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 (2) – 마태복음 5:7-12

왜? 예수를 믿느냐고 말할 때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의 대답은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세의 어떤 축복보다는 미래의 축복을 강조해 줌으로 신앙이 좋은 자로 돋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리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판정을 내려야 성도들이 예수 믿는 목적에 대한 정답을 분명히 이해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정답은 죽은 후에 천국 가기 위할 뿐 아니라, 현세에도 천국의 생활을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현세에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해 하는 천국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한하여 미래의 천국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미래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세에 천국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는 답이 더 정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현세에 천국 생활을 한 사람은 미래의 천국 생활은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생활을 한다면서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또 누구 때문에 기쁘지 않고 날마다 속상하고, 슬프고, 괴롭고 하는 생활이 연속된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전연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 주님과 연관이 없는 결과가 되므로,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주님과 연관이 없는 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주님께서 산상 설교를 통해 8가지의 복을 소개해주고 계시는데 8가지의 복은 결국 하나의 복을 여러 가지로 해설을 붙인 것에 불과하고, 복 있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인 사람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복 있는 자란 오늘도 천국이요, 내일도 천국 생활이며, 미래에도 천국 생활을 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말을 바꾸어 말한다면 복 없는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미래에도 천국 생활을 못하고 있는 자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통해 길을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그대로 하면 천국 생활을 하게 하고, 그는 날마다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요? 마음이 늘 가난해야한다. 자기 잘못을 늘 애통하는 자가 되어라, 온유한 자가 되어라, 옳은 자가 되고, 옳은 일을 하고자 하고, 늘 목말라 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려고 노력했고, 죄를 애통했으며, 남이 내게 뭐라 하던지 나는 남에게 온유했으며, 지난 주간 동안 의를 위해 목말라 했다면, 지난 주간은 승리의 주간, 합격의 주간, 행복의 주간이 됐을 것입니다. 주님의 진리이시므로 이 말씀대로 실천한다면 축복, 즉 행복은 보장이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8복중 나머지 4복을 소개하게 되는데 이 소개되는 말씀을 실천하여 우리 성도들이 일상생활에서 늘 행복한 삶을 살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소개될 4가지 복의 조건은

 

[1]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고(7절)

[2]마음이 청결한자가 복이 있으며(8절)

[3]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고(9절)

[4]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10절)

하나하나 그것이 주는 뜻과 받는 복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긍휼히 여기는 자가 받는 복입니다(7절)

7절에 보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딱딱하고, 용서 없고, 냉혹한, 무정한 것과 반대되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남을 용서하는 마음, 남을 돕고자하는 마음, 남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벗은 자에게 입히는 것, 병들었을 때 찾아보는 것을 말합니다. 네 번째, 돈으로 돕고, 말로 위로하며, 돈도 말도 없을 때는 눈물로 돕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가난과 고통과 시련을 당하는 자들의 입장에 서서 사랑을 가지고 그 어려움을 나누는 것, 짐을 서로 지는 것, 물질과 마음과 눈물을 나누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신다는 축복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이지만 이미 긍휼을 베풀어 주셨지만 앞으로 계속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필요로 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기 바라는 자는 마땅히 이웃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긍휼이 없는 심판이 주어짐을 약 2:13에서도 말해 주고 있으며 마 18:34-35는 하나님의 화와 노가 주어짐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2]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8절)입니다.

8절에 보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누가 마음이 청결한 자일까요? 청결이란 순수하고 깨끗하고 용서된 거룩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심령의 분열 없이 일편단심으로 주님을 나의 주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성도의 마음,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늘 영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마음입니다. 청결과 반대는 위선과 허식입니다.

