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자의 비유 – 마태복음 13:1-23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이용하여 예수님에게는 육친의 형제나 모친보다도 더 중요한 영적 형제와 모친이 있음을 선포하셨던 사실을 지난 주에 소개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영적 가족을 선포하신 바로 그날 이 세상 나라와 대조가 되는 천국에 대해 가르침을 주시되 여러 가지의 비유를 드시면서 천국을 소개해 주신 것입니다. 마 13장에서는 천국에 대한 7가지의 비유를 소개해 주고 있는데 오늘 본문은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비유를 통해 천국을 소개해 주시면서 가르침을 받는 청중들이 천국에 합당한 자들이 되어야 함을 촉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도 주님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우리 모두 천국에 합당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을 3 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씨뿌리는 비유(1-9)

[2]씨뿌리는 비유의 해설(18-23)

[3]비유로 말씀하신 이유(10-17)

 

[1]먼저 씨뿌리는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에 보니 주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집”이란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일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주님께서 그 집에서 나오시고 바닷가에 앉으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몰려들므로 가르치시기에 좋도록 배에 올라가시어 배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즉 배를 강단으로 이용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 가지를 이 배 위에서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그중 하나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비유란 단어의 희랍어는 ‘곁으로’란 단어와 ‘던진다’는 두 단어가 합해진 것으로 한 물건을 다른 물건 곁에 두고 비교함으로 그 물건을 정확히 아는 방법을 말해 주는 것으로 주님께서 천국을 소개하시되 비유라는 방법을 통해 소개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진리를 가르치실 때 2가지 방법을 통해 가르치시고 계신다고 말한다면 그 하나는 산상 설교에서 “들의 백합화를 보라”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는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를 예로 드셨는 데 이런 경우에는 가르침을 받는 모든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생활 주변에 일어나는 어떤 예를 드신 것이요, 비유란 가르침을 받는 청중들 중 어떤 자들에게만 듣게 하고, 반면에 어떤 자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인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어떤 자에게는 알아듣지 못하도록 제한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을 하셨는지? 10-17절까지에서 소개 됩니다만 소개되는 천국에 대한 교훈이 그런 특수한 의도 아래서 두 종류의 청중들을 전제하고 가르쳐졌던 것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씨뿌리는 비유의 줄거리는 씨가 떨어진 4종류의 땅을 예로 들어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씨를 뿌릴 때에 사람이 손으로 흩어 뿌리거나 씨 봉지에 작은 구멍을 뚫고 밭으로 지나다니므로 씨가 든 주머니에서 씨가 떨어지게 하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뿌렸던지 씨가 4종류의 땅에 떨어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완전히 딱딱한 길가에 떨어진 경우이며, 둘째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경우이며, 셋째는 가시밭에 떨어진 경우이며 마지막 네 번째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경우를 예로 드셨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밭에 씨를 뿌려 보신 분들은 쉽게 이해되시리라 봅니다. 씨가 딱딱한 길가에 떨어졌다면 새 밥이 되고 맙니다. 새가 와서 씨를 먹지 못하게 하기 위해 또 싹이 나게 하기 위해 씨뿌린 다음에 빗자루 같은 것으로 씨를 흙으로 덮어 주지 않습니까? 또 밭이 돌 자갈 밭이라면 흙이 깊지 못하므로 싹이 나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므로 햇볕이 강하게 내려 쪼이면 말라 버리겠지요? 또 씨가 잡초 밭에나, 가시덤불이 있는 곳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씨앗이 싹이 난다 해도 잡초나 가시덤불에 짓눌려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씨가 4종류의 밭에 떨어질 수 있다는 가정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시기를 바라시면서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십니다. 마음 문을 열고 진리를 갈망하는 자는 듣고 이해하라고 듣기를 바라는 자들의 귀에게 전해 주는 말씀으로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은 듣는 특권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2]두 번째는 씨뿌리는 비유의 해설입니다.

