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 – 마태복음 10:16-33

오늘 설교 제목은 “두려워 말라” 입니다. 전쟁터에 아들을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애국정신이 투철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기회를 영광스럽게 생각하라고 위로하며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는 부모를 상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12사도를 특수 훈련하여 전도를 내보내는 주님의 심정을 소개해주고 있으며, 전쟁터나 다름없는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제자들에게 몸조심하도록 주위를 주고 또 격려를 하시며, 몸은 조심하되 살아남기 위해 비굴하지 말고 순교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믿음의 정조를 지켜 육은 죽어도 하늘나라의 영광을 택하도록 하라는 천국의 절대적 가치관이 강조되는 교훈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과 교훈을 먼저 찾아보고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상되는 핍박

[2]핍박을 향한 태도

[3]두려워 말라

[4]끝까지 이긴 자 되라

 

[1]예상되는 핍박

전도자나 목사가 순교를 당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면 신학교 대학생의 수가 어떻게 될까요? 아니 현재 목회자들의 수가 얼마나 줄어들까요? 저만해도 전도자의 길은 지상에서 제일 가치 있고 또 미국사회에서 존경받는 직업이라 자부심을 갖고 일하고 있는데, 주님이 내보내신 12사도들의 형편은 전혀 달랐습니다.

16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들을 전도 내보내시며, 이리 가운데 양을 내보내는 것 같다 하심같이 이리에게 잡혀 먹힐 가능성이 컸음을 예고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생명에 위협이 전제된 전도생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공회에 넘겨져 이상한 교리를 가르쳐 사회질서를 소란케 한 죄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하거나 매를 맞게 될 것이며, 어떤 제자는 로마 총독이나 왕들 앞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하게 될 것을 예고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좋은 예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 중에서 핍박이 일어나 심지어 서로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이며 가족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22절에서 예고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심한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이미 아시고 제자들도 주님께서 친히 당하실 모든 고난보다 더 어렵고 무거웠으면 무겁지 더 경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24절에 보면 “제자가 그 선생보다,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한 것은 선생 되신 예수님이, 종이 되신 예수임이 어떤 고난을 당하셨다면, 그 제자나 그 종이 스승보다 주임보다 높지 못하므로 주인과 스승이 당한 고난보다 적은 고난을 받는 면죄 이유가 없으며, 스승이나 주인만큼의 고난을 받는다면 이를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주님보다 더 큰 수난을 당하는 것이 예정된 것이라는 이런 예고를 듣고도 사도들은 전도하러 나갔으며, 결과적으로 야고보가 최초로 순교 당하고, 베드로도 네로에 의해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2]핍박을 향한 태도

핍박은 너무나도 당연히 있게될 것을 예고하신 주님께서 이 핍박을 향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할 것인지 지시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첫째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십니다. 뱀은 어떤 위험을 만났을 때 그 위험에 지혜롭게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뱀과 같은 지혜로 핍박의 위험에서 피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존하라는 것이며, 필요 없이 자신을 노출시켜 생명에 위험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둘기 같이 순결하다고 하심은 살기 위해 주님을 부인하거나, 비굴하게 믿음을 버려서는 아니 되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을 삼가라 하십니다. 누가 자기에게 핍박을 할 자인지 잘 분간하여 경계하라 하십니다.

세 번째는 혹시 잡혀가 재판을 받게 될 때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염려 말라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할 말을 주신다는 보장을 해주십니다.

네 번째는 혹시 이 동네에서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하셨습니다. 핍박을 피하는 것이 주님의 뜻임을 아셔야 합니다. 다메섹에서 사울을 죽이려고 할 때에 제자들이 성에서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내려 다른 도시로 빠져나가도록 한 장면을 연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3]두려워 말라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은 위험 부담을 충분히 아실 뿐 아니라, 목숨을 빼앗길 수 있다는 예고를 사도들에게 주시면서 반면에, 이 때문에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고하며, 핍박 후에 받을 영광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고가 26.28.31절에 3번이나 반복되고 있는데, 두려워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첫째는 감추인 것이 다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임시로는 핍박 자들이 승리한 것 같지만 주님의 심판 때에는 누가 옳고, 누가 틀리며, 누가 이긴 자고 누가 패배자인지 다 들어 날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공정한 심판을 바라보며 현재의 핍박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핍박자들은 목숨을 빼앗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이므로 몸밖에 못 죽이는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모든 핍박은 하나님이 다 아시며 하나님의 허락하여 일어나는 일이므로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아니함 같이 참새도 이렇게 지키시니 사람은 얼마나 귀히 지키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철저히 알고 계시며, 관여하고 계심을 믿고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끝까지 이긴 자 되라

조롱과 비웃음으로부터 시작하여 물질에 손해를 보거나, 구타당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빼앗기는 때까지 폭 넓은 갖가지의 핍박을 당하게 될 터인데, 마귀의 장난에 믿음의 지조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이긴 자가 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22절에는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란 그 중 어떤 자는 핍박으로 순교 당한 자까지 포함됩니다. 육은 죽었으나 영은 구원받을 것이나, 반대로 육이 살자고 믿음을 배신하면 영으로 구원받지 못하게 됨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23절에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할 수밖에 없는 모든 억울한 핍박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곧 주님이 오시어 영적 구원을 중심 한 천국생활에서 다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곧 오시어 갚아 주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살아있기 위해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주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순교를 당하면서 까지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긴 자들이 다 되도록 권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의 가치, 천국의 가치, 진리의 가치를 재조명해 주는 말씀으로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말씀에 의하자면 “세상을 다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심같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우리의 목숨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주님께서 양들을 이리 가운데로 내보냄같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내 보냈을 뿐 아니라, 목숨은 죽여도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심으로 목숨은 천국 복음 전파를 위해 희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심으로 목숨보다 더 중요한 가치 있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 받게 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진리도 바꾸고, 내가 살기 위해 믿음도 팔아먹을 수 있는 인생들에게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진리를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라 하시니 천국의 무게와 목숨의 무게는 전연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지심이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시고, 세상이 그에게 무릎을 꿇게 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실 그 영광에는 비교가 되지 아니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고후 4:17절에 “현재 받는 고난과 핍박은 장차 우리가 받게될 영광과 전연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장차 받을 영광을 소망하며, 현재의 적은 이익을 쉽게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오실 때 주님의 보장받기 위해 내게 닥친 큰 손해 감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 영생을 위해 ‘주님 때문에’, ‘믿음 때문에’ 라면 내 목숨을 믿음으로 바칠 수 있는 담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때문에 진리 때문에 받는 손해, 핍박,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며 그 아픔을 나누는 것으로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죄 없는 주님도 십자가 지셨는데, 죄인인 우리들은 그 보다 더 험한 십자가의 죽음이 마땅하다고 믿는 확신 가져야 할 것입니다. 빵 한 조각에 믿음 버리고 살아남을 것 같으나 미래에 받을 무거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가 곧 오고야 말 것입니다.

무슨 일에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셨다고 하십니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하나님의 허락 하에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양자, 양녀이어서 참새까지 돌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서고, 앉고, 직장 있고, 없는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위해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난을 당하고 목숨까지라도 버릴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진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재산 우리의 목숨이라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버릴 수 있는 대담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