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에서 강해 설교를 시작해 온 이래 그 동안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을 거의 다 마쳤고 다루기 힘든 계시록을 마쳤으며 오늘부터 마태 복음이 시작됩니다. 계시록은 어려워서 등한했고 마태복음은 잘 아는 것이라 오해하여 등한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약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면 자연히 마태복음부터 읽게 되므로 신약 전체를 다 못 읽고 그만 둔다 하더라도 새로 계획 세워서 읽기 시작하면 또 마태복음부터 읽게 되므로 마태복음을 꼭 잘 아는 것이 아니면서도 마태복음 하면 잘 아는 것 같이 느껴지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마태복음은 나에게 덜 부담되는 책으로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첫 설교를 준비하면서 계시록이나 마태복음이나 어렵기는 마찬 가지였으며 말씀이 주는 교훈에 큰 감동을 받고 지금까지 전연 눈여겨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며 뜻을 깊게 생각지 아니하고 읽어 버렸고 말씀을 가볍게 받아 드렸던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반성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한계시록 강해를 마치게 하시고 이제 새롭게 마태복음 강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를 드리면서 마태복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온 성도들도 오늘부터 마태복음의 비밀, 마태복음의 계시를 우리가 알도록, 배우도록, 실천하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마태복음”에 대해 좀 생각해 보고 본문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책을 기록한 기록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통 신학 책에는 성경 66권의 기록자를 저자라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저자이시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자들을 기록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누구입니까? 마태입니다.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하나인 마태입니다. 성경에는 마태가 기록자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가 이를 부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태에 대해 마태복음에는 ‘마태’라 이름하고 있지만 마가복음에나 누가복음에는 ‘레위’란 이름으로 불리웠으며 그는 유대인들이 미워하던 세리의 직업을 가졌으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훌륭함을 보였으며 제자로 부름을 받고 이를 기쁘게 여겨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한 사람입니다. 우리 중에 예수 믿고 기뻐서 잔치를 하신 분 계십니까? 세리 마태는 그렇게 했습니다.
두 번째로 마태복음이 쓰여진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은 히브리서와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증거 하기 위해 기록되어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어 이스라엘 나라를 재건하고 회복하여 세계를 다스리리라는 소망을 갖고 있었는데 그들이 바라고 있는 그 메시아가 바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이시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 100개 이상을 인용하면서 이를 증거 해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마태복음이 쓰여진 연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맨 앞에 있는 책이 마태복음이지만 맨 앞에 있다고 제일 먼저 쓰여진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마태복음 다음에 있는 마가 복음이 더 먼저 쓰여졌고 신약 성경의 아주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데살로니가 전서가 주후 50년-52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신약 성경 중에서는 제일 먼저 쓰였습니다. 마태복음은 주후 60년-70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예루살렘 성의 멸망 직전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마태복음의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약 말라기서와 신약성경 문서까지는 약 400년간의 공간이 있는데 마태복음은 400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으며 복음서 중 제일 먼저 나오므로 제일 복음서라고도 하고 마태, 마가, 누가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 하므로 공관복음 중 하나이며 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을 4 복음서라 하므로 마태 복음은 사 복음서 중 하나가 되겠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교회라는 용어가 여러 번 쓰여져 있다는 것과 대개의 신약 성경은 희랍어로 쓰였고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였는데 마태복음은 히브리어로 쓰였고 희랍어로 번역이 된 것이라 합니다. 또 4 복음서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되 마가는 종 되신 예수, 누가는 인자 되신 예수, 요한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로 부각을 시키고 있는데 마태는 왕 되신 예수로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문 마태 1:1-17 까지는 족보 이야기입니다. ‘누구는 누구를 낳고’로 일관된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42대의 족보를 14대씩 세 구분하여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 할 때까지, 또 바벨론으로 이거 한 후 그리스도까지로 구분하여 열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 한 분 한 분에 대해서 연구해 보아야 할 특별한 의미는 없을 것이며 본문이 주고자 하는 본래의 뜻을 중심 하여 이 족보의 특징을 찾고 이 특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족보가 줄 수 있는 큰 의미를 전연 생각하지 아니하고 족보 부분을 건너 뛰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이 족보가 주는 뜻을 찾는 이들에게는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 족보의 특징을 4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의 족보
[2]장자 중심의 족보가 아니라 택한 자 중심의 족보
[3]죄진 여인도 들어 있는 아름다운 족보
[4]42대를 14대씩 3단계로 나눈 족보입니다.
[1]맨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의 족보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에 들어 있음을 퍽 자랑스럽게 생각해 오고 있으며 다윗의 씨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서 살아오고 있었는데 예수가 바로 예언된 메시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대상이 유대인들임으로 예수님의 족보의 시작이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아브라함이나 다윗 왕의 후손임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왕족이요 정통 족보를 갖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 복음 3장에서도 예수님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예수님부터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즉 마태 복음은 아브라함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려오고 누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태 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어진 것이요 누가 복음의 대상은 온 세상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또 두 족보에 차이가 있는데 보통 말하기를 마태 복음은 예수님의 육적 아버지 요셉의 계통으로 쓰인 것이고 누가 복음은 어머니 마리아의 계통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기록이 되지만 예수님은 사람의 혈통은 전무합니다. 그 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철저하게 하나님의 혈통이요 멜기세덱과 같이 인간의 세습적 성분이 없는 그런 분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성씨의 주님이시오 모든 민족의 주님이시며 모든 인종의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장자의 족보가 아니라 택한 자의 족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의 형이 에서이며,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장남이 르우벤이므로 장자의 이름이 기록되어져야 마땅하나 그들 대신 택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으로만 태어나면 구원 얻는 자가 아니고 어떤 민족이든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야 택한 백성이요 구원 얻는 자이며, 세상에서 먼저 빛을 본 자가 장자나 상속자가 아니라 주님의 택함을 받은 자가 장자요 상속자라는 강력한 설교가 주어진 셈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어 그의 족보에 들게 되므로 우리는 참 이스라엘이요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왕족 다윗의 자손으로 양자 되어 축복의 우산 속에 들게 된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죄진 여인도 들어 있는 아름다운 족보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람의 수를 셀 때에 여자나 이이들은 수에 넣지 안았습니다. 사람 수가 10명이라 했다면 이 말은 여자나 아이는 빠지고 남자만 10명이라는 말이므로 실지의 머리 수는 30명이 넘게 되는 수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5명의 여인 이름이 나오는데 그중 한 분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이고 나머지 네 사람은 다말, 라합, 룻, 밧세바입니다.
