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 자 예수 그리스도 – 마태복음 5:17-20

우리들에게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라는 예수님께서 앞으로도 주일마다 주어질 교훈들을 가볍게 듣지 말고, 귀담아 듣고, 들은 말씀을 다시 성경을 통해 묵상하여 그것들을 하나하나 내 일상생활에서 꼭 실천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이유를 오늘 본분에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하라는 교훈을 받기 전에 마음이 가난하라, 애통하라, 온유하라, 의에 주리고 목말라라, 긍휼히 여기라, 마음이 청결하라, 화평케 하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아라 라는 귀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이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많이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듣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듣는 것으로 그치는 사람은 천국이란 단어는 수 없이 들어보았지만 결코 천국을 전연 알 수 없고, 천국과 상관이 없는 자가되고, 말 것에 대해 오늘 본문 말씀이 강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강해할 때는 “계시”의 이해가 어려워 바로 그 뜻을 전달하기가 어려웠고, “마태복음” 강해는 그 뜻을 강해하기가 계시록 보다 훨씬 쉬우나, 반면에 본문 말씀대로 일상생활에서 실천에 옮기도록 강조하고 있으므로, 성도들이 모두 말씀대로 실천할 것을 강조할 때는 설교자 스스로 이것을 당연히 실천해왔던 사람이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온 본인으로서 주일마다의 강해는 많은 부담이 되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자 하는 말씀을 부족한 종을 통해 매주 심령 대 부흥회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일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말씀을 바로 깨달은 것은 그대로 생활에 적용하여 복 받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율법과 예수님(17-18)

[2]율법과 그리스도인(19-20)입니다

 

[1]율법과 그리스도입니다(17-18)

주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는 율법을 약화시키거나 율법을 범한다고 바리세인들이나, 서기관들이 고발하곤 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해서는 아니 되는데,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주님 앞에 세우고, 이 여인을 모세의 율법대로 돌로 쳐죽일까요? 어떻게 할까요? 라는 질문에 모세의 법대로 돌로 쳐죽이라고 하지 않고,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므로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율법 이해와 적용에 차이가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신약시대, 은혜시대, 자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가진 율법의 이해와 율법과는 전연 상관이 없고, 어떤 법도 나를 얽어매지 아니하며,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는 우리로서는 법을 지키고 행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관이 없다고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왔다”고 말씀하시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작은 것 하나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룰 거라”고 말씀하심으로 법을 지키는 행함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는 우리의 오해를 바로 잡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심이 아니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그 뜻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단 한 번의 제사(어린양)로 예루살렘이 아닌 곳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다 예배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율법이란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기록한 것이요, 그것들을 다 지킴으로 의롭게 되게 되어 있으나, 어떤 인간도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으므로 결국 그 누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인간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고자 해도 기껏 하나 지키고 나면 또 실수하고 또 하루 깨끗하게 살고 나면, 그 다음날 죄를 짓고 하여, 우리의 행함으로는 1년 아니 일평생의 생활을 저울로 재보니, 선보다는 악이 더 무거운 결과가 되어 그 죄 값으로 재판을 받아 죽게 될 우리에게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주셨다는 주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시므로 율법의 완성이 되신 셈입니다. 우리가 진짜 의로운 것이 아니고, 부족하지만 의롭다고 합격시켜 주셨기 때문에 내 행위로가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율법의 완성이란 뜻은 주님이 오시기전에는 오로지 율법의 말과, 규칙뿐이어서 그 율법에 영, 생명, 능력도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에 생명과 영을 불어 넣어주시어 율법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즉,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므로 안식일은 그저 쉬는 것으로 부정적인 인식된 것에서 선을 행하는 것 즉 긍정적인 안식을 실행하심으로 억지의 법에서 기쁨을 주는 법으로, 나를 묶어두는 법에서 나를 활동케 하는 법으로 바꿔주셨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율법의 완성이란 주님오시기 전엔 그 율법의 본 뜻, 내적 의미를 몰랐으나, 주님오시니 그 법에 해설을 붙여 주심으로 그 율법이 품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셨기 때문에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즉 살인하지 말라 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살인하지 않을 것으로 율법사들은 율법을 이해하고 해석을 내렸으나 주님은 남을 미워하는 것이 또한 살인이라 해설하심으로 “살인”이란 율법을 분명히 가르쳐 주심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의 가르치심은 율법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뜻을 밝혀 줌으로, 참된 의미에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서의 글자 속에서 들어 있는 본래의 뜻과 목적을 밝혀주는 것이어서 주님은 구약의 완성 자이신 것입니다. 주님은 율법과 예언에 따라 오셨고, 그에 따라 행하셨으며, 그 뜻을 명확히 하셨기 때문입니다.

