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드라에서의 전도 – 사도행전 14:8-20

지난 주에는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성공적 전도를 한 내용을 소개받았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는 전도의 승리가 있었고, 반면에 크다 큰 성공에 시기한 무리들이 돌로 치려고 위협이 거세기 때문에 그 위험을 피해 새 전도지역을 찾아 루스드라에 왔던 것을 소개했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해서 루스드라에서의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활동을 통해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루스드라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 루스드라는 바울이 전도한 어느 도시보다 덜 개발된 곳이라고 해요. 그러나 이 도시도 로마의 군사 고속도로 Imperial Rosd가 지나간 곳이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로마군사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전도하고 있습니다. 이 고속도로를 로마는 전쟁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바울의 눈에는 자기가 전도여행 하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주신 것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에 이 도시에서 복음을 전했고, 또 돌아오면서 들렸고, 2차, 3차 전도여행에 또 왔으니 모두 몇 번 들린 셈입니까? 4번. 루스드라 교회는 1차 전도여행 때 세워진 교회이며, 관심있는 것은 디모데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역시 이 도시가 갈라디아 지역에 있었으므로 갈라디아서가 보내졌던 교회들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젠 본문을 소개하겠습니다. 본문을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앉은뱅이를 고친 이적입니다(8-10)

우리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이미 베드로를 통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었던 이적을 소개받았으며, 또 마술사 시몬을 크게 꾸짖는 내용도 소개받았는데, 성령께서는 유대인 중심의 전도자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능력을 이방인 전도자 바울에게도 비슷한 능력을 행하게 하심으로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을 대등한 인물로 중거해주시는 듯합니다. 이미 바울도 마술사 박수 엘루마를 눈이 멀게 했는데, 여기서는 나면서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해서 뛰게 만들게 됩니다. 늘 회당 찾아 전도했는데, 여기 루스드라에는 마땅한 회당이 없었는지 노방전도를 한 것 같습니다. 나면서 앉은뱅이로 걸어본적이 없다고 성경이 소개하고 있으며, 그가 바울의 전도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성전미문의 거지와 같이 이 사람도 길거리 어디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소리 높여 주 예수를 전하는데, 그 거지가 그 복음을 들었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버울이 그를 주목해서 보니 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네 발로 일어서라”하니 그가 뛰어 걸었다고 소개됩니다. 그 환자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어떤 힘과 전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으켰습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 말 한마디로 나면서 앉은뱅이가 즉시 일어나 뛰고 걸었습니다. 이런 것을 기적이라 합니다. 주무르고, 두들겨 패고, 문지르고 한 것이 아니라 말 한 마디로 즉시 완전히 낫는 것이 바로 시도시대에 있었던 기적의 모습입니다.

 

[2] 군중의 반응입니다(11-13)

분명히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뛰고 걸으니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아니될 일을 알고 군중들은 자기들이 믿는, 자기들이 소망해오던 신이 사람 모양으로 나타났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제우스로 그리스의 최고의 신입니다. 그들 말로는 쓰스신입니다. 바나바는 나이도 더 많고 풍채가 더 좋았던지, 바나바는 쓰스, 바울은 허메, 허메는 쓰스신의 대변자, 웅변의 신인데 바울이 말을 저 잘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믿기는 쓰스신과 허메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그 신들에게 잘 대접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고 있는데, 드디어 쓰스신과 허메신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났구나 하고 제사 지내려고 소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으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3] 바울과 바나바의 반응입니다(14-18)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갔을 때,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어 절하니 베드로가 그를 일으켜 나도 사람이라고 했지요? 고넬료는 자기 믿는 믿음으로 베드로를 예배받는 자로 알았겠지요. 누가 예배받을 자인가요? 오직 하나님. 그 어떤 인간도 예배받을 자가 없습니다.