다말은 야곱의 아들 유다의 큰 며느리로서 자녀가 없이 남편이 죽으므로 히브리 풍습으로 둘째 아들에게 대를 잇도록 했으나 둘째도 자녀가 없이 죽었고 갓 태어난 셋째가 장성하기를 기다렸으나 시아버지 되는 유다가 셋째 아들을 다말에게 주어 대를 잇게 해 주지 않으므로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와 동침하여 대를 이을 자식을 얻은 여인이요, 라합은 이방 여인이며 기생이었으나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 주어 하나님의 군대가 승리할 것을 믿었던 여인이었으며, 룻은 이방 모압 여인으로 시어머니께 효도했던 여인이요, 밧세바는 우리야의 아내로 다윗이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보내어 죽게 하고 자기 처를 삼아 솔로몬을 낳게 한 여인입니다. 이와 같이 유대의 족보에 들 수 없는 여인들이 또 심지어 더러운 죄인이었는데도 족보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 족보에는 좋은 것만 넣고 나쁜 것은 빠지겠지만 주님의 족보에는 왕이었던, 기생이었던, 창녀 짓을 했던 회개한 자는 들어갈 수 있는 족보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의 구세주요, 죄인을 위해 오셨고 죄인의 친구 되신다는 분명한 진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4]네 번째로 42대를 14대씩 세 단계로 나눈 족보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 이주까지 14대, 바벨론 이주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로 나누고 있어 총 42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3번째 단계를 실지로 세어 보면 13대 밖에 되지 아니하며 2번째 단계에서는 8절에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라 하여 웃시야가 요람의 아들같이 보이나 그 중간에 3대가 빠져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에 ‘낳고’란 꼭 부모와 자녀 관계로서만 볼 수 없고 또 14대란 7의 배수로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어떤 기간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의미로 받아야 하고 꼭 14대씩이었다는 고정 관념은 버려도 되겠습니다. 다만 바벨론 이주 이전과 바벨론 이주 이후로 나누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3-4차에 걸쳐서 이방 나라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비극이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므로 일어났던 것입니다. 주님 오시기까지 400여 년간은 말씀과 계시가 없는 암흑의 시기였었고 희랍의 지배, 로마의 지배 등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구한 운명을 살았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상당한 기간 후 즉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본문,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얻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주님의 족보는 살아 있는 자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세상 족보는 좋은 것만 기록하는 족보이며 태어났다가 죽은 자들을 기록해 준 족보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족보는 그의 신분이 왕이었던 기생이었던, 창녀와 같은 더러운 자였던 상관없이 넣어 주는 자비의 족보요, 어떻게 태어났던 어떻게 살다 죽었든 상관없이 육체는 죽었으나 영혼은 살아 있는 자들의 족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내 이름이 내 후손들에게 유명한 이름인 ‘대통령이나 대법관이나 국회의원을 지내다 죽었다는 사실이 족보에나 비석에 새겨지는 것보다 비록 그 이름은 거지거나 죄인이나 아니 남의 종노릇을 하며 살았다 하더라도 살다가 주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지금 살아 있는 자란 이름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유명한 이름을 갖고 현재는 죽어 있는 자들의 족보에 드는 것보다 현재 살아 있는 자들의 족보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지로 살았지만 나사로는 산 자의 명부에 올랐으며 기생으로 살았으나 그도 역시 산 자의 족보에 들어 있음같이 우리들도 현재 부자로, 현재 유명한 자로 살다가 죽은 자의 족보에 드는 것보다 산 자의 족보에 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자기 죄를 내 놓고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분이 지금 무엇이든지 산 자의 족보에 들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족보에서 42대를 소개해 주었는데 42대라면 길고 긴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통을 다 지나게 하시고 결국 이스라엘에게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포로 생활의 암담하고 고달프고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 개인 개인에게도 짧은 60-70 평생에 어떤 이유로든 답답하고 빛이 없는 암흑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랑하는 유대인들에게 빛 되시고 소망되시는 메시아를 주시듯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중에 그를 따르고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빛과 소망을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지금 답답하십니까? 지금 어둡고 침침하여 무엇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믿고 구하며 때를 기다리십시오. 빛이 나타날 때가 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고 기다리는 자에게 빛 되시는 주님께서 어둠을 제거해 주실 것이며 보이지 않던 것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구원의 계획에 쓰임 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기까지 42대를 거쳐오시는 동안 각계 각층의 인물들이 쓰임을 받았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생도, 창녀 같은 이도, 이방 여인도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러 모양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형편이 어떻든 우리들 각자도 그들과 함께 쓰임 받는 자들의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지혜, 학벌, 지식, 금전, 우리들의 젊음과 늙음, 건강 모두를 주님께 바쳐서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뤄지는 사역에 쓰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것들이 온전히 주님께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족보에 들며 주님 안에서 소망을 가지며 주님께 쓰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