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자기가 개척한 고린도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혼란스러운 것을 바로 잡기 위해 16장에 걸친 고린도 전서와 13장에 걸친 고린도 후서를 써서 보냈는데 방금 봉독한 13장은 결론적인 장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린도 전후서를 통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여준 끈질긴 사랑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해 끝까지 참으시고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 것과 맥이 통하는 것들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고린도 교회내의 범죄자들을 징계하는 것으로 진즉 마무리 짖고 말았을 것이며 배은 망덕한 배신자들이었다고 성급하게 판정을 내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그렇게 했다면 고린도 교회는 많은 상처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자리에서 떨어져 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가지고 경고하고 권면하고 격려하므로 결과적으로는 고린도 교회가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바랐던 대로 회복되었다고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예정대로 방문하였으며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으나 로마서에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그 이상 거론되지 않은 것을 보아 문제가 풀어진 것이라 풀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다시 방문하여 서로 얼굴을 대면하기 전에 모든 잘못을 시정하도록 경고하고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권면하고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과의 연합이 있기를 축원하는 다각적인 그의 최선의 노력이 그런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꾸준한 인내로서 보여준 사랑을 우리들도 본받아 영혼 구원을 위해서는 내가 죽고, 내가 희생하며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라도 해내야 하겠습니다. 그 과정은 힘들고 마음 아프겠지만 좋은 결과는 모든 희생과 고통에 만족스런 보상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마지막 경고(1-6) [2]사역자의 기도(7-10) [3]사역자의 권면과 축도(11-13) 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6절까지의 마지막 경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2장에서도 고린도를 세 번째 방문할 것이라는 그의 계획을 알리고 그가 방문하면 모든 범죄자들을 징계할 것이므로 방문하기 전에 회개하기를 촉구한바있습니다. 그런데 13장에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여 경고하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1절에 보니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밝혔고 세 번째에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면 그 동안에 사도 바울을 대항하여 퍼트렸던 말마다 두 세 증인의 증거를 요구할 것이며 전에 죄지은 자들과 지금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이 회개치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들이 지었던 죄란 논쟁과 말다툼, 분쟁과 파당, 시기와 질투, 험담과 공공연한 모욕, 진노와 노여움, 수군거림과 구설수, 오만 불손함과 자만, 무질서와 혼란, 깨끗지 못함과 방종적인 삶, 간음과 부도덕한 성적 범죄, 음탕함과 절제되지 못한 정욕과 열망이었습니다.
거기에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 바울이 진짜 사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대라고 한 것들입니다. 아마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이 자랑했던 그런 종류의 외적 증거들을 바울에게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외적인 자랑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약한 점 때문에 자기 내에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하면서 약한 사도 바울을 들어쓰시어 이방인들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구원하게 한 그 자체가 바로 진짜 사도라는 증거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퍽 유약하게 보이지만 자기 안에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세 번째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될 것임으로 회개를 하던지 아니면 징계를 받던지 하라는 암시적인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기 스스로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보고 믿음에 있다던가 아니면 믿음에 있지 않다는 판단을 각자가 내리라고 경고합니다. 이웃이 이웃의 믿음을 판단하라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살펴볼 때에 믿음에 있는가 판단하라고 한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자는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아니면 믿음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상태인지를 정확히 잴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을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운전해 나가고 있다는 말이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내 생각대로 나를 운전해 나간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내가 일상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걸어나간다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것이요, 무엇이든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사는 자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지 않은 자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버림바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버림바 되었다면 그가 전한 복음에 의해 성도가 된 그리스도인들도 버림바 되었을 것이요 반대로 고린도 교인들이 사도 바울이 버림바 되지 아니했다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이라면 약한 가운데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강한 것으로 살리신 귀한 진리를 아는 수준의 믿음을 가진 자들이라 평가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2]두 번째로 7절부터 10절까지의 사역자의 기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경고를 통해 꼭 회개하기를 촉구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회개하도록 하나님께 기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악을 전연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 자체도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악에서 떠나 온전히 회복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만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선을 행하게만 된다면 자기 스스로는 어떤 형태로든지 버림을 받아도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역자가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 교인들을 제물로 삼는 경우도 있을 터인데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온전히 희생되더라도 교인들이 악에서 돌이켜 온전하게 되기만을 바란다는 분명한 소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구원의 진리를 거역하는 일은 전연 할 수 없고 반면에 진리를 위하는 일이라면 고린도 교인들은 높아지고 자기는 그들의 희생제물이 되어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하여져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여주시기를 진정바라는 것이라고 그의 기원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글로 써서 권면하는 것은 직접 만났을 때에 주님이 주신 권세로 엄하게 벌하지 않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징계에 대한 경고를 주고 있지만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은 징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징계를 피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이라면 너무나도 훌륭한 사역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3]세 번째로 11절부터 13절까지의 사역자의 권면과 축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권한다고 하면서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라, 위로를 받으라, 마음을 같이 하라, 평안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만일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온전하게 된다면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기쁨과 위로와 평안이 충만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믿음이 온전히 회복되므로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그들과 늘 함께 하시어 그들에게 기쁨과 위로와 평안이 항상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고린도 교회 무리와 함께 있기를 축원하는 말로 고린도 후서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얻은 구원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란 독생자 예수를 희생하면서도 우리를 구원하신 사랑이요, 성령의 교통이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성령을 체험할 수 있는 자라면 믿음 안에 있는 온전한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형제를 위해 사랑의 권면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수준 높은 신앙을 배웠습니다. 자기를 비난했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아만 온다면 자기는 버림을 받아도 좋다는 확고한 사랑의 권면의 교훈을 받은 것입니다. 나도 그 형제도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 날에 그 형제가 엄한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포기하지 말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사랑으로 권면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자기 스스로 믿음에 있는가를 시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면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을 수 있겠는지 책망을 받겠는지 스스로 시험해보고 만일 책망 받을 것으로 판단이 되면 책망 받을 일을 고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엄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세상 전도자들은 교인들을 향해 엄한 경고를 못하고 아부성 메시지를 강단에서 전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교인들 각자가 자기 스스로가 믿음에 있는가 시험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인 떨어질까 봐서 잘못을 지적하거나 경고하지 못하는 전도자만을 통해 자기를 비춰본다면 자기 검사에 오진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남의 믿음 말고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보고 잘못을 고쳐나가는 교인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자신을 시험하는 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남에게 복을 빌어주는 성도님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남에게 칭찬은 아끼고 비난은 쉽게 하는 우리들의 체질을 남에게 복을 빌어주는 체질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남의 집에 가던지, 전화를 하던지 편지를 하던지,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복을 빌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 역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남에게 빌어줄 복이 많이 있겠지만 어떤 복보다도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해달라는 축복은 최고의 복인줄 믿습니다. 일반 교회에서는 이 고후 13;13을 목사들만 사용하는 축도로 목사외에는 사용불가로 재한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구절의 사용권을 직접받았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입니다. 한번 따라서 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 찌어다.
온 성도님들이 이웃을 사랑으로 권면할 수 있고, 자신의 믿음을 살피며 남에게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성령을 체험하도록 복을 빌어주는 우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