상과 계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면서 자기 자랑을 전연 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무슨 계시를 받았다고 자랑을 일삼으며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사도 바울은 영력이 부족하다고 매도했겠지요. 그 이상 입을 다물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린 사도 바울이 자랑의 입을 열게 된 것입니다.

 

엄청난 환상과 계시를 받았지만 그것을 남에게 자랑하지 않고 마음속에 숨겨두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도 바울은 자랑을 하되 분명한 한계를 두고 자랑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간증 집회를 통해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보았고 무슨 소리를 들었으며 어떻게 천국에 갔다 왔다고 구체적으로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고 들었고 천국에 갔다왔다는 간증과 사도 바울의 간증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간증을 하면서 자랑하는 것이 무익하지만 형편상 부득불 한다고 전제했으며, 자기가 듣고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제 삼자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것 같이 ‘내가 한 사람을 안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안다’ 또 ‘그가’ 라고 표현하므로 자신을 한사코 감추려는 겸손을 보게 되며, 14년 전에 체험한 것이라 말하므로 14년 동안 자기가 체험한 사실을 혼자만 알고 마음에 감추어두고 남에게는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며, 자기가 환상이나 계시를 보여달라고 때를 쓴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끌려가서 낙원이라고 말한 셋째 하늘에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물론 자기가 듣고 본 바를 자랑을 해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는 것은 이것이 참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런 자랑을 할 수 있으나 그런 자랑은 삼가고 자신은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할 것이며, 또 그런 자랑을 삼가는 것은 내 자랑을 듣고 자신을 지나치게 높게 볼 염려가 있어서 그만 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비의 체험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약한 것만을 자랑하겠다는 데 이 세상의 사람들은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또 남이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고 간증 집회를 인도하며 또 그런 사람을 초청하여 신문에 크게 광고를 하여 자기 교인뿐 아니라 남들까지도 오도록 권하고 있으니 사도 바울의 신앙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지요?

 

[2] 두 번째로 7절부터 10절까지의 사도 바울에게 있는 가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계시가 지극히 크므로 혹시나 자기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자기 육체에 가시 즉 사단의 사자를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생각해도 자기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그 계시가 놀랄만하므로 인간인 사도 바울도 얼마든지 우쭐하여 남을 깔보고 교만해져서 넘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어 그가 교만하지 않도록 몸에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육체에 있었던 가시가 무엇을 말하는 지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여러 방면에서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안질이나, 간질, 아니면 육체적 핍박 등으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어떻든 사도 바울은 이 가시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자기가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교만해질까 해서 주신 것으로 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가시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세 번 기도했으나 거절의 응답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거절의 이유는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시 때문에 고생은 하고 있지만 현재 누리고 있는 은혜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자기에게 가시가 있으므로 자신이 더욱 겸손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사모하고 있음을 체험한 사도 바울은 남보다 능력이 있다는 자기 자랑은 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자기가 약해 있을 때에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기의 약한 것들을 기뻐한 것은 자기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므로 자기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우리가 간구하는 그 기도가 그대로 응답되어야 만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간구한 것이 거절당한 것이 응답으로 온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거절의 응답도 기도의 응답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 믿음이 좋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풀이하기가 쉬운데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으므로 그 약한 것을 보충해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당한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한다고 했으니 그 이유는 자기가 약하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약한 것이 곧 강함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을 한다면 내가 강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전연 필요치 않는다면 내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 것이므로 사도 바울에게는 약한 것이 강한 것이요, 강한 것이 도리어 약한 것으로 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풀고 계십니까? 내가 하나님을 필요한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미치며 내가 하나님을 필요하게 느끼지 않는 만큼 하나님은 내게 아무런 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도 바울의 믿음은 지극히 옳은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3]마지막으로 11절부터 13절까지의 사도의 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사도직에 대해 자랑하기를 자기는 어떤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사도인 것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할 때에 모든 어려움을 참았던 참음이며,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한 그 사실이 바로 진짜 사도라는 표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사도인지 아닌지는 고린도 교인들이 바로 증인이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또 거짓 선지자들이 사도 바울이 돈을 받지 않고 일한 것을 가지고 헐뜯고 있으므로 고린도 교회를 위해 희생하고 복음을 전했음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를 ‘내가 고린도 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 일 외에는 다른 교회보다 덜 사랑한 것이 없다. 내가 공평치 못하게 다른 교회로부터는 물질적 도움을 받고 고린도 교회에서는 받지 않았으니 이런 공평치 못했던 사도 바울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편지에 쓰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마귀의 입에서 빼내려는 그의 인내에 찬사를 보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환상과 계시에 대해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모든 말씀과 약속이 이 성경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즉 누구를 통해 따로 무엇을 보여주고 계시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계시나 환상이 누구에게 있었다할지라도 그것은 간증 집회나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14년전에 가 보았던 천국에 대해 입을 다문 사도 바울의 모범을 배워야 합니다. 간증 집회에 큰 비중을 두시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간증 집회 좋아하지 말고 성경을 열심히 보셔야 합니다.

 

두 번째는 약할 때에 강하다는 교훈입니다. 누구에게 의사가 필요합니까? 의사는 병든 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은 필요한 것입니까? 자기의 힘으로는 안됨을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입니다. 애굽 군대는 뒤에서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어 뒤로도 앞으로도 갈 수 없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이 능력이 필요했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 바다를 육지를 건너듯 건넘으로 하나님은 과연 위대한 하나님으로 나타나 보이게 된 것입니다. 내가 심히 어려울 때에 내 힘으로는 될 수 없음을 알 때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이 체험한대로 내가 약할 때에, 내가 부족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역사 하실 몫이 커진다는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아무리 잘 믿는 자에게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어려움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하나님은 그에게 매달리는 자녀를 사랑하실 것이므로 내게 있는 어떤 가시이든 꼭 불행으로만 해석을 내셔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시 감옥 생활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로 안내했던 것 같이 가시는 믿음에 있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머무르게 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약할 때에 곧 강함이라는 진리를 마음에 두시고 가시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거절의 응답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몸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의 기도를 했으나 거절당했으며, 네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기도에도 응답이 내가 원하는 지금 당장 이뤄지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응답되는 거절도 있고 아예 응답되지 않는 거절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를 세 번이나 했으나 거절의 응답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든 기도는 응답되어야만 한다고 하나님께 때를 쓰지만 바른 기도의 자세는 내 몸에 가시가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 내 몫이요 그 일을 이뤄주시거나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 몫으로 내 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기도는 하나의 모법입니다. ‘아버지시여 하실만 하시거든 내가 마셔야할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거절은 주님께나 인류에 큰복이 된 것입니다. 성실한 자녀의 기도에 승낙의 응답이던 거절의 응답이던 아버지께서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응답을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또 승낙의 시기가 늦더라도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승낙의 응답을 주신 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약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역사하신다는 교훈과 거절의 응답도 내게 꼭 필요함으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