자기들이 신인줄 알고 자기들에게 제사지내려는 하는 것을 보고 바울과 바나바는 옷을 찟고 무리 가운데 뛰어들어 소리질러 꾸짖고 바른 교훈을 주게됩니다. 옷을 찟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크다 큰 잘못이 있을 때 회개를 의미하는데, 그들의 엄청난 실수에 중보적인 차원에서 큰 소리로 설교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이므로 예배받을 자가 아니요, 오로지 하나님의 소식 전달하는 자에 불과하다. 복음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다. 예배자는 오로지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그는 천지를 지으신 분이시며, 그는 인류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할 것이다. 지나간 시대에는 다만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자기의 길을 가도록 묵인하셨으나, 하나님 자신을 숨기신 것이 아니라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며 사시사철을 주시고 음식과 옷을 주시고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라고 설교하여 자기들에게 제사하지 못하도록 중지시켰던 것입니다. 요사이 병고치는 은사 가졌다고 하는 자들 또는 예언하는 능력있다 하는 자들에게 모든 영광을 철저히 하나님께만 돌리도록 가르치는 좋은 교훈입니다.

 

[4] 핍박과 하나님의 돌보심(19-20)

쓰스, 허메신으로 대접받았던 그들이 짧은 시간내에 돌로 맞는 죄인으로 대접받게 됩니다. 자기들이 믿는 미신의 신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헛것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님을 소개하므로 루스드라 현지에 있는 사람과 또 이미 다른 지역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무리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으로 끌어 내쳤습니다. 바나바는 어디로 피신했는지 모르지만 바울은 죽은 상태로 인정될 정도였습니다. 바울이 고후 11:25에서 한번 돌로 맞았다고 자기 소개를 하는데 바로 이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았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전도받고 제자된 자들이, 순수한 자들이 바울을 둘러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로 쳐죽이는 핍박 중에서도 고 죄수 주변에 둘러서있는 제자들 훌륭하지 않습니까?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수많은 돌에 맞았으니 온 몸이 피투성이요 뼈와 살이 다 엉망이 되었을텐데, 바울이 일어나 그 다음날 바나바와 함께 그 다음 전도여행지인 더베로 갔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이며, 우리가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바울이 회당이 없어서 길거리에서 전했는데, 그 전도를 듣고 구원받을 앉은뱅이를 만났는데 구원 얻을만한 그 믿음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보면서 힘을 얻어 기회있는 대로 전도에 힘써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이 날로 증가되도록 계속 말씀보고, 듣는 일에 열중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와 더베 지역에 전도하므로 디모데와 그 가족을 구원시켰는데, 우리도 나가서 디모데와 그 가족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전도하다 수모 당하면 죽음에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입니다. 모두 전도 능력자가 되시기 기원합니다.

 

둘째, 헛된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는 쓰스와 허메신을 진심으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믿는 바울의 눈으로 볼 때 헛된 것이었으므로,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권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헛된 것이 있다면 헛된 것을 버려야 합니다. 무엇이 헛된 것입니까? 하나님 믿는 일에 반대되는 것, 해가 되는 것이 헛된 것입니다.

지식입니다. 높은 학위, 높은 학문을, 좋은 학교 공부하느라 하나님 섬기는 것 등한히 한다면 그것이 헛된 것이므로 그것 버려야 합니다.

사업입니다. 사업이 크게 번창하므로 아니 새로 시작했으므로 그것 커감에 따라 그것 유지하려고 오히려 믿는 일에 등한해지므로 그것이 우상이 되니 그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가 받는 예배, 영광 받으려는 예배 버려야 합니다.

자녀입니다. 미국에서 우상이 자녀일 수 있습니다. 부모를 우상같이 하는 분은 적은데, 자녀라면 껌뻑 죽어요. 자녀 학교 핑계되고 교회 빠지고, 자녀 사업 돌봐주려 손자 손녀 돌보느라 교회 빠지고, 어떤 형태로든지 그 자녀 때문에 믿음 등한히 한다면 자녀가 우상임이 틀림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 버리고 하나님 택하는 믿음 우리도 가져야 합니다. 훌륭한 아들 둔 교회 직분자 있습니다. 쉽게 자랑합니다. 무슨 대학 다닌다, 의사다, 변호사다, 어떤 사업한다. 그러나 예수 믿지 않고, 예수 믿는 것 등한히 하는 자녀 있으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녀 위해 늘 중보기도하며, 그것을 오히려 헛것으로 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신앙의 헛된 것 추방해야 교회 살고 우리 삽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대신 살아난 우리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 당한 피로 전도된 우리가, 바울이 돌에 맞아가며 전하므로 전도된 우리가 헛것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됩니다. 헛것을 버리고 참된 것을 지켜야 합니다. 참된 것이란 디모데를 찾아나서는 일이요, 하나님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모두 참된 것을 찾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