천국을 씨뿌리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18절에서 23절까지에는 이에 대한 해설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천국 복음을 듣고 깨닫지 못한 자는 악한 자가 와서 뿌린 것을 빼앗게 되므로 이런 자들을 길가에 뿌린 자라 하셨습니다. 깨닫지 못한 자란 처음부터 예수 믿는 것을 거부하거나, 말씀 듣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는 사람을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학식만을 최고의 것으로 고집하며 아무런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은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찬 사람들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기 마음 밭에 하나님의 씨가 떨어져 천국이 이뤄질까 봐서 원천적으로 말씀을 거부하는 자들이라 하겠지요. 또 그보다 조금 진전이 있는 경우라면 교회를 다닌다 해도 말씀 듣는 일에나 말씀 읽는 일에 전연 관심이 없는 자, 교회에 오는 목적이 전연 딴 곳에 있는 자,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 나갈 수 있는 자, 예배에 참석하고 교회 직분을 감당하고 성도들과 친분은 유지하나 마음과 생활은 전연 변화 없는 자들, 종교를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형식과 의식으로 그치는 자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자들의 경우는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악한 자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사탄의 세력이 와서 행여 천국의 경험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신속히 씨앗을 빼앗는 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물론 마음에서 싫어서 말씀을 받지 않았지만 그 간단한 사건이 천국과 멸망의 길이 판가름나는 결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쁨으로 받았으나 뿌리가 깊지 못해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는 곧 넘어지는 자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는 자들 중에는 말씀을 듣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열성적인 신앙 활동을 통해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모범적인 교인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낙 신앙의 뿌리가 얕아서 개인에게 적은 어려움이 있을 ]때, 적은 유혹이 있을 때 아주 쉽게 믿음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런 자들을 돌짝 밭에 떨어진 씨앗이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을 가졌으나 감정적으로 받아 드렸거나 말씀으로 양육 받지 못하고 교리 교육이나 제자 훈련을 받지 못한 신앙의 뿌리가 없는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가시 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세상일 때문에 믿음을 게을리 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를 말하며, 또는 세상 적으로 부유해져서 세상의 부를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하나님을 의존하려는 마음이 없어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는 세상 적으로 성공을 거둔 자체만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았다고 믿고 세상 적으로 좀 모자란 사람은 축복을 못 받은 자로 여기며 교만에 빠진 사람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보다 육적인 세계를 더 우월하게 생각하고 육적인 세계를 위해 영적 세계를 포기해 버린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 하여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자들은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에 귀와 눈과 마음이 집중되는 자들을 말하고,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삶의 초점이 바로 말씀대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주님의 형제 인 것을 알고 주님의 형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고 그 뜻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는 자라 할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위해 육적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포기할 수 있는 자, 이런 자의 마음 밭이 바로 “좋은 땅”이 되는 것입니다.

 

[3]세번쩨는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이 비유를 들었던 무리들 중에 특히 예수님을 믿고 따랐던 자들 중에도 이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웠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들이 다 떠난 후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지 묻게 됩니다. 이 질문에 주님께서는 한마디로 간단히 답을 해 주십니다.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누구며 “저희”는 누구일까요? ‘너희’란 말씀을 듣고 마음 문을 열고 말씀을 받는 자들을 말합니다. 즉 복음을 들을 귀가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 예수님을 구주로 받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자라 하겠습니다.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를 가진 자들을 “너희” 라고 했으며 ‘저희’란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자기가 육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만 믿고 메시아를 영접하기는커녕, 메시아를 핍박한 자들이요, 또는 자신의 육적 풍성만을 믿고 천국에 관한 진리 듣기를 거절하는 교만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이들은 ‘마음이 완악하다’하였으니 완악이란 살이 찌고 둔하여진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영적으로 감수성이 둔화되어서 영적 세계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마비된 자들이라 하겠습니다. 자기 중심적이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은 자들로서 혹시라도 눈이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게 되므로 예수님으로부터 자기들의 양심이 고쳐질까 봐서 두려워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자들을 두고 렘 6:10에 귀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라 책망을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12절에 다른 말로 표현하시기를 “너희”를 “있는 자”로 표현하셨고 ‘저희’를 ‘없는 자’라 표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들을 귀를 갖고 보는 눈을 가진 “너희”는 계속 듣고 봄으로 점점 넉넉하게 될 것이나, ‘저희’는 들을 귀도 없고 볼 수 있는 눈도 없음으로 점점 있는 것까지 빼앗기게 되는 불행한 자들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을 기초로 하여 믿음에 믿음을 키우게 되지만 믿음이 없는 자는 믿음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므로 지금 있는 믿음까지도 다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되겠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듣고 말씀을 볼 수 있는 현세의 우리들이 얼마나 복 받은 인생들인가를 알려주시기 위해 구약 시대에 살았던 이사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도, 또 아브라함이나 노아나 요셉같은 의인들도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였으니 듣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 대해 주님을 통해 직접 전해 듣고 또 주님을 직접 대면하여 가르침을 받는 “너희”는 구약의 예언자들보다 구약의 의인들보다 얼마나 복된 자들인가를 강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때 우리들은 더욱 감사와 함께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반면에 이렇게 큰 복을 누리지 못하고 볼 수 없는 눈을 가진 자,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자들은 너무 큰 불행인 것을 강조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지상 최대의 실수란 주님을 못 알아보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건이나 주님을 믿으라고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결국 믿지 아니했던 사건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소개된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어져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밭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씨가 여기, 저기 많이 떨어졌으나 오직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만이 많은 열매를 맺는 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아니 좋은 땅이 아닌 길가나, 돌 자갈 밭이나, 가시덤불 속에서는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진리를 배운 것입니다.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좋은 땅으로 토질 개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보고 저주하신 주님은 열매를 가져올 수 없는 길가나 돌 자갈 밭이나, 가시덤불을 저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가져올 좋은 땅이란 어떤 마음 바탕일까요?