이런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고 맸으니 지금은 거울을 통해 보는 것 같으나 미래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 같이 볼 것이란 것입니다. 반대로 때묻은 마음은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하고 의로운 것을 알지 못하기에, 진리를 분간 못한 그는 하나님을 결코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청결한 마음만이 하나님의 존재와 속성을 인식하고 마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그의 영혼이 채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교제가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요, 하나님과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기가 쉽지 않지만 청결하기 위해 부단히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송하며, 청결한 자와 사귀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화평케 하는 자의 복입니다(9절)

9절에 보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화평케 하는 자 입니까? 첫째,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 화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또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남을 지도하는 사람,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회복으로 이루어진 진정한 평화를 가진 자요. 둘째, 자기 스스로 마음의 선과 악의 갈등에서 악을 이기고 선을 위해 계속 싸워 나가는 사람이요. 셋째, 평화에 대한 열정을 가진 자로 모든 다툼을 피하고 더욱 나아가서 타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 다툼, 싸움에 지기에게 위험이 있어도 각오하고, 수습하려는 평화의 용사, 즉 자신도 반항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항하는 자들을 설득하며, 화평케 하는 자, 나를 적대시하는 자와 화목 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의 반대말은 비방, 중상, 분쟁, 모략이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아들로서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과 모든 인류가 화목 되도록 하셨는데 똑같은 임무인 화평케 하는 자가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화평을 깨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도, 교회도, 사회도 가정도 화평을 깨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깨는 자는 아들이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아들이라면 마땅히 온유해야 하고, 의를 사랑해야 하며, 마음이 청결해야 하고,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함과 동시에 화평케 하는 자가 꼭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복입니다(10절)

10절에 보니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과 같은 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갖는 독특한 복입니다. 핍박을 받아야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그 핍박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성도들이 악을 거부하고, 선을 고수함으로 원한과 분노를 사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과 타협하면 면할 수 있는 길이지요? 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 하나님 나라 확장 위해 고초 당하는 것, 예수 때문에 명예,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욕설, 조롱, 또 호통 침을 당하고, 때로는 상처를 입고, 배척을 당하고, 공격받고, 고문당하고, 적대감을 받으며, 때로는 중상, 모략, 저주까지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딤후 3:2에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했습니다. 세상이 악하고 모두 불의를 행하고 있는데, 불의를 불의라고 그 지적하고 완전히 검은 마을에 혼자만 하얀 색이면 시기, 질투, 분노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주님 때문에 욕을 먹고, 악한 말을 듣고, 핍박을 당하는 자에게 복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상이 클 거라는 것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다 겪은 일이므로 참고 이겨 라는 것입니다. 복수, 보복, 이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당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상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어떤 교훈을 받습니까?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소개하시는 복을 누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 복이 무슨 복을 말하는 것인지 실천해 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주님 앞에서야 할 형편에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내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가난과 약함을 보충해 주는 긍휼히 여기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루하루 긍휼히 여겨 주시고, 주님 심판 날에 긍휼히 여겨주시지 않는다면 어찌되겠습니까? 이웃에게 긍휼을 인색하게 할 때 우리도 긍휼 없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만큼 마음이 정결 하라는 것입니다. 깊은 바다이지만 맑은 바다는 바다 깊은 속이 다 보이듯이 티나 흠이나 섞인 불순물이 있어 내 마음을 나도 모르고 내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없다면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날마다 회개하며 말씀으로 진리로 마음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어 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 하는데 최선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과 화목할 뿐 아니라 이웃들끼리 불목하고 있다면 내겐 손해가 되더라도 화목하도록 중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핍박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진리를 수호하고 악을 배척하라는 것입니다. 현 세상에서 인정받고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주님이 주실 상을 소망하며 핍박을 각오하고, 오히려 선을 행하다 당한 핍박을 즐거워하라는 교훈입니다.

하나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긍휼히 여김 받고, 싶지만 남을 긍휼히 여기기 어려우며, 세상 욕심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내 마음을 정결케 유지하기 어려우며, 늘 나는 옳고, 이웃은 옳지 않게 느껴져서 이웃과 갈등이 생겨 화평을 유지하기 힘들며, 잘못이 없는데 핍박을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못할 때는 지상 최고의 복이요, 행복을 실지로 누리지 못하고 겨우 우리는 세상맛만 보고 말게 되어 기독교의 천국의 경지에는 못 가보고 만다면 죽은 후의 천국은 또한 보장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믿고, 어떤 주장을 하던지 간에 긍휼, 청결, 화평, 핍박이란 단어들을 머리에 입력시켜 놓고 행복, 천국을 위해 꼭 해내야 할 일임을 명심하고, 실천하며, 믿음의 열매를 따먹는 최고의 복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