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일과 성령의 열매 – 갈라디아서 5:19-26

우리들은 고린도 전후서 말씀에 이어 갈라디아서 말씀을 연속적으로 소개받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만 해도 교회 내에 문제가 많은 교회였습니다. 교회내의 분파문제, 근 친 상간, 우상의 제물문제, 방언과 기타 은사문제, 예배에 있어서의 주의 만찬 문제, 유대주의 자들의 영향에 따른 할례 문제, 사도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무시하는 문제 등 세상에 있을 만한 모든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가진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교리적인 문제와 실생활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때로는 자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리적으로 풍부한 지식을 갖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할 때에 우월 주의에 빠져 있다거나, 반대로 어떤 자들은 성경적인 교리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자기의 헌신과 충성심만으로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자부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은 둘 다 절름발이 신앙인 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절름발이 신앙을 교정해주기 위해 고린도 전후서를 보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요사이 갈라디아서 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갈라디아서를 통해 올바른 성경적 교리를 일깨워주고 또 실생활에서 말씀이 적용된 삶을 살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유대주의 자들에 의해 교리적인 혼선을 빚고 있는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의 성도들에게 1장부터 4장까지 에서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교리적인 지식을 넣어주었으며 5장부터는 ‘육의 일을 벗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라’고 하므로 실생활에서 말씀을 실천해야 함을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교리적인 지식을 가진 신앙과 또 말씀이 적용된 실생활을 겸비한 신앙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임을 고린도 전후서와 갈라디아서를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소개되는 말씀은 육의 일을 벗어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자는 교훈입니다. 이미 교리적인 지식을 온전히 얻은 우리는 이제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기독교인다운 삶을 사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감동을 받아 날마다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있으시어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많은 기쁨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우리가 받은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육체의 일(19-21) [2]성령의 열매(22-26)입니다.

 

[1]먼저 19절부터 21절까지의 육체의 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지난주부터 육과 성령에 대해 교훈 받고 있습니다. 육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욕심은 육의 욕심을 거슬린다고 되어 있는데 잘못 이해하면 우리들의 육체와 영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가 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우리들의 육체는 성령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들의 육체 자체가 죄악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육체는 오히려 거룩한 성령이 사시는 집인 것입니다. 5장부터 강조되고 있는 것은 육체 자체가 죄악이라는 것이 아니라 육체 속에 담겨져 있는 마음이 성령에 따라 통제되지 않고 육의 더러운 욕심에 따라 행해진 육체의 일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난주에 자유와 방종에 대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율법과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자들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인정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을 받는 자가 되거나 아니면 교회는 오래 다녔어도 계속 자기의 자유를 방탕과 방종의 삶을 살므로 심판 날에 안타깝게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 못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사랑으로 성령을 따라 살라는 교훈을 사도 바울이 우리들에게 지난주에 주었고 오늘은 무엇이 육의 일이고 무엇이 성령의 열매인 것을 소개해 주면서 육의 일을 벗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 에서는 우리 성도들이 죄를 죄인지 모르고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알고 무엇이 육의 일 즉 죄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피해야할 죄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일을 벗어버리라는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죄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째는 성적인 범죄, 둘째는 우상 숭배, 세 번째는 대인 관계입니다. 첫 번째 지적하고 있는 육의 일은 성적인 문제인데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음탕한 생각을 하거나 실지로 음행을 저지르거나, 음탕한 비디오나 보고 음담 패설을 지저분하게 늘어놓는 것은 다 여기에 해당이 되겠습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심지어 크리스천도 그 음탕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죄 감각이 마비되어 음탕한 모든 행위들이 죄로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이런 것들을 죄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지적된 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여기에서 지적된 것은 우상 숭배와 술수입니다. 우상 숭배와 술수는 하나님 이외의 것을 하나님같이 섬기는 모든 일과 자기가 하고 있는 어떤 일이나 자기가 갖고 있는 그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것이며, 점치고 사주보고 무당을 통해 무엇을 알아보는 모든 미신적인 행위를 마라는 것입니다. 예언을 받겠다고 기도원에 있는 예언자를 찾아다니는 것도 기독교를 빙자한 점쟁이나 다름없음으로 이런 일을 삼가야 합니다.

