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에 관한 질문 – 마태복음 22:23-33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3일 전인 화요일에는 주님을 반대하는 자들로부터 갖가지 질문 공세를 받은 날이기도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바리새인들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로부터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 불가하나이까” 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무엇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질문이 아니라 말의 실수를 유도하여 주님을 잡아 가두고 죽이겠다는 위장된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지만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그 기회를 이용하시어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또한 그 질문에 연관된 진리를 가르친 사실을 소개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사두개파가 나타나서 부활 문제를 가지고 많은 군중들 앞에서 예수님을 망신 주겠다는 위장된 질문을 했으나 역시 주님께서는 오히려 며칠 후면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시게 될 터인데 이번 기회에 부활에 관한 바른 진리를 가르치시고 또한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책망하시게 됨을 본문에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사두개인들의 질문 공세 덕분에 우리들도 부활에 대한 바른 진리를 확인하고 우리는 육이 죽는 것으로 전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에 다시 살아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확신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2 부분으로 나누어서 본문이 주는 뜻을 깨닫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두개인들의 질문(23-28)

[2]예수님의 답변(29-33) 입니다.

 

[1]먼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3 절에 보니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란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세금 문제를 예수님께 물었던 바로 그 날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세 비유를 들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책망하신 바로 같은 날인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진보주의자들로 부활이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하는 유물론자들의 종교 집단으로 그 당시 바리새파와 쌍벽을 이루는 집단이었습니다. 수는 많지 않지만 부유한 귀족들이고 지배 계급에 속한 자들이었고 제사장들은 대부분 사두개인들 이었다고 합니다. 헬라 사상을 받아 드린 자유주의적 진보파로 성경으로는 모세 오경만 인정하고 다른 문서는 인정을 하지 않았으며 죽음과 더불어 영혼과 육체가 다 없어진다고 믿었는데 영혼의 존재와 부활의 교리가 모세 오경에 증명되어지지 않는다고 주장을 했던 자들입니다. 부활을 어느 정도 시인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엉뚱한 상상이나 억측으로 흘렀던 것입니다. 즉 부활 때에 어떤 옷을 입고 부활할 것인가? 어떤 모양으로 부활할 것인가? 죽을 당시의 모습으로 부활할 것이다. 불구자는 불구자 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또 여자로 태어나겠지요. 또 어디에서 부활될 것인가? 유대인은 팔레스틴에서 부활할 것이고 혹시 외국에서 죽은 자들은 지하의 공로를 통해 팔레스틴에 이르러 부활할 것이다 라고 상상했으며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억측의 부활의 교리가 많은 모순이 있음을 보고 비웃고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인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영적 세계도 물리적 세계와 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영적인 세계는 그 속성이나 관계에 있어서 세상의 연장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교리가 세상 철학과 과학적인 면으로 판단할 때 설득력이 전연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금에 관한 질문을 주님께 던졌으나 실패한 것을 사두개인들이 알고 이번 기회에 자기들이 나서서 예수님을 보기 좋게 넘어뜨리고 반면에 쌍벽을 이루면서 늘 대립되어 오고 있는 바리새파의 기를 꺽는 좋은 기회로 삼고자 부활의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2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있다고 믿으며 만일 부활이 없다고 믿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는 규례를 가지고 있지만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는 종교 집단이므로 사두개파가 부활 문제로 예수님을 꺽을 경우 바리새인들까지 꺽어버리는 너무 좋은 질문이요 좋은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귀도 주님을 시험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듯이 사두개파도 역시 말씀을 근거하여 주님께 공격을 가한 것입니다, 그들이 근거한 말씀은 신명기 25:5-6 인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각 가족들의 족보를 잇게 하고 또 재산이 대대로 잘 상속되게 하는 목적으로 제정된 결혼 법의 하나로 어떤 사람이 대를 이어 줄 아들이 없이 죽었고 그 사람의 동생이 아직 미혼이라면 형수와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아 주어야 하고 낳은 아들은 형님의 족보에 들게 하여 형님의 대를 잇게 해야 한다는 법입니다. 