좋은 땅이란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된 마음 바탕입니다. 말씀이 필요한 갈급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지금도,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가난한 심령을 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 요라 하심같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을 아는 정직한 마음은 천국의 열매를 거둘 좋은 마음의 밭인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걸음을 재촉하는 발, 말씀을 듣기 위해 기울이는 귀, 말씀을 읽고자 성경을 펴는 눈은 하나님의 축복을, 또 많은 열매를 받을 준비가 된 마음 바탕이라 하겠습니다.좋은 땅이란 비록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풍성히 만족스런 삶을 산다 할지라도 이 세상 삶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주님이 예비하신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는 가난한 마음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이 열매맺도록 잡초를 뽑아 준 땅입니다. 말씀을 위해, 천국을 위해 세상 것을 뒤로한 마음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잡초나 가시덤불 때문에 곡식이 숨이 막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천국의 귀함을 알고 천국이 내 마음 속에 잘 자라도록 천국 생활에 지장이 되는 이 세상의 일과 세상의 근심 걱정거리를 잘 정리해 주는 마음 바탕이라 하겠습니다.

 

좋은 땅이란 중단이 없는 믿음을 가진 마음 바탕입니다. 나중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어떤 어려움에도 이기고 견디는 마음 바탕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도 권태가 있고 피곤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마귀는 어떤 이유를 붙여서도 믿음 생활을 게을리 하게 하거나 중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마다 나를 넘어뜨리려는 마귀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마음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내가 없이는 마지막 때의 영광을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믿음을 지속하는 끈기 있는 믿음의 마음 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땅이란 열심을 가진 마음 바탕입니다. 주님께서는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신다고 했으며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신다고 하심같이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 진리를 터득하기 위해 보다 열심을 가진 마음 바탕을 말하는 것입니다. 찾는 자에게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찾기 위해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심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심령이란 최소한 먹고사는 일보다 더 열심을 내는 열성을 보이는 믿음의 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천국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구약의 의인들도 이 천국의 복음을 듣고 싶어했으나 듣지 못했으며 메시아 되시는 주님의 사역을 직접 보고 싶어했으나 보지 못했는데 우리는 주님의 은혜의 때에 태어나 이 귀한 천국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의 사역을 보게 된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가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다 하셨는데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듣고 알 수 있는 “너희”속에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잘났다고 “너희”속에 들게 했겠습니까? 신약 시대에 태어난 것도,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많은 자가 불리움을 받으나 적은 자만이 선택된다 하셨습니다. 많은 씨앗이 여기 저기 떨어져도 좋은 땅에 떨어진 것만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됨도 알았습니다. 주님의 간절하신 부탁을 경청하시어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들이 다 되시고 이 귀한 천국 복음을 전달받을 수 있는 특권에 지극히 감사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