 

세 번째로 지적된 육의 일은 대인관계입니다. 대인 관계에서 원수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분냄과 당짓는 것, 분리함과 이단,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투기한다는 말은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뜻입니다. 이단이란 잘못된 신앙과 지식을 가지고 나누어진다는 말입니다. 술 취함이란 술만이 아니고 도박이나 또는 약물에의 중독도 말하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서로 수군수군하여 당을 짓는 일이나 술 취하고 도박하고 마약등 약물에 빠져있는 모든 행동이 육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이런 육의 일을 하지 말기를 경계하나니 이상과 같은 육의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육의 욕심을 자제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보다는 육의 욕심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자기가 택한 길로 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로부터 자유를 얻게 해주셨는데 그 참된 자유를 방종으로 바꾸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2]크게 두 번째로 성령의 열매가 소개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희락이란 기쁨을 말하는 것이며, 양선이란 선한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쁨을 누리는 일입니다. 내 마음이 평화롭고 남과 평화를 누리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두고 참으신 그 참음을 생각하며 남에 대해서 오래 참고,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사랑하신 사실을 생각하여 기회만 있으면 남에게 자비를 베풀고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떤 사회에서든지 남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충성을 하며, 이웃에게 관용하며, 이웃에게 올바른 화를 내며 자제력을 가지고 참으며, 육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대로 따라가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눌러 이겨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받아드렸다고 우리들의 육의 욕심이나 육의 성품이 온전히 하나님의 상품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들은 성령의 힘을 힘입어 육의 욕심을 이겨내고 성령의 욕심에 따라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할 뿐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에 맞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고 변화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똑 같은 육의 욕심을 가진 자이지만 그리스도의 피를 이어받은 상속자답게 자부심을 갖고 육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령의 소욕에 따라 살아나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듯 우리들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발을 맞추어가기 위해 우리들의 옛 속성인 육의 모든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자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성령으로 사는 삶이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육의 일이 얼마나 무익하며 나를 죽이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 중에 육의 일인 성적으로 문란하고 음탕한 일이나, 우상을 섬기거나,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거나, 당파를 나누고 분당하거나, 이단에 빠져들거나, 술 취하고 마약하고 방탕한 일로 성공했다거나 그런 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람 보았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남들은 불쌍하고 언짢게 생각을 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이 세상에는 그런 육의 일을 행함으로 집안이 망했거나, 평생 육체적인 병으로 고생을 했거나, 평생 참 기쁨이 무엇인지, 참 평화가 무엇인지, 충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다 죽는 자들일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행복도 누릴 수 없을 것이므로 두 세상에서 모두 실패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선 좀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어 육의 욕심을 이겨서 육의 일을 벗어라 는 것입니다.

 

둘 째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 욕심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반대로 내 욕심을 거슬려 성령의 욕심에 따라 살므로 당장에는 좀 불편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원수나 내 이웃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었거나 내게 잘못한 자에게 온유한 마음으로 용서해주었다거나, 이웃이나 가족과 화평하지 못했던 자가 화평을 이루었거나 지금까지는 이기적인 삶을 사느라 참 기쁨을 몰랐는데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 관용하며 이웃과 평화하고, 지금까지는 눈가림만 했던 사람이 이젠 충성을 알고 실천하며, 술 취하고, 마약과 도박에 빠지고 방탕했던 자가 그런 육의 일을 벗어나므로 누릴 수 있는 참 기쁨을 누리게 된다면 이것이 첫째의 기쁨이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누릴 수 있는 복이 예비 된 것입니다. 육의 일을 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불행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불행인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남이 누리지 못하는 참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행복을 누릴 보장이 된 것입니다.

 

성경적 교리만 알고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신앙도 절름발이 신앙이며, 성경적 교리를 모르고 성령의 열매만 강조하는 신앙도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성경 몇 번 읽었다고 자랑을 하는 대도 생활이 따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우며, 또 교파적인 교리에 굳어져 있고 성경적 교리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름다운 성도의 생활만을 최선의 것으로 알고 만족해하는 신앙인을 보면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꾸준히 먹여드리는 말씀을 충실히 받아드려 지식적으로도 온전히 소화하고 그 소화된 말씀을 생활로 실천하여 육의 일을 벗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므로 이 세상에서도 많이 행복하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영원히 행복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