만일 그 동생이 이를 거역하면 형수는 증인들 앞에서 시동생의 신을 벗기고 침을 뱉으며 그의 집에는 신을 벗기운 자의 집이라 써 붙이도록 하는 강제 결혼 법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말씀을 근거하여 추상적인 궤변을 조작해 낸 것입니다. 그들이 궁리해서 조작한 질문을 가지고 주님께 왔습니다. 그들은 주님께 경의를 표하는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회적 자존심 때문에 아첨의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질문은 철저히 성경 적인 것을 내 세우기 위해 모세의 가르침을 내 놓습니다. 즉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우라고 하였는데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자식이 없이 죽어 바로 밑의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역시 자식이 없이 죽었고 이렇게 일곱 형제가 모두 자식이 없이 죽었고 그 부인도 죽었으니 부활 때에는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일이 실지로 있었는지 아니면 한번 꾸며낸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사두개인들 자체가 부활을 믿지 않고 있으므로 부활을 믿고 있는 자들에게 부활의 불합리한 것, 비논리적이요 비철학적인 면을 공격하여 자기들의 불평을 털어놓고 반사적으로 부활 신앙을 허구투성이라고 공개하기 위해 질문을 꾸며 온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간단하지만 부활이 있다고 전제한다면 일곱 형제가 서로 한 여자를 놓고 자기 아내라고 다툼질을 할 터이니, 부활이란 있어서는 오히려 무질서와 싸움만 일게 할 것이 아니겠느냐는 자기들 나름대로 정립한 부활에 대한 반대 이론을 근거해서 만든 질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의 이와 비슷한 엉뚱한 질문을 가끔 듣게 되리라 봅니다. 억지 같은 극단적인 질문들을 통해 자기를 변명하고 신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으며 그런 것을 통해 자기 스스로 위안을 받고 제 멋에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재판장이시라면 일곱 아들 중 누가 그 여자의 남편이라고 판정하시겠습니까? 그 중 누가 그 여자와 가장 오래 살았는가?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여자를 누가 가장 사랑했느냐로 기준을 삼겠습니까? 아니면 그 여자가 선택하도록 하겠습니까? 지혜 있는 솔로몬 왕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2]두 번째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질문을 던져 놓고 예수님의 대답 한 마디에 의해 지금 많은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주님의 인기 하락은 시간 문제라고 쾌재를 부리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안색을 살피며 주님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저하시지 않고 그들의 죄악상을 드러내시게 됩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도다”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성경 전체가 모두 몇 권이지요? 66권이지요. 또 모세 오경은 모두 몇 권입니까? 5권이지요? 그러니 사두개인들은 66권 중에 겨우 5권만 알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모르는 자들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 모세 오경만 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창세기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일이 있었음에도 그들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음을 들추어내시어 책망하신 것입니다. 바다를 육지 같이 건널 수 있는 것이 어찌 초자연적인 사건이 아니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심이 어찌 초자연적인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자기들이 무엇을 안다고 과학적으로,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된 것만 믿고 그렇지 않은 초자연적인 일들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자들이라고 주님께서 판정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첫째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또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의 근거를 통해 자기들이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에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오해 하였도다”라고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이 모두 66권인데 5권만 사랑한 것 자체가 불 신앙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부활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음을 그들이 무시한 것입니다. 욥기 19:25-27 에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 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하여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부활 할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이사야 26:19 에는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라’라 되었으며 다니엘 12:2 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라고 분명히 부활과 심판에 대해 기록해 두셨음에도 성경을 무시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한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신약의 기록이 많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신약의 기록은 없는 때이므로 신약은 덮어둔다 하더라도 그들은 자기들의 상식과 지식과 철학을 하나님의 말씀인 구약의 말씀보다도 더 내 세운 것입니다.