 

[2]율법과 그리스도인(19-20)

율법 시대에는 안식일에 일을 하면 돌로 쳐죽였던 자비가 없었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무슨 시대라고 부르지요? 은혜시대. 예, 은혜시대하고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성경을 상당히 많이 아는 사람이라 말해도 별로 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참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말을 많이 했다고 고백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19-20절이 된 것입니다.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의 착각을 바로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상당히 게을리해도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셔서 다 봐 주실 거라는 개념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바로 알려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여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다”라고 19절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계명 중에는 큰 계명, 작은 계명, 하나님께 해당되는 계명, 사람에게 해당되는 계명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것만 지키고, 작은 것은 무시해도 된다하시지 않으시고,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지켜야함을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믿음으로 구원 얻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으로 은혜로 받았지만 행함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 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교훈이라도 행하고 남에게 행하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20절에 보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의”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가 바리새인들 입니까? 누가 서기관들 입니까? 그들은 말씀을 잘 풀어 말씀대로 틀림없이 엄격하게 지킨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셨는데, 여기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의”라고 표현하시므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적은 의”를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무엇이 그들의 “의”였을까요? 행함으로 구원받을 줄 알고,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켜보려고 노력한 외적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외형상 철저한 신앙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무엇이 빠져 있어서 늘 책망받았나요? 본질이 빠졌다, 속은 그렇지 못하다, 또 어떤 것은 행하고 어떤 것은 빼버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더러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무슨 말씀일까요? 외형은 그들은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외형은 필요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까? 아닙니다. 겉과 속이 상당히 완전하기를 바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진실이 빠진 행위만을 가지고도 아니 되고, 행위가 빠진 진실만 가지고도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구원과 관계되지 아니한다면 지키지 아니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입을 막고 있으며, 믿음으로 구원받으므로 바리새인 같이 꼭 무엇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아는 거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입을 막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어떻게 가르친다고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려고 최선을 다 해야하는데, 얼마나 잘해야 하냐하면 외형만 말한다면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보다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이 평소에 생각하고, 안일하게 신앙 생활한 지식과, 주님의 요구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얻었으나 구원받은 성도는 마땅히 모든 교훈을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표 받았으니 이젠 극장 문 열기만 기다린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란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철저히 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신앙 생활에 적용할 어떤 교훈을 받게 됩니까?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 하셨으니 은혜, 자비, 사랑의 상징이신 주님의 모습이 좀 달리 보이시지는 않습니까? 천국에 들어가지 위해 이 말씀에 대해 마음에 크게 부담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은 적은 것 하나라도 경하게 생각지 말고, 다 지키도록 최선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헌금과 성수주일만 강조하지 말고, 침수 세례도, 만찬도 강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해당되는 계명뿐 아니라, 사람에게 하라는 계명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본래 뜻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형도, 내형도, 질도, 양도, 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해석이나, 주관적, 교파적 해석이나 실천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성경을 알면 알수록 생활에 적용을 못해 부담스럽고 두렵다는 이유로 성경 연구를 기피하지 말고 성경을 넓게 바로 알고, 바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자기가 실천하고 있지 못하므로 이웃에게 말하기를 그렇게 철저히 지키지 아니해도 된다고 가르친다면 천국에서 작은 자로 일컬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일에 가끔 빠지는 사람이 매주 꼭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된다든지 살다보면 거짓말도 때에 따라서 해도 된다든지 하여 자기의 약점을 이웃의 같은 실수로 위로 받아 보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말씀을 지켜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보이려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보는데서 지킬 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은 곳에서도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지키고, 가정에서도 지키고, 사회에서도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주님의 모든 교훈을 철저히 지키어 천국에서 큰 자란 칭찬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