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확신 – 갈라디아서 2:11-21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두 몇 권으로 되어 있습니까? 66권으로 되어 있지요? 그중 39권은 구약, 27권은 신약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비록 둘로 나뉘어져 있지만 신약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구약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신약도 읽지만 구약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구약을 읽어 나가다 보면 구약 중 율법이 나오게 되는데 이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인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혼동을 가져다주게 될 것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떤 것은 지켜야 하고 어떤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 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 생길 것입니다. 실 예를 들자면 레위기를 읽다보면 레위기 11장에 음식 중 먹어서는 안돼는 음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고기중에는 돼지고기를 먹어서도 않되고 죽은 돼지를 만져서도 안된다고 기록되어 있고 토끼고기도 부정한 고기로 정하고 먹지도 말고 죽은 토끼를 만지지도 말라고 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도 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는 중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와서 보니 레위기에 기록된 먹어서는 안되는 부정한 짐승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음식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된 일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었으므로 율법에서 금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고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깨끗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두 가지 대립되는 의견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일평생 지켜온 법인데 갑자기 비몽 사몽간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먹어도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베드로는 어찌해야할지 당황했으리라고 봅니다.

 

여러분들은 레위기에서 먹지 말라는 음식을 대할 때에 어떤 생각을 하시게 됩니까? 먹어도 되는 것인지? 먹으면 않되는 것인지? 먹어도 되는 것이라면 왜?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지? 조금 혼동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이 혹시라도 가지고 있는 의문을 온전히 씻어낼 수 있을 만큼확실하게 교훈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확신이 없어서 마음에 거리끼게 했던 모든 것도 해결 받고 또 구원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확신 없는 베드로를 책망한 바울(11-14) [2]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확신(15-21)입니다.

 

[1]먼저 11절부터 14절까지의 확신 없는 베드로를 책망한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두터운 벽을 헐어버리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므로 지성소와 성소사이의 휘장을 찢으심으로 만인이 제사장이 되도록 하셨고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드림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도록 하셨으며 유대인들도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받아드림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새 진리를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비몽사몽간에 불결한 짐승을 내려보내시고 이것들을 하나님께서 깨끗게 하셨으므로 잡아먹으라고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 하셨던 것입니다.

 

이 불결한 짐승을 깨끗이 했으니 잡아먹으라는 뜻이 무엇이었나요? 지금까지는 이방인들은 죄인들이요 부정한 사람들이니 그들을 접촉하지 말도록 되어 있지만 이젠 하나님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 하나가 되도록 깨끗게 하셨으므로 이방인들을 접촉하면서 부정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같은 형제로서 간격없이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베드로에게 계시로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가도록 지시했으며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전할 때와 똑같은 성령이 고넬료의 가정에도 내리고 방언의 역사가 일어난 사실을 베드로가 목격하고 이방인에게도 유대인에게나 똑같은 역사가 일어남을 알아차리고 그들에게 구원의 세례를 베푼 산 증인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구원의 천국 열쇠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서 처음 사용한 체험을 가진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방인 전도의 쎈타라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여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들어오자 이방인들과 접촉하거나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을 금한 율법을 어기고 있다는 비난이 두려워 음식을 먹던 자리에서 일어나 이방인들과 외면한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행동을 하니 심지어 이방인 전도에 힘을 쓰고 있었던 바나바까지도 베드로와 같이 행동을 했으니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스스로 택한 백성이요 약속의 백성이므로 예수를 받아드려도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과는 차별되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는 대다수의 무리들을 의식해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자신을 잃고 사람의 눈치를 보기 위해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이방인들을 더러운 죄인들로 취급해버린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자신도 실수를 저지르고 또 남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어 남들도 실수를 하게한 2중적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실을 보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어 크게 책망을 했다는 기록입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저로서 얼마나 통쾌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대중 앞에서 그의 실수를 지적하고 면박을 주었으니 어찌 보면 바울이 가짜 사도라고 비난했던 유대주의자들에게는 사도 바울의 사도직이 분명이 베드로보다 넘쳤으면 넘쳤지 못하지 않다는 증거를 보인 결과도 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2]두 번째는 15절부터 21절까지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확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히시되 유대인을 먼저 택하시고 후에는 이방인까지도 택하시는 구원의 계획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만민 구원의 깊은 진리를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아직도 율법에 사로잡혀 예수를 받아드린 후에도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방인들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도 받고 다른 율법적 의식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라 심지어 베드로같은 사도도 이미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진리를 체험하고도 옛날 율법의 종노릇으로 돌아가려하는 모습을 보게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고 있는 유대주의자들이나 이방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로움을 얻지 못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깨우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이제는 율법에는 완전히 벗어나야만 하고 전연 메이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유로 율법을 지키지 않아 만일 죄를 지은 결과가 된다면 예수님께서 죄를 짓게 한 것이란 말이냐고 하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율법을 잘 지킨 자기의 의로운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율법의 장벽을 헐고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왔는데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다면 그 율법에 의해 우리들은 다시 죄인으로 판정되고 말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알게 하고 죄라고 판정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법이 있는 한 법을 어긴 자는 늘 죄인으로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켜야하는 신세라면 늘 죄인으로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을 터이니 모처럼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왔는데 왜? 다시 과거의 법의 생활로 돌아가야 되겠느냐는 항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음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과는 무관한 자들이요 믿음 안에서 은혜로는 다시 사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끌어드리는 일은 내 행위로 의롭게 되어 보겠다는 것이나 율법으로는 도저히 의롭게 될 수 없으므로 온전히 율법에서는 벗어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어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신앙을 가르쳐주며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위선적인 믿음을 버리라는 교훈입니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이 보지 않을 때에는 이방인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함께 음식을 먹다가 유대인들이 오니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지 안으려고 이방인들을 외면을 했다면 얼마나 위선자같이 생각이 듭니까? 우리 신앙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돋보이게 하려고 실지로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확신도 없으면서 위선적인 행동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위선적인 행동을 삼가라는 교훈입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할 필요도 없고 누가 보기 때문에 선을 베풀지 못하는 것도 안됩니다. 성경에서 배운 신앙대로 확신 있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선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라는 교훈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이 복음도 받아드리고 또 율법도 지켜야한다고 하듯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해 본다면 복음도 있고 거기에다가 구약의 율법적인 것이나 교파적인 것이나 또는 미신적인 믿음이 첨가되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기는 나같이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을 것이며 나같이 믿지 않은 자들을 얕잡아볼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믿음에 따른 은혜뿐입니다. 내가 행한 어떤 의로운 행위 때문이 전연 아닙니다. 새벽 기도에도 열심을 내야하고 다른 집회에도 열심을 내야하고 헌금도 많이 내고 좋은 일도 많이 해야 하지만 내 구원은 그런 내 행위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내 행위는 하찮은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신해야 합니다. 내가 행했던 어떤 선행을 크게 생각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 아닌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버리듯이 말입니다. 복음에 어긋난다면 수십년 내려온 신앙의 전통도 버려야 합니다. 그 무엇이든 버려야 합니다. 복음과 반대되는 보든 과거는 버려야 복음이 복음으로서 내게 구원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리고 버렸다가 미련이 있어서 다시 과거의 옷을 꺼내 입는 불쌍한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되겠습니다. 복음의 진리를 맛보았으면 더욱 진리를 열심히 파고 파서 내 옛 것은 자꾸 버리고 점점 순수한 새것만을 간직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합당한 진리의 복음에 따라 사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