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던 3 년 동안의 하루하루가 다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셨겠지만 마지막 한 주간은 주님이 하셔야 할 마지막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했던 요일이 무슨 요일이었다고 했던가요? 주일이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시고 맨 먼저 들리신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었으나 막11:11에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그 날 하루의 일과는 그것으로 마치고 베다니로 돌아오시어 주무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베다니란 나사로의 집으로 생각되어지며 며칠 동안 계속 밤에는 베다니에 오셔서 주무시고 낮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베다니에서 주무시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오시었으니 이 날이 무슨 요일이었겠습니까? 월요일이었겠지요. 주님께서 어제 예루살렘에 입성하자마자 성전을 둘러 보셨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할 거룩한 장소가 장터가 되어 있는 것을 보시고 많이 속이 상하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이미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날은 그대로 돌아가셨지만 주님의 마음 속으로 그 다음 날에 오셔서 이 고질적인 병폐를 시정하시리라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그 다음 날 성전에 오시어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와 돈 바꿔 주는 자들을 다 내 쫓으시고 성전을 깨끗이 하셨으며 성전은 마땅히 기도하는 집으로, 찬양하는 집으로 활용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강도의 소굴로 사용하고 있다고 책망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 성전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였으므로 그곳은 마땅히 거룩하게 여기고 거룩한 예배 행위만이 집행되어져야 할 곳이었으므로 주님께서 이를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본문이 주는 깊은 뜻을 깨달아 교회가 물질 중심의 장터가 되지 않도록 하고 또 다른 면에서도 세속화되지 않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또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전인 것을 깨닫고 우리 몸이 거룩한 것의 그릇이 되도록 우리 마음 속을 거룩한 것으로 충만케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성전을 깨끗이 하심(12-13)
[2]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시기심(14-17) 입니다.
[1] 성전을 깨끗이 하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성전에 대해 조금 설명을 드리므로 본문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성전이란 것이 있기 전에는 모세를 통해 만들러 진 이동용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성막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하는 성전은 맨 처음 솔로몬왕에 의해 이삭을 재물로 바치게 되었던 산 모리아산에 지어졌으나 주전 586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그 다음 주전 515년에 규모도 작고 볼품은 없으나 성전을 재건했는데 이것을 스룹바벨의 성전이라고 부르며 악명이 높은 헤롯 대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룹바벨의 성전을 주전 19년에 시작하여 주후 64년까지 지속적으로 개축하여 완성한 것으로 이것을 헤롯의 성전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예루살렘 성전인 것입니다. 이 성전을 두고 주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을 하신 바 있는데 로마 군대에 의해 주후 7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우연히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의 파괴된 날이 똑 같은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전이라 하면 지성소와 성소 또 현관으로 구성된 성전 기본 건물과 성전 경내의 4개의 뜰이 있는데 그 4개의 뜰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행하는 제사장들의 안뜰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뜰, 또 여인들의 뜰, 그리고 유대교로 개종한 모든 이방인들의 예배를 위한 이방인들의 뜰이 있었는데 이 이방인들의 뜰은 넓은 공간이 있고 다른 뜰들을 둘러싸고 있으나 지성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D 석에 해당되며 이방인들이 다른 뜰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높은 담을 만들었고, 담 주위에는 자기들의 뜰을 벗어나는 이방인에 대한 죽음을 경고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깨끗이 하셨다는 곳이 바로 이 이방인들의 뜰을 말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희생 재물을 가지고 와야 했었는데 그것은 소나 양이나 비둘기, 향, 곡식, 포도주, 기름, 소금 등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희생 재물은 마땅히 흠이 없는 좋은 것으로 드려지도록 제한되어 있었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 오는 모든 자는 좋은 것을 준비하여 왔던 것입니다. 이런 제도를 악용하여 그 당시 대제사장들이 돈벌이하는데 착안을 한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드려질 희생 재물을 성전에서 매매하므로 각 지방으로부터 또 다른 나라로부터 몰려온 사람들에게 희생 재물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해 주면서 돈벌이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심지어 좋은 희생 재물을 가져와도 흠이 있는 것이라 판정을 하여 희생 제물로는 마땅치 않다고 퇴치고 자기들이 파는 것들은 비록 하등품일지라도 합격을 시키므로 자연히 백성들은 모든 희생 재물을 성전에서 비싼 값으로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모든 남자들은 성전 세를 내게 되어 있었지요? 1년에 얼마? 반 세겔이었습니다. 이 세를 외국돈 즉 로마 돈이나 희랍의 돈으로는 안되고 성전의 화폐로 바꾸어 바치게 되어 있으므로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이 또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이 이 장터를 직영하고 매점들을 자기 가족들이 운영케 하거나 또는 외부 소매상들에게 임대하여 그들로부터 임대료까지 챙겼다고 합니다.