더욱 그들을 부끄럽게 만든 것은 ‘모세 오경’ 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고 모세 오경을 강조한 그들이 모세 오경도 바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31 절에 보니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의 후예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자기들이 그렇게도 내 세우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조상들의 이름을 내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한글성경 상에는 분명치 않지만 원어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셨다는 과거 시제로 표현하시지 않았고 현재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라는 현재 시제를 사용하셨고 이삭이나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모세 보다 훨씬 과거에 존재했던 자들임에도 모세 시절에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시라는 현재 시제로 소개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육으로는 죽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살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지금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죽어 있다고 한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은 무효가 되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이 없는 민족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고로 모세 오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시라는 표현만 보아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영적으로 현재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되므로 육이 죽음과 동시에 영도 죽고 부활이란 있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과 사상은 성경을 몰라도 철저히 모르는데서 오는 것임을 말씀으로 증명하시고 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또 부활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시게 됩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부활에 대한 그들의 터무니없는 억측을 완전히 일소해 버리십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해 봐야 육적 세상살이의 연속 그 이상이 아니라고 믿은 그들에게 바른 부활 관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부활 후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질문 하나로 예수님을 당황하게 하고 군중들 앞에서 망신을 주겠다고 생각한 그들인데 부활 때에는 시집도 장가도 가는 것이 아니고 천사와 같은 존재가 된다고 했으니 그들의 질문은 완전히 빗나간 질문이 되었습니다.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믿기에는 부활시에는 거꾸로 태어나서 자기는 남자가 되고 그 남편은 여자가 되어 남자에게 심한 천대받을 것으로 믿는 다거나 또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되고 백인은 흑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면 부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새로 태어난다면 이 세상의 부부 또는 자녀 관계, 선후배, 사장과 직원 등 세상의 인간 관계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으며 각자가 다 천사와 같은 존재들로 태어나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활 후의 상태가 이 세상 삶의 반복 정도라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을 통해 알게 되는 부활 후의 상태는 전연 새로운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첫째 부활의 몸은 썩지 않는 몸으로 살아나며 신령한 몸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부활할 것을 고전 15 장을 통해 분명히 해 주셨습니다. 그 이상 아프지 않으며 그 이상 배고프지 않으며 그 이상 죽지 않으며 천사와 같이 자유로이 운행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이상 모략과 미움이 없는, 살인과 폭동이 없는, 또 흑백이나 인종차별이 전연 없는 평화와 기쁨의 별천지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록 21 장에서 확인하게 됩니다. 병원이 없고 감옥이 없으며 은행이 없으며 자동차가 필요 없고 영주권 시민권이 필요 없으며 눈물도 가난도 아픔이 없는 별천지에서 한번 살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인들 메디컬 카드, 웰패어 걱정 전연 없는 곳이며 그 이상 무거운 노동을 하지 않고, 권총 강도의 위협이 없는 유토피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3절에 보니 주님의 강론을 듣고 무리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공격하여 넘어뜨리려 왔었는데 오히려 가르침에 놀랬다는 결론입니다. 눅 20:39 에 보면 함께 방청했던 서기관 중 어떤 사람들이 선생이여 말씀이 옳으니이다 라고 오히려 박수를 보낸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부활에 대한 확신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더욱 키워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늘 마음에 두고 현세의 어려움을 이기고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말씀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이 고백한 대로 “나의 이 가죽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는 소망이 우리 한인 교회 성도들의 확신에 찬 고백이 다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수대교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비행기 사고로, 질병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잇습니다. 또 교통 사고나 기타 강도 사건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요, 한번 죽는 것은 모든 인생에게 정하신 이치요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약속되어 천사답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에게는 부활이 있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어서 이 세상의 불공평과 이 세상의 고됨과, 이 세상의 억울하고 못마땅한 모든 것을 다 잊고 다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어려움을 참고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모든 성도들이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오시겠지만 오늘부터는 더욱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 현재의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든다 해도 조금만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살기가 아주 편하고 너무 좋아도 너무 세상에 미련을 두시지 마시고 또 너무 어렵더라도 그 어려움에 너무 집착하시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의 즐거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신부로 맞는 장면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저녁 퇴근 시간이 오듯 우리가 주님을 신랑으로 맞는 때가 곧 오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많은 분이시거나 젊은 사람이거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부활의 소망,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더욱 크게 하며 살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경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성경의 일부만 알았습니다. 또 성경의 일부도 잘 몰랐고 아는 것도 잘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신뢰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모든 문제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 오해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성경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일부만 알지 아니하고 성경 전체를 골고루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것을 온전히 믿어야 하겠고 믿는 것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주야로 말씀을 상고하여 신구약을 골고루 보고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확신과 능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두 부활의 확신과 소망을 더욱 뜨겁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넓게 많이 읽고 배워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신뢰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