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의 사역 – 마태복음 3:1-12

지난주에 마태복음 2장을 마쳤고 오늘 3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2장과 3장은 1장 차이이지만 햇수로는 30년 정도 지난 후의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는 대략 AD27년경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8일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할례를 받으셨고 또 12살 때 유월절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종교 지도자들과 토론한 사실을 찾아보게 됩니다. 신약 성경에 그 이상 예수님의 성장 시기를 기록해 주고 있지 않고 이제 30세쯤 되어 일하실 때가 되어 세상에 나타나시고, 그의 사역을 시작하는 마태복음 3장부터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예수님의 모습을 뵙게 되겠는데 오늘은 주님이 일하기 시작하기 앞서서 주님이 오시어 일하시도록 준비 역을 맡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세례 요한의 소개

[2]세례 요한의 선포

[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경고

[4]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

 

[1]세례 요한의 소개

누가 복음에는 그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버지는 사가랴 제사장, 어머니는 아론의 후손 엘리사벳, 엘리사벳이 나이 들어 아이를 날 형편이 아니나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세례 요한을 잉태케하는 출생 자체가 사무엘이나 이삭이나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획 속에서 출생하게 됩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나셨다고 했지요?

천사로부터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명령까지 받았는데 다른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 세례 요한이라 부름. 그는 광야에서 성장했습니다. 광야란 거친 빈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요단강 좌우의 사막 같은 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은 작은 마을들이 있는 곳, 한적한 조용한 곳, 선지자로서 활동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위해서는 적절한 곳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번거로운 대 도시가 아니고 하나님과 시간을 갖기에 너무 좋은 장소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가까이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곳, 광야. 여러분도 늘 마음을 광야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만나며 생을 하루하루 살므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가 천국 하나님 가까이 계시고 하나님과 늘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4절에 보니,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띠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을 메뚜기와 석청이라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낙타 털로 짠 옷으로 잘 다듬어진 옷이 아니라 거칠게 짜진 옷, 가죽띠는 통으로 된 옷을 묶을 수 있는 그런 띠를 둘렀고, 음식으로는 가장 서민이 먹는 메뚜기 그리고 석청이란 야생 꿀, 들 꿀, 나무나 바위 뜸에 벌들이 만들어준 자연 꿀을 말합니다. 그의 집은 광야, 옷은 광야에 어울리는 약대 털옷,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 선지자로서 가장 처절한 모습입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모습을 따른 것 같습니다. 그와 비교하며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먹고 있는 나를 생각하며 너무 호화로운 자신을 비판해 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그의 사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3절에 보니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의 사명은 “소리”“역할” 곧 오실 주님을 소개하고 그가 오실 길을 닦는 준비자의 사명 주님은 곧 “말씀”이시오, 세례 요한은 “말씀” 오신다고 알려주는 “소리” 즉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전도자들은 “소리”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스스로 “말씀”역할을 하여 근본의 자리를 빼앗는 사이비 지도자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순교 마가복음 6장에 기록된 증거로서 헤롯(대왕의 아들 안디바)이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기 아내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바른 말을 하므로 자기 생일 잔치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축하 춤을 춰주었는데, 그 딸에게 약속하기를 네 요구대로 다 들어주겠다고 할 때, 헤로디아가 세례 요한의 머리를 원하므로 목을 베에 소반에 담아 선물한 일로 순교 당했던 것입니다. 사악한 이 사실에, 하나님의 심판 때에 목 베임을 당한 세례 요한을 살리시고, 요함의 목을 베고 또 베도록 요구한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게 되실 것을 믿으십시오.

 

[2]세례 요한의 선포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기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사이의 공백이 약 400년이 되는데 400년 만에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결국 세례 요한은 말라기에서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Vision은 천국이요, 권면은 회개였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마태는 천국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시고, 천국이 오고 있으니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주님을 만날 수 없으므로 회개를 선포한 것입니다. 400년 동안 선지자의 메시지에 갈급했던 백성들에게 그의 천국 선포, 회개 선포에 큰 감동을 주었고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5절에 보니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이 민족적으로 하나님 앞에 속죄는 있었으나 개별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주님의 이름으로 받게 될 구원의 세례와 분명히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요, 준비와 상징적인 영적 세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얻고 성경을 선물로 받는 물세례, 구원의 세례와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요한의 세례 받은 자들이 다시 세례 받은 예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요나가 니느웨성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선포했을 때 의외로 그 메시지를 받아드려 온 국민이 회개한 사실이 있는데 역시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고 메시지를 듣고 이곳 저곳 지방에서 몰려와 다 세례를 받았다고 반응이 있었음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경고

경고 받는 대상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들입니다. 바리새인이란 율법과 구전된 조상들의 모든 전통을 엄격히 지키나 율법의 정신 또 내면적인 경건을 무시하고 형식주의 적인 위선과 외모중시, 의식주의로 전락한 자들 그리스도에 의해 책망을 많이 받게 되는 무리요, 사두개인들이란 모세 오경 외에 다른 것은 믿지 않으며 내세도 부활도 믿지 않는 부류, 수는 바리새파 보다 적으나 귀족, 제사장 종파에 속한 자들로 잘 믿는다고 교만한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세례 받는데 나아오되 어떤 이는 종교 지도자들에 보고하려고 조사 왔거나, 구경 왔거나 아니면 세례만 받으면(형식적으로) 천국에 가깝다고 나온 무리들입니다.