한번 짐작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같은 큰 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2-3백 만 명이 모인다는데 이들이 바쳐야 할 희생 재물을 판매하는 장터가 얼마나 요란했겠습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붐비며, 소, 양, 비둘기들의 울음소리 얼마나 시끄럽겠으며, 그 짐승들의 똥 냄새가 이곳까지 나는 듯합니다. 또 자기 가게로 손님을 끌기 위해 싸구려를 외치는 장사꾼들의 목소리 또한 퍽 시끄러웠을 것으로 짐작해 봅니다.
이런 분위기의 성전 즉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시어 매매하는 자들을 내 쫓으셨으며 비둘기파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2:13-16에도 같은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주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도 성전을 깨끗이한 일을 한번 경험하신 것으로 보이며 이번이 두 번째인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요한 복음에 보면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대제사장들이나 장사꾼들이 돈을 버는 것을 방해하셨을까요? 주님께서 샘이 나신 것인 가요?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렇게 뒤엎어 버리는 지 그 이유를 그들에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라고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드리는 곳으로 거룩하게 사용되어져야 할 터인데 오히려 예배를 방해하는 시끄러운 장터로 만들었고 더군다나 가난한 자들이 바치는 예물인 비둘기를 비싸게 매매하므로 강도 같은 짓을 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전이란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요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는 거룩한 장소임에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욕심을 챙기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께 불경스런 짓을 하고 있었으므로 성전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서 자기 집을 깨끗이 청소하신 것이며 거룩한 집으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렘 7:10-11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인, 간음, 거짓 맹세, 우상 숭배를 일삼으면서도 성전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책망하여 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보느냐고 성전의 악용을 책망한 일이 있으며, 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방인일지라도 그 손에서 악을 멀리한 자들의 번제와 희생은 기꺼이 받으시고 하나님의 집에서 만나 주시겠다고 하시며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을 하나의 음식으로 알고 어떤 자는 먼저 와서 많이 먹고 마시며 어떤 자는 늦게 와서 시장해 했다는 고린도 교회의 죄악을 책망하여 고전 11:22에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과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고 책망을 한 일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깨끗하게 보존해야 한다고 책망하신 거와 같은 맥락에서 되어진 책망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시기심입니다.
하루 전날 수많은 군중들이 합세한 입성 퍼레이드 그리고 무리들의 외치는 구호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는 온 성에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도록 했기 때문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심히 위축되었을 뿐 아니라 배가 아파 있는 상태인데 오늘 주님께서 위세 당당한 모습으로 성전을 정화하신 일이나 또 성전에 모여든 눈먼 자와 저는 자들을 고쳐 주신 일과, 또 성전에서 아이들이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것을 보고 시기심과 큰 거부감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분하여 예수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라고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질문이 뜻하는 바는 아이들은 당신을 오시기로 한 메시아로 선포하고 있는데 당신이 이것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드리느냐는 공격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한 것을 너희가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 반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시편 8:2 에서 인용된 것으로 모든 혀가 침묵을 지킨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젖먹이 아이들을 들어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실 것이란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본인이 메시아이심에 대한 증거로 돌리신 것입니다. 즉 아이들의 찬송하는 말과 같이 바로 내가 다윗의 자손 중에서 오기로 한 메시아라는 확답을 주시므로 그들을 잠잠케 하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로서는 예수님을 대항하여 이길 만한 아무런 능력도 없고 또한 자기들이 돈벌이하는 일까지 완전히 망쳐 놓았으므로 이중 삼중으로 분이 나서 결국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결정적 동기가 된 셈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전이 어떻게 활용되어져야 하는 지를 경고를 통해 또 사역을 통해 실증해 보이셨습니다.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집이란 하나님과 만나서 대담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벌이는 성전 밖에서 하고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으로, 내 죄 문제를 해결하고 내 영적 문제를 해결 받는 곳으로 활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소경과 저는 자들을 도우셨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선포하는 곳이어야 하며, 그 능력을 통해 영적으로 구원받게 하는 사역이 이뤄지는 곳으로 사용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이들이 찬양하는 것을 받으신 것입니다. 