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 겨자씨, 누룩의 비유 – 마태복음 13:24-43

주님께서는 천국에 대해 가르치시되 비유를 통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는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고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좋은 땅들이 되라는 교훈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또 누룩의 비유를 가르쳐 주시면서 마지막 절인 43에서 “의인들은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큰 소망을 우리에게 심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들어라”고 하시므로 이 귀한 소망의 진리를 전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귀들은 듣고 이 축복을 누리라고 하십니다.

구약 시대의 위대한 선지자들도, 구약 시대의 위대한 족장들도 이 귀한 천국 비밀을 주님으로부터 전해 듣고 싶어했으나 그런 축복을 누리지 못했던 사실을 지난 주에 소개받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대한 진리를 예수님으로부터 비유를 통해 전해 듣게 됩니다.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어떤 자들 즉 듣기를 거역하고 주님을 영접하기를 거역하는,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를 듣게 되니 이 얼마나 감격스런 일입니까?

의인이 이 세상에서 빛을 보는 것은 실지로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산다 할지라도 이 세상은 잠간이요,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될 터인데 오늘 천국 비유를 듣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비유를 바로 듣고 깨닫고 실천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가라지의 비유와 그에 대한 해설(24-30, 34-43)

[2]겨자씨의 비유(31-32)

[3]누룩의 비유(33) 입니다.

 