이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 즉 뱀의 자식들, 다른 말로 마귀 사단의 자식이라고 아주 거치른 호칭을 사용하여 책망을 합니다. 무슨 근거로 너희는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하더냐? 형식적으로만 회개하고 세례 받지 않고 회개한 자답게 행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택한 자이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고 믿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발에 밟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도 있다. 이미 심판의 때가 행위의 변화가 없는 사람, 즉 열매가 없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방인들에게만 내린다는 생각하지 말고, 조상들의 의로움이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등의 문서 중 랍비의 문서에서는 ‘이스라엘 중 가장 가난한자도 귀족이다. 저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할례를 받는 자 중에 지옥에 간 자가 없다’는 등을 믿고 있는 이들에게 대담하게 박살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담대함의 결과로 순교를 당했지요. 요약하면 버린 돌과 같이 여기는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들어 쓰시기 원하면 택한 백성이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도 있고, 아브라함의 자손도 돌과 같은 이방인이 되게 할 수 있으니 교만하지 말고 형식적으로 믿는 체하지 말라. 심판 때는 형식주의자는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는 경고였습니다. 믿으십시다 아멘.

[4]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

세례 요한은 높고 예수님은 여자가 나은 자중 제일 큰 자라고(마11:11) 칭찬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칭찬 받는 세례 요한은 철저히 자기의 위치를 알고 주님을 높이고 자기는 낮춘 사실을 보고 칭찬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난 세례 요한을 보고 “메시아”라 오해할 때 자기는 주님의 신을 들고 다니는 종도 되지 못한다. 그는 나보다 크시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쇄하여야 한다고 자기는 메시아 되시는 주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엄격한 차이가 있음은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철저히 주님이 오실 길을 정리한 자기의 사명 감당한 훌륭한 종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말씀”을 듣도록 소리를 내어 듣는 이들의 귀를 준비하신 참된 종이 있습니다.

그가 본문에 주님은 소개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나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물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은 불에 태우실 거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성경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말은 오순절에 내린 성경과 연관지어 성령과 불을 같은 의미로 받아드리는 학자들이 대부분이나 저는 성경의 세례는 오순절이나 고넬료 가정에 내린 성령을 만나고 불 세례란 쭉정이가 태워질 불의 심판으로 해석을 내리는 것이 보다 주님의 전체 사역을 보에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님은 분명히 나보다 크시고 능력 있으시고, 구원자이시고, 심판자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어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고 진리와 거짓은 구별하고, 진실과 위선을 구별하는 심판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자이시오, 심판자이신 주님을 선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종이 지녀야할 참 모습을 세례 요한을 통해 발견했으니 종된 우리 모두는 그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의식주의 모범, 즉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살림을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자답게 정말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주님, 가난한 이웃 생각하여 검소한 생활, 나그네답게 치장해야 하다는 교훈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먹는 것, 입는 것, 살림 더 줄이고는 살 수 없습니까? 아니, 세상 사람들 쳐다보니 더 높여야 하겠습니까? 세상사람 쳐다보지 말고 세례 요한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고 내 삶은 검소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겸손하며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조금 알면, 조금 인기 있으면 교만하기 쉬운데 철저히 말씀이신 주님의 “소리”로서의 자기 위치를 지켰고 주님은 흥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는 그는 나보다 크시고 능력이 어떤 교회 지도자나 교인들의 실패는 교만입니다. 돈 좀 있고 건강 있고, 학벌 있고, 경험 있고 지위 있고 아는 사람 많으면 교만해 지게 되고, 교만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남게 됩니다. 처음부터 겸손 끝에도 겸손, 겸손한 자는 늘 서있으나 교만한 자는 패망하게 됨을 진심으로 믿으시고 언제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직업, 지위,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내, 좋은 학교 그런 것 때문에 교만해지며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좋은 생각을 갖고 겸손하십시다.

 

세 번째는 진리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 “독사의 아들아”라고 진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잘못도 지적하고 순교 당했습니다. 이 삶은 나 잘 먹고 나 살기 위한 삶과 전연 다른 삶이요, 말씀인 그리스도 증거하고 진리라면 담대하게 선포하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이 다 세상적이고, 변질된 진리를 좋아하므로 진리를 거절한다 하드라도 세례 요한 모범을 배워 진리를 담대하게 외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는 것, 살림살이, 더 겸손하게 살며 주님의 재림을 가다리며 사는 사람같이 살아보시겠습니다. 가끔 교만해지기 쉬운데 늘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을 유지해 보시겠습니다.

 

세상의 진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비록 인기는 없다 하더라도 진리를 외치는 충성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생각하며 담대한 증거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