성전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으로 사용되어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질에 눈이 어둡고, 교권에 눈이 어두운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는 곳으로 이용하고 아이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천국이 어린아이들의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으리라 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자는 천국을 차지할 것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자는 그 소원대로 세상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세상은 잠간이요 천국은 영원하므로 언젠가는 세상의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없고 오직 천국의 영화만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우리의 공동체 성전인 교회를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이 하심과 같이 교회 안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들을 추방시켜야 할 것입니다. 교회란 세상으로부터 주님에 의해 불림을 받은 개체나 회중을 말하는 것으로 세상으로부터 불림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 적인 것을 부정하고 영적인 개체나 영적인 회중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사이 교회들은 많이 세속화되어 있어서 세상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실천하는 세상의 연속이요 세상 그 이상의 맛을 내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교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보아도 좋으리라 봅니다.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셨듯이 교회로부터 이익을 얻어내려는 욕심을 추방시켜야 하며 교회를 통해 돈을 벌겠다는 어떤 아이디어나 실천은 중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교역자가 돈에 욕심을 내어 돈 때문에 전도자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것 같은 추태를 부려서도 아니 되겠지만 교인 중에서 교회와 연관시켜 돈을 벌려는 시도는 마땅히 중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 돈을 주고 직분을 팔거나 사는 그런 장사가 교회 내에서 절대 일어나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직분과 돈은 단 1%도 연관시켜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직분 받을 때이거나 직분 받은 다음에 장로 급은 얼마, 집사 급은 얼마, 권사 급은 얼마 등 교회 직분이 돈의 액수를 결정하는 등급으로 이용되어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교회의 직분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폐단이 우리 교회들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에서 집사를 세우더라도 임직된 집사들이 교회에 기념으로 무엇을 해 둔다든지 직분을 임명한 전도자께 승용차를 한대씩 사주는 돈과 연결짓는 폐단을 행여 라도 남기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고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누어주라고 하셨는데 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등에 없고 돈벌이를 해서 되겠으며 또한 교회가 그런 장터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에서의 해방된 교회, 가난한 자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교회, 이런 교회를 우리가 유지하도록 주님께서 바라고 계십니다.
또 교회를 깨끗이 하기 위해 명예에 대한 욕망을 추방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리다툼도 있을 수 있고 명예를 얻어 자랑할지 모르나 교회란 철저한 자기 부정의 공동체이므로 어떤 직분을 명예로 알고 주어서도 아니 될 것이고, 또 그것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도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철저한 자기 부정을 요구하심에도 교인들은 더 유명해지고 자기 개체가 더 살아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리스도 안에서는 오히려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남의 종이 되려는 낮아진 자가 높아지는 것을 확신하고 우리 교회는 어떤 명에를 주고받는 그런 교회를 완전 탈피하고 온전히 종들의 모임체가 되기를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 추방해야 할 것은 요사이 교회들의 유행병인 교회 내의 분쟁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두 패로 나누어져서 추태들을 부리는 것을 보면 인간인 내가 보아도 매스꺼운데 주님이 보실 때에는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 교회들이 시시한 자기 권위 문제로 교회를 나누고 적은 이익 때문에 싸움판을 쉽게 벌리는데 이런 싸움판이 벌어지도록 이간질하는 자가 누구겠어요? 사탄이지요.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사탄의 손발이 되어 심지어 법정에까지 가는 일들이 세상 교회들에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어떤 일로든지 분쟁이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분쟁의 요소는 미리 해소시켜 교회는 마땅히 평화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를 보존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개체의 성전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당시의 성전이란 예루살렘 성전이 되지만 지금은 우리 각 개인이 성전이요 성도들의 모임 체가 성전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인 교회가 깨끗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심령이 깨끗하게 유지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안도 청소를 하지 않으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듯이 우리의 마음도 영혼도 늘 씻고 닦지 않으면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을 신랑으로 맞을 신부로서 정결한 마음과 영혼을 유지해야 합니다. 좋은 옷을 걸치고 장식품을 몸에 아무리 멋있게 걸쳤어도 더러운 영혼은 성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계신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시도록 내 마음속을 정결하게 정리하고 늘 씻고 닦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성전은 마땅히 기도하는 집, 찬송하는 집, 말씀을 묵상하는 집이 되어 늘 말끔하게 씻어져 있는 집이 되어 언제이고 하나님이 사시기에 알 맞는 집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집에는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고 마귀가 거하는 곳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서 마땅히 추방해야 할 것들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미움과 불신, 불의와 개으름, 비방과 분쟁을 내 속에서 완전 추방하고 사랑과 정직, 열심과 봉사, 온유와 화평만이 내 속에 채워져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소원을 바로 이해하고 우리의 공동체 성전인 교회와 우리 개체의 성전인 각자의 심령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