[1]먼저 가라지의 비유와 그에 대해 주님께서 어떻게 해설을 하셨는지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가라지의 비유의 줄거리는 어떤 집 주인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는 스토리로 엮어집니다. 좋은 씨를 뿌렸으니 무슨 열매를 거둘 수 있겠습니까? 예,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돈 네 팔촌이 논밭을 사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프다는데 하물며 원수야 어떻겠습니까? 좋은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꼴을 볼 수 없겠지요. 그래서 원수가 그 밭을 망쳐 놀려고 사람들이 잘 때에 그 밭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란 독 보리와 같은 것으로서 싹이 나고 자랄 때는 밀인지 독 보리인지 잘 구별이 어렵다가 열매맺을 때에야 밀과 구별이 되는데 그 열매를 모르고 먹었다면 구토증이나, 현기증, 또는 설사를 할 정도로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밭에 나가 보니 밭에 가라지가 보이므로 집 주인에게 와서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안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좋은 씨를 심었는데 가라지가 났다고 하니 집 주인은 이것이 원수의 짓이라고 쉽게 대답을 하게 됩니다. 이 때 종들이 주인께 “우리가 가서 가라지를 뽑아 버릴까요?”라고 물으니 주인이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 군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어라 하리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비유를 듣고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무리들이 다 떠나고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오셨을 때에 이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답은 이렇습니다. 좋은 씨를 뿌린 집 주인은 인자, 인자가 누구 인가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즉 성도들, 의인들, 선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밭은 세상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 즉 악한 자들, 사단의 손발 노릇 하는 자들입니다. 추수 때란 세상 끝을 의미하며 추수 군은 천사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에, 즉 심판 날에 주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듯 사람을 넘어지게 하거나 불법을 행한 자들을 거두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그 곳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해설해 주고 있습니다. 풀무 불이란 심판 날에 악한 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황 불 등으로 표현되어 참기 어려운 고통을 상징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해설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이 가라지의 교훈을 요약해 본다면, 이 세상에는 인자와 마귀, 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과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 함께 살되 언제까지 함께 사느냐 하면 심판 때까지 함께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 생각 대로라면 우리의 욕심 대로라면 당장 마귀나 마귀 짓을 하는 자들을 처벌했으면 좋겠지만 주님의 뜻은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악한 세력은 교회 내에도, 사회에도, 가정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곳은 아직 천국이 아니라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의 공존은 심판 때까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요 또 밀과 가라지가 싹이 나고 자랄 때까지 거의 구별이 어렵듯이 외형적으로 너무 위장을 하여 선인인지 악인인지 구별조차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추수 때에야 그 열매로 구별이 가능하며 더군다나 우리 인간은 악인과 선인의 한 순간만 보고 악인이라 또는 선인이라 판단을 하게 되므로 악인과 선인의 판단도 바르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보시고 판단하시게 되므로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시란 것입니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 하신 주님의 교훈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심각하게 받아 드려 의인과 악인, 알곡과 쭉정이의 판단을 하나님께만 맡기고 인간은 삼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언제 얼마나 큰 실수를 할 것인지 알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마귀는 주인이 잠 잘 때에 가라지를 뿌리듯, 사람들이 바쁘거나 잠시 무관심할 때, 잠시 긴장이 풀려 있을 때 주인 모르게 숨어들어 온다는 사실입니다. 틈만 있으면 기회를 잘 포착하여 선한 사람을 넘어뜨리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지 않으면 원수가 넘어뜨리려 하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졸지 않고 깨어 있어서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한 자는 주님 재림하실 때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이 날 것이고 반대로 마귀에게 넘어져 일어나지 못한 자는 이를 갈며 울게 될 것이라는 인생의 종말을 예언해 주는 비유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듣고 있기 때문에 퍽 등한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가라지의 비유에서는 심판 날에 곡식과 가라지를 갈라놓듯이 선인과 악인을 갈라놓고 상줄 자는 상을 주고 벌할 자는 벌을 한다는 격려와 심각한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가 추수 때까지는 크게 구별되지 않지만 심판 때는 천국과 지옥으로 뚜렷한 구분이 이뤄지게 됨을 예고해 주신 것입니다. 두 여인이 함께 맷돌질을 하여도 한 여인은 데려감을 당하나 다른 여인은 버림을 받는다고 하심같이 심각한 나눔이 이뤄진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2]두 번째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의 줄거리는 천국이라는 것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아서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씨로되 자란 후에는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것입니다. 내용 중에 겨자씨란 모든 씨보다 작은 씨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 아주 작은 단위를 말할 때 겨자씨를 말한 것으로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씨 중에 겨자씨가 제일 작다는 뜻은 아닙니다. 겨자씨가 여기에 인용된 것은 “작은 것”이란 의미를 주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던지울 것이라”는 말씀에서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란 ‘작은 믿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 작은 겨자씨가 자라면 3 미터 정도 커진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씨가 싹이 나고 자라서 3미터 정도 자라게 된다면 당연히 새들도 날라와 쉴 수 있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천국이 겨자씨로 비유된 것은 눈에 보일락 말락한 작은 믿음이라도 옥토에 심고 물을 주며 가꾸어 나간다면 결국 큰 믿음으로 자라서 본인도 그 믿음으로 살게 되고 또 그 믿음의 그늘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영향을 받아 함께 구원될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비유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욕심이 너무 커서 작은 것에는 양이 차지 않아 처음부터 큰 것에만 집착하기 마련인데 주님께서는 ‘작은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강조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다’ 또 ‘작은 것에 충성한 자에게 큰 것을 맡긴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작은 믿음을 가졌다고 실망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큰 격려가 되리라 봅니다. 성경을 잘 모른다고 실망한 자에게 큰 위로가 되리라 봅니다. 무슨 일이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욥기 8:7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 하리라’란 말씀대로 진심으로 믿음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기를 바라고 노력하는 자에게 큰 믿음을 주시리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자라도록 열심히 꾸준히 말씀보고 묵상하며 생활에 실천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나무의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3]세 번째는 누룩의 비유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갖다 넣어 가루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누룩의 비유를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여자’란 단어가 나오는데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주로 여자가 반죽을 하므로 여자란 단어가 나올 뿐이며, 또 가루가 ‘서 말’로 한정되었는데 여기서의 ‘서 말’도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양의 밀가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누룩도 성경 상에서 가끔 나쁜 의미로 사용되어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 16:6) 또 ‘묵은 누룩’(고전 5:7) 과 같은 누룩의 뜻은 ‘나쁜 사상’ ‘나쁜 교훈’ ‘나쁜 관습’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본문에서의 누룩이란 빵을 부풀게 하는 발효소, 이스트를 말하는 것으로 “천국이란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라면 딱딱해서 먹기에 좋지 않으나 누룩을 넣었을 때는 부드러운 빵으로 완전히 빵질이 바뀌어지게 됨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천국이 ‘누룩’과 같다는 비유는 믿음의 능력을 강조한 말이 되겠습니다. 주 예수를 마음에 모심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변화되고 또 나아가서는 내 가정과 내 직장과 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눈을 변화시켜 하늘을 바라보게 하며,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를 변화시켜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헌신적인 인물로 바꿔 주는 질적 변화를 가져다주고, 더 나아가 변화된 한 개체를 통해 큰 덩어리까지라도 같은 양질의 인격체로 변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해 시작된 누룩 운동은 12제자에게 전달되었고, 그 운동이 전 세계에 전파되어 그 작은 누룩, 조용한 누룩은 온 세계의 변혁을 가져오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빛이 온 집안을 환하게 비추듯 작은 누룩이 큰 덩이를 부풀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다고 또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라고 자신을 학대하고 계신 분들에게 큰 용기를 주리라 믿습니다. 반죽에 누룩이 들어 있다면 그 누룩은 시간만 지나면 반죽을 부풀게 하고야 말 것입니다. 부풀게 할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갑자기 큰 믿음이 올 수 없을 뿐 아니라 갑자기 큰 변화가 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란이 바위를 어떻게 깰 수 있으리요만 반석에서도 물이 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계란 같은 나를 쓰시어 바위도 깰 수 있게 하실 것이며 전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믿음으로 해 나간다면 가능케도 하신다는 확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빌 4:13 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다면 나같이 무능한 자라도 많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추수 때를 바라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봄에 곡식을 심고 나면 금방 추수 때가 오고 마는 것을 매년 경험하게 되는데 이와 같이 주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갈라 세울 심판의 때도 오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심판 때까지 악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배웠는데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 맥이 빠지거나 또는 이들을 정죄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 때에 다 계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인들 때문에 피해를 당해도 심판 때에 우리에게 주어질 상을 바라보며 많이 참고 참아서 “악에게 지지 말고 악을 선으로 갚는 참 승리의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승리한 사람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무엇’같이 빛난다고 했지요? ‘해’같이 빛나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세상에서 진실 되게 살기 위해 당했단 모든 어려움도 완전 보상해 주실 것이며 악인이 번성한 것을 보고 속상했던 일도 다 위로해 주실 것이며 악을 선으로이긴 삶에 완전한 보상이 주어질 것입니다. 가라지는 아무리 번성해도 추수 때는 단으로 묶어 풀무 불에 넣고 불사름을 당할 것이며 가라지에 시달렸던 알곡들은 아버지 집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날 존재들인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내 믿음을 지켜 나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다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는 누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룩의 삶이란 자신의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 내 가정과 내 직장과 내 사회를 변화시키는 삶을 말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정직한 삶이며 감사하는 삶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내가 죽고 이웃을 살리는 희생의 삶이며, 내 사랑을 이웃과 나누는 주는 삶인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남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겸손의 삶이며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풍성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퍽 이기적인 인간의 성품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나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면 풍성한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풍성한 삶을 통해서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하듯 내가 속한 공동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누룩의 삶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라 하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속한 공동체인 가정, 직장, 사회를 변화시키라는 누룩의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는 삶을 모두 사시기 기원하며 그 날까지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답게 풍성한 크리스천의 삶을 